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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파식' 색깔론 펴는 새누리, 감당할 수 있겠나

'송민순 회고록'으로 제 발등 찍은 새누리, 역풍 조심해야

등록|2016.10.19 09:54 수정|2016.10.19 09:55

▲ 16일 서울시내 한 대형서점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사전의견을 구한 뒤 기권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 회고록을 두고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내용 중 새누리당이 문제 삼고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당시 참여정부의 입장이 기권으로 결정되기까지의 절차와 과정이고, 둘째는 북한에 기권 결정을 통보한 시점이다. 여기에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역할과 책임도 집중 추궁 대상이다.

새누리당은 참여정부가 인권 문제를 다루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을 표명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인권 문제를 중요한 인류 보편적 가치라고 주장해 온 진보진영이 정작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했다는 사실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것이 참여정부와 문 전 대표의 친북 성향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새누리당의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유엔은 2004년부터 해마다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다. 2004년(불참)을 제외하고 참여정부는 매해 표결에 참석해 기권(2005년), 찬성(2006년), 기권(2007년) 의사를 표명했다. 매해 다른 의견을 냈다는 것은 당시의 남북 상황에 따라 국가적 이익의 관점에서 유연하게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방증이다. 논란이 된 2007년 역시 남북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다양한 분야에서 당국자 간 남북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이것이 기권을 결정하게 된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당시의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색깔론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기권이 결정되기까지의 절차와 과정도 살펴보자. 당시 청와대는 세 차례(2007년 11월 15일 청와대 정책조정회의, 11월 16일 노무현 전 대통령 주재 관저회의, 11월 18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 걸쳐 관련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18일 회의가 정식 안보조정회의가 아니라 송 전 장관을 설득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술회했다.

당시 결정에 참여한 대다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16일 노 전 대통령이 주재한 관저회의에서 표결에 의해 기권이 결정되었고, 송 전 장관과의 이견 조율을 위해 18일 한 차례 더 회의가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김경수 전 청와대 연설기획 비서관, 백 전 실장 등의 진술이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북한에 통보한 시점 역시 논란이다. 그런데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 가운데 북한에 물어보고 기권을 결정했다고 주장하는 인사는 송 전 장관 한 사람뿐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김장수 전 국방부장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관계자들은 모두 기권 결정이 내려진 뒤에 통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통보 시점에 대한 관련자 진술이 '결정 후 통보'로 일치하자 북한에 통보한 것 자체가 '주권 포기'라며 말을 바꿨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주장은 남북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과 전달이 정부 차원의 통상적인 행위였다는 점에 비춰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문제 삼는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된 모든 비공식적인 남북 접촉 역시 '내통'이며, '주권 포기' 행위가 되고 만다.

문 전 대표를 향한 새누리당의 공세 역시 잘못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백 전 실장이 논란이 되고 있는 18일 회의를 소집한 주체는 문 전 대표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은 주무기관인 외교장관이 그토록 찬성하자고 하니 비서실장이 다시 회의를 열어 의논해보라고 지시했다"는 송 전 장관의 회의록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새누리당의 주장이 억지라는 뜻이다.

조악한 '북한 내통'설,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 '송민순 회고록' 관련자들 입장 ⓒ 고정미


당시 상황과 관계자 진술 등을 종합해보면 새누리당이 송 전 장관의 불확실한 기억에 기대어 참여정부와 문 전 대표에게 색깔론의 멍에를 씌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병우 민정수석, 최순실·차은택· 정유라,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 등으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코너에 몰리자 새누리당이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을 기화로 국면 전환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당면한 문제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가 대단히 조악하고 군색하다는 점이다.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쓰인 회고록에 의지해 공세를 펴는 까닭에 곳곳에서 빈틈이 드러나고 있는 탓이다. 회고록의 불확실한 내용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 정권 차원에서 북측과 비밀 접촉을 벌여왔던 것이 오히려 역공의 빌미가 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선포하기 이전에 관련 내용을 두 차례나 북측에 사전 통보했다는 사실이 부각되는가 하면,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안기부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위해 북측에 총격을 요청한 사실도 재조명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지난 2002년 방북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면서 나누었던 대화 내용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과거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과 비밀 접촉을 시도해왔던 새누리당에게 이 역공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를 눈치챈 영민한 시민들이 새누리당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새누리당의 논리대로라면 북한에게 유신 사실을 미리 통보해 준 박정희 전 대통령, 판문점에서 무력 시위를 해달라고 대놓고 요청한 안기부, 북측과 여러 차례 비공식 접촉을 해왔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그를 '찬양'한 박근혜 대통령이야말로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내통'한 중죄인들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고.

통렬하다. 정치의 금도를 어기고 근거 없는 색깔론을 막가파식으로 퍼트리고 있는 새누리당을 향한 시민들의 유쾌한 반격이 시작됐다. 듣기에 좋은 칭찬도 한 두번이라 하지 않던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구시대의 낡은 구태정치를 시민들이 분별하지 못 할 리가 없다. 제 발등 찍는 줄도 모르고 철 지난 색깔론을 또 다시 꺼내든 새누리당의 무모함이 부른 당연한 결말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제는 새누리당이 시민들의 질문에 답을 내놓을 차례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송민순 회고록' 관련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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