모든 시민은 기자다

바다 위의 졸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카드뉴스] 선원 기피현상과 해양사고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

등록|2016.10.18 14:28 수정|2016.10.18 14:28
바다 위의 졸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카드뉴스 더보기


피로도, 피로를 느끼는 정도를 뜻한다. 오늘 날 우리 사회는 피로와의 전쟁 중이다. 간 때문이라며 복용을 종용하는 한 약품부터, 타우린과 카페인 덩어리가 들어간 음료부터 졸음운전에 대한 강한 사회적 경고 그리고 근로환경 개선에 관한 정책들까지 다양하다. 우리에게 피로라는 단어는 부정의 의미가 강하다. 건강악화와 사고발생의 결정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선원의 피로도 또한 개인의 건강악화부터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해양사고까지 넓은 범위의 위협요인이 된다. 선원이 겪는 피로도의 원인은 과도한 업무량, 선체 진동, 잦은 입출항 등이 있다. 선박은 24시간 내내 기기가 작동하고 있고, 화물운송을 최우선의 목표로 끊임없이 교대근무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예측할 수 없는 급변의 상황에 항상 대응하여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 또한 적지 않다. 허나 선원이 겪는 피로도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강해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게 현실이다.

세계 각국의 보고서에서는 선원의 피로도는 해양사고와 직결적인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1996년 9월, 미국 해양경비대 연구개발센터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중대한 해양사고의 인간과실 중 16%는 승무원의 피로도가 원인이며, 인명피해사고의 33%에 승무원 피로가 기여되었음을 보고했다.

또한 해사분야에 명성이 높은 영국 카디프 대학의 2006년 연구프로그램 보고서에서는 6년의 연구기간 동안 선원의 50%가 근무시간이 개인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응답했고, 37%의 선원은 과다한 근무시간이 선박의 안전운항에 위협한 것으로 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2012년 12월, 해양안전심판원이 '선원피로의 실태분석 및 해양사고와의 인과관계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선원의 피로도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 구체적인 대책방안의 필요성까지 언급했다.

2006년 해사노동협약(MLC, Marine Labour Convention)이 채택되고 2013년 8월 20일부터 국제적으로 발효되었다. 선원의 주거환경부터 근로시간, 계약 등 포괄적인 선원의 근로환경증진을 도모하는 것이 이 협약의 목적이다.

우리나라도 발효에 앞서 선원법을 대폭 개정했다. 특히 이 협약은 국제협약으로, 규정을 위반하면 해외 항구에서 출항정지 등의 강한 제재를 받는다. 하지만 선원의 근무환경은 나아졌을까? 근해를 항해하는 외항선에서 근무한 나의 경험과 주변인의 이야기로 비추어보면 오히려 번거로운 규제로만 느껴졌다.

이 협약의 핵심은 바로 근로시간이다. 임의의 24시간 중 최소 10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해야한다. 또한 임의의 7일간 총 77시간 이상을 보장해야한다. 간단히 말해 매일 11시간 이상의 휴식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임의 24시간의 최저보장 휴식시간 10시간은 2회까지만 분할할 수 있고, 그 중 1회는 반드시 6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해야한다.

보통 선내 당직구조가 3조 6교대 체제(4시간 당직-8시간 휴식-4시간 당직-8시간 휴식) 임을 감안해보면 두 차례 휴식 중 한 구간은 6시간 이상을 보장해야한다. 하지만 연/근해를 항해하는 선박은 규정준수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항해는 짧고 입출항이 잦은 탓에 휴식시간의 일부도 입출항업무에 임해야한다. 그리고 노후선도 상당해 기기정비로 인한 초과근무가 불가피한 경우도 많다.

협약에 따라 근무시간은 수기로 기록하고 선원의 서명을 받는다. 허나 솔직하게 작성하면 검사 시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 또한 내 근무시간과 다른 선원의 근무시간까지 거짓으로 기입한 적이 많다.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면서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외국인 선원들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It is not true'라고 농담하곤 한다. 이게 국제협약의 현실이다. 실태조사를 해도 전혀 들어나지 않을 것이다. 서류상 완벽히 협약을 이행하고 있고, 선원에게 면담을 한다 하더라도 허위작성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다. 가진 것 없는 노동자는 사측의 재제를 더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법률 위의 현실 속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해양사고 중 선원의 피로가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바로 엑손 발데스호 사고다. 이 사고에 대한 여러 보고서에서는 선장의 과실 및 음주 등을 원인으로 보았지만 미국교통안전위원회는 3등항해사의 수면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임을 명시하고 있다. 당시 3등항해사는 이틀간 6시간밖에 수면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항로이탈이 발생했고 알레스카 연안에 좌초되었다.

4200만 리터의 원유가 유출되었고 약 50만 마리의 바다 새와 수백 마리의 바다표범이 죽음을 맞이했다. 1989년에 발생한 이 사고는 지구 역사상 최악의 재앙 중 하나로 꼽히며,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우리도 씨프린스호 사고,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고, 여수GS칼텍스 기름유출사고, 세월호 사고 등 적지 않은 해양사고를 겪으며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막대한 비용을 치루고 있다. 이제라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양사고의 원인이 될만한 리스크를 줄여나가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지배상선대 기준 세계 5위로 그만큼 해양사고에 쉽게 노출되어있다. 선원의 피로도는 더 이상 종사자 개인의 문제로 여겨서는 안된다. 초과근무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선원의 업무량이 줄어들어야만 피로로부터 개인의 건강과 선박의 안전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관리기관은 특히 연/근해 노후선이 신조선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유도를 해야한다. 그리고 선박자동화시스템이 연근해 선박까지 보편화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선사는 MLC의 목적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각 종 해사규제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비용과 구인난을 이유로 승무정원을 줄이기에 바쁘다. 근해구역을 항해하는 외항선이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연안항해와 입출항이 잦은 근해수역 외항선은 승무정원을 늘리는 방향과 더불어 사측의 전폭적인 업무지원이 필요하다. 선박의 종류와 항로, 선원구성, 선령 등 세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원의 업무량과 피로도를 분석하는 연구도 지속되어야할 것이다. 선원의 복지가 곧 해양사고방지와 해양환경보호 그리고 선원기피현상해결의 근본적인 방안임을 이해관계자 모두가 인식하고 노력해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바꿈 홈페이지와 미디어오늘에 중복게재 됩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