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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창호 경감 영결식 "무전기 소리, 듣기 너무 힘들었다"

정년까지 6년 남았는데... "늘 현장에 앞장섰던 선배님"

등록|2016.10.22 13:26 수정|2016.10.22 13:26

▲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에서 열린 오패산 총기사건 희생자 고 김창호 경감의 영결식에서 김 경감의 영정과 운구 행렬이 식장을 떠나고 있다. 2016.10.22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폭행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사제 총에 맞아 숨진 고(故) 김창호(54) 경감 영결식이 22일 오전 엄수됐다.

가을치고는 강한 햇볕이 내리쬔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 주차장에는 비통함만 흐를 뿐이었다.

김 경감의 영정과 관이 앞을 지나자 허망한 눈빛을 하던 그의 부인이 통곡했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조사를 읽었다. 그는 "고인은 효심 깊은 아들이자 아내와 아들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든든한 가장이었다"라면서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운명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고 말했다.

김 경감과 강북경찰서 번동파출소에서 동고동락한 김영기 경장이 고별사를 읽자 바위처럼 굳어있던 정복 경찰관들의 표정도 흔들렸다. 몇몇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고 해결해주시고 돌아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보여주실 줄 알았는데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듣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의협심이 강하고 언제나 제일 먼저 신고 현장에 도착하던 선배님이어서 더욱 불안했습니다."

김 경장이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 선배님 술 한 잔 하기로 한 약속 지키셔야죠. 제발, 제발 일어나세요"라고 말하자 곳곳에서 탄식했다.

고인의 어머니와 부인은 힘겨운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경찰관 2명의 부축을 받아 겨우 헌화했다.

영결식이 시작되고 30분이 지났을 무렵 부인은 탈진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애써 눈물을 참고 어머니를 다독이던 아들(22)은 그제야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꼈다.

김 경감은 1989년 청와대 경호실 지원부대인 서울경찰청 101경비단에 순경으로 임용돼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 청량리경찰서(현 동대문경찰서),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서울청 202경비대, 서울청 보안과 등에서 근무하다 올 2월 강북경찰서로 발령됐다. 정년까지는 6년 남은 상태였다.

김 경감은 19일 오후 폭행 신고를 받고 서울 강북구 오패산 터널 인근 현장에 출동했다가 사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성병대(46)씨는 구속됐다.

김 경감의 영결식은 서울지방경찰청 장(葬)으로 치러졌다.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에 봉안된다.

김 청장은 "고인의 영정과 용기, 희생과 헌신을 절대 잊지 않고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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