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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스산한 날 생각나는 이것

순대국밥에 얽힌 추억

등록|2016.10.20 16:29 수정|2016.10.20 16:29

▲ 퇴근길에 지인이나 친구와 마주 앉아 순대국밥이든 소머리국밥에 소주를 나누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 ⓒ pixabay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나가는 게 힘들다고 한다. 이는 부자와 빈자라고 해서 별반 차이가 없다. 부자는 돈과 재물까지 많으니 행복할 것이라고 예단한다. 그러나 그들도 알고 보면 그리 행복하진 않다고 한다.

재산이 많은 만큼 부모(혹은 당사자)의 유산과 재산의 분배를 둘러싼 자녀들의 다툼이 심각한 지경인 집안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반면 빈자는 빚에 쫓기고 각종의 생활고에도 힘이 부치도록 어렵다.

필자도 일찍부터 투잡에 이어 쓰리잡까지 해왔다. 초등학생 시절, 같은 동네서 다리미 월부장사를 하는 아저씨가 계셨다. 겨울방학을 맞아 하루는 그 아저씨를 따라 병천장에 따라나섰다.

그렇지만 온종일 다리미를 팔지 못한 까닭에 점심은커녕 풀빵 하나조차 먹지 못했다. 그야말로 아사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등에 진 다섯 개의 다리미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졌다.

땅거미가 질 무렵, 겨우 다리미를 한 대 팔았다며 허겁지겁 달려온 아저씨는 순대국밥을 사주셨다. 한데 그 국밥을 먹으면서 눈물은 또 왜 그렇게 줄줄 흐르던지. 곰살궂은 맛의 순대국밥은 전통적인 고미(古味), 즉 오래된 맛을 자랑한다.

가격도 비교적 착하여 서민들의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자면 이 음식이 나로선 고미(苦味)까지 되는 셈이다. 징그럽게 더웠던 여름이 달아나고 아침저녁으론 옷깃을 여며야 하는 계절이다. 자연스레 뜨거운 음식이 그리워진다.

중앙시장에 가면 소머리국밥을 잘하는 집이 있다. 주인장의 인심도 넉넉하여 그 국밥에 들어가는 고기의 양도 만만찮다. 고기와 국밥보다 술의 탐닉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국밥이 차가워진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손만 번쩍 들면 손님들 곁을 분주히 왕래하는 아주머니가 냉큼 토렴을 해주신다.

퇴근길에 지인이나 친구와 마주 앉아 순대국밥이든 소머리국밥에 소주를 나누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 물론 그 자리에선 평소 쏘개질 따위로 분란을 일으키는 직장동료의 흉을 보는 것도 '허용된다'.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의 가사 중에 "누구는 양주 먹고 누구는 소주 먹고..."라는 구절이 있다. 부자는 양주를 먹되 우리 같은 서민은 소주를 먹으면 된다. 사는 건 여전히 헛헛하지만 그래도 우리 곁엔 순대국밥과 소머리국밥에 더하여 소주까지 있으니 안심이다.

더욱이 그 국밥들은 예전부터의 맛을 여전히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고미존미(古味存味)여서 더욱 위안이 된다. 오늘처럼 스산하고 마음까지 적적한 날엔 금상첨화의 음식이다. 따지고 보면 음식도 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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