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윗선' 최순실 모녀와 '땅으로 간' 백남기

권력과 전문가가 내팽개친 보통 사람들의 정의를 위하여

등록|2016.10.20 09:51 수정|2016.10.20 09:51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는 풍문(사실 여부는 논란이 많은)을 남겼고, 세상을 뒤흔든 말 한마디는 결국 그녀를 단두대의 처형장으로 이끌었다. 개인적인 억울함이 없는 비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불평등이 만연한 봉건신분사회의 모순을 떠안고 역사의 뒤안길로 뜨거운 분노 속에서 차갑게 퇴장했다.

지금 우리사회의 '윗선'들에서 무슨 말들이 쏟아지고 있는가. 현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자의 철부지 딸은 "돈도 능력",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말을 '탈의실 농담'도 아닌 공개적인 소셜네트워크에 올렸다.

몇 달 전 나라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교육부 고위 공무원은 "민중은 개, 돼지", "신분제 공고화" 등을 언급하며 국민을 향해 굴욕적인 등급을 매겼다. 대통령은 이 비참한 취급의 배경에 깔린 불평등과 부정의에 항의라도 하려하면 '비국민', 심지어는 'IS' 취급하며 겁박하곤 했다. 풍문도 아닌 버젓한 사실로서 보도된 말들이 이러하다.

딸 마장마술 경기 지켜보는 최순실과 정윤회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 비서실장인 정윤회(왼쪽)씨와 전 부인 최순실씨가 2013년 7월19일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딸이 출전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제공 한겨레


어쩌다 이렇게 저급한 생각과 말들이 난무하는 후진 나라가 되었을까. 최순실씨는 요란한 사익 행위임이 명백해 보이는 일을두고 "나라를 위해 한 일"이라는 말을 했단다. 그러나 '나라'와 국격'을 입에 자주 올리는 자들 사이에서, 왜 이토록 반헌법적이고 반공화국적인 말과 행위들이 민주공화국 한복판에서 쏟아지는 것일까.

선진화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정상화'라도 가능한 것일까

아니 놀랄 일도 아니다. 우리는 전혀 민주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최순실씨 딸은 승마 훈련비인지 뭔지 모를 해외 체류비용으로만 월 1억 원 넘게 쓰고 살고 있지만, 평범한 노인들은 최악의 빈곤상태에서 최소한의 품위 유지는커녕 '연명'하듯 살아내고 있다. '헬조선'을 한탄하는 청년들은 틈만 나면 나라를 뜨거나 언젠가는 뜨길 소망하고 있다.

스스로 생을 끊는 끔찍한 최고 자살률 통계가 매해 반복되는 틈에 이제는 무감각해질 지경이다. 각종 사회경제지표가 위험하다는 신호,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적신호는 이미 수도 없다. 사회는 온통 신음하는데 사회적으로 박탈당한 보통 사람들 위에는 어떤 세상이 있는 것일까. 불의하게 기울어진 세상에서, 굳어진 기득권 성채에 입성한 안락한 상석에 저런 몰상식한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게 어찌보면 당연하다.

도대체 이 땅에 희망이 있는 것일까. 선진화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정상화'라도 가능한 것일까. 담벼락에 욕을 하는 것도 지쳐서 염증과 체념만이 가득한 날들이나, 이 어두운 틈바구니에서 그래도 다시 일어나 살아 보자고 가슴에 불을 붙이고 있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처참하게 쓰러져버린 사람이다. 책임도 처벌도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박근혜 정권의 물대포에 희생당한 백남기 농민이다.

그는 "민중은 개, 돼지"라는 사람에 맞서 "민중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람(이런 분들이 정작 민중 위에 군림하는 경우를 우리는 여럿 보았다)이라기보다, 땀 흘려 매일의 양식에 씨를 뿌리며 살았던 한 사람의 민중이었다. 그는 청년 시절 민주화에 헌신했지만 이를 훈장처럼 여기기는커녕, 적법한 보상조차 마다하고 "산자는 말이 없다"며 이름도 빛도 없이 죽은 자들을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씨가 말라버린 우리밀 농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돈이 되는 것이면 대기업이 놔뒀겠느냐, 그냥 우리 몫이라 생각하고 합시다"(한겨레21 기사 중). 그렇게 지난 1989년부터 쓰러지기 전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우리 밀을 재배해온,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주곡 중 하나였지만 수입 밀의 등쌀에 밀려 아예 종적을 감출뻔한 곡식에 부활의 씨를 뿌린 선구자적 농민이었다.

이 땅에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광장에는 고(故) 백남기 농민 ‘애도와 추모의 벽’ 이 설치되었다. ‘애도와 추모의 벽’ 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갈 수 없는 시민들이 추모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제작했으며 한 달간 운영될 예정이다. ⓒ 최윤석


"아빠는 세상의 영웅이고픈 사람이 아니야.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지."
"아버지의 생각은 늘 그랬어요. 특별한 사람이라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일을 맡아야 할 상황이니까 하시는 거."

그의 딸들이 전한 안타까운 말에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적나라하게 듣고 있다. 전문가라는 자들이,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마저도, 그것도 최고 병원이라는 곳에서 한 농부와 가족들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똑똑히 보아왔다. 이러한 시대에, 백남기라는 이름 없던, 그러나 마땅한 일을 값없이 해왔던 사람의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뜻을 던지고 있는가.

그가 이 세상에서 뿌린 마지막 밀은 지난 6월 동료 농민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거둬졌다. 그의 육신은 공권력과 전문성을 참칭하는 자들의 패륜적인 책임회피 속에 그가 사랑하던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혼을 부여잡고 유족의 처절한 바람처럼 이 땅에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