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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에, 일베도 "박근혜 빨리 탄핵해야"

[모니터링] 일베가 '여권 주도 탄핵론' 꺼낸 이유

등록|2016.10.26 10:45 수정|2016.10.26 14:25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임기 중 최악의 수세에 몰린 가운데,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아래 일베) 이용자들조차 '대통령 탄핵' 주장을 꺼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

또한 일베 이용자들은 최씨와 박 대통령을 소재로 각종 패러디물을 만들어 두 사람을 조롱하고 있다. 한 일베 이용자가 블리자드사의 인기 온라인 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아나와 라인하르트의 얼굴에 최씨와 박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은 추천 327, 비추천 78을 기록했다.

아나는 "너는 강해졌다, 돌격해!"라는 대사와 함께 동료에게 힘이 강해지는 물질을 주입시킬 수 있는 캐릭터이고 라인하르트는 "망치가 나가신다!"라는 대사와 함께 적들을 쓰러뜨리는 캐릭터다. 이 캐릭터들을 일베 이용자들은 최씨가 "너는 당선됐다, 돌격해!"라는 대사와 함께 무언가를 주입하고 박 대통령이 "망조가 나가신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합성하며 즐거워했다. 현재 비선 실세 논란에 빠진 두 사람을 일베 이용자들이 조롱하는 맥락으로 읽힌다.

"새누리당이 먼저 탄핵해야"

▲ 여당 주도로 탄핵 정국을 일으켜야 한다는 일베 이용자의 주장.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사진은 지면의 한계 상 생략한 채 갈무리했다. ⓒ 일베 갈무리


어쩌다가 박 대통령이 일베에서 조롱 당하는 신세가 된 것일까? 현재 일베 한편에서는 보수가 이제 그만 박 대통령 카드를 버리고 대선 레이스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문대통령'이라는 이용자는 25일 오후 1시 56분경 "박근혜 빨리 버려야 한다. 안 그러면 보수 몰살한다"며 "새누리당에서 먼저 탄핵 정국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렸다.

박 대통령의 의혹 인정, 사과 뉴스 속보가 널리 알려지기 2시간 전쯤 일이다. 이 게시물은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다가 추천 304, 반대 350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얼핏 보면 탄핵 찬성 우세 분위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해당 이용자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진을 글과 함께 올려놓았다. "글까지는 이해하는데 사진이 문재인인 거 보면 분탕이네ㅋㅋㅋ"(야동왕***)와 같은 댓글처럼 일베 이용자들은 야권을 경계하는 성향이 있다. 이들은 평소에 야권이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서 '분탕'을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포함해 강한 대인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홍어(호남인을 비하하는 말) 새X 이때다 하고 선동질 하는 거 보소"(Hit***) "갑자기 좌좀들(진보를 비하하는 말) 풀발기하노. 김정은이 지령내렸나? ㅋㅋㅋ"(마구**) " 같은 댓글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호남과 북한을 끌어들이며 지역차별과 색깔론을 일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둘째, 일베의 아마추어 논리 실증주의 성향 때문이다. "사실도 아니고 의혹으로 탄핵? 진짜 급식 반 홍어 반이네ㅋㅋㅋ 불법이 사실로 밝혀지면 감방에 쳐넣든지 하고 아니면 닥쳐ㅋㅋㅋ"(8***)와 같은 댓글이 이런 맥락이다. 일베 이용자들은 어떤 권위를 가진 전문가 집단이(특히 수사기관, 사법부가) 공인해주지 않은 사안은 정치적 판단도 내릴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종종 보인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정 사건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중요한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분별해 종합적인 인식을 구성한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판단을 내릴 때는 법리적 정보까지는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JTBC 보도로 알려진 정보만으로도 대통령에게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뿐더러 대통령 스스로도 사과를 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관이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영역이 정치임에도 일베 이용자들은 종종 '권위'에 의존한다. 법이 대신 판단해주지 못 하면 스스로 가치 판단도 내리지 못 하고, 정치적 주장을 적극 내세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 뿐만 아니라 사형까지 시켜야 한다는 주장. 그런데 그 논리가 좀 이상하다.. ⓒ 일베 갈무리


물론, 모든 일베 이용자가 모든 순간 정치적 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주장을 과격하게 내세우는 경우도 종종 관찰할 수 있다. 'FR미만잡'이라는 이용자는 25일 오후 8시 38분경 "지금 닭근혜(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말) 탄핵시켜야 한다는 빡머가리들(멍청이들이라는 뜻) 특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제목은 반어법이다. 막상 클릭해 내용을 읽어보면, 탄핵에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탄핵보다 더 강한 처벌(사형!)도 불가피하다고 비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추천 558, 반대 181을 기록했다.

평소에 일베를 '극우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쯤으로 이해했던 사람들이라면 이게 일베에 올라온 게시물이 맞는지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베적 멘탈리티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관찰자들이라면 이것은 결코 놀랍지 않다. 일베의 보수적 성향은 그들이 어떤 뚜렷한 이념 지향성을 진지하게 공유하고 연대를 이루면서 갖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유머(?) 커뮤니티임을 감안해도 일베 이용자들의 메시지에 유난히 'ㅋㅋㅋ'가 많이 포함돼 있는 이유다.

일베 이용자들의 평소 표현대로라면 '소속감 따위는 없다'. 만약 애국심이나 의리를 강조하며 정부, 여당에 충성을 요구하면 '틀딱'이라는 조롱이 돌아온다. 틀딱이란, 기성세대들이 훈계를 하는 것이 틀니가 딱딱 부딪힌다는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는 식의 조롱이다. 넓게는 시대착오적인 주장만 반복하는 사람들을 일베는 '틀딱'이라 부른다.

흥미롭게도 'FR미만잡'은 국가의 모든 사항을 안보와 연관시키는 '틀딱'의 논리를 역이용해 박근혜 탄핵을 주장한다. 이것은 앞서 (비록 조롱할 의도였을지라도) 문재인 사진을 함께 올린 '기문대통령'의 말보다 더 잘 먹혀들었다.

박 대통령을 국가보안법 사범으로 처벌하자는 건 다소 비약이 있고 박 대통령 평소 성향과도 어울리지 않는 논리이지만, 이게 먹혀드는 이유는 일베 이용자들이 '태세 전환'이 빠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일베 누리집에는 최순실 게이트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동시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글들도 듬성듬성 올라오고 있다.

'요놈요놈봐라'라는 이용자는 25일 오후 4시 27분경 "야당이 탄핵을 왜 해ㅋㅋㅋ"라는 견제성 게시물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은 추천 340, 반대 62를 기록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야당은) 어이구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먹는 거지, 이미 이미지 X창에 가만 놔두면 알아서 X신짓하는 X을 뭐 하러 탄핵함 ㅋㅋㅋ 탄핵 추진했다가 막히면 역풍 맞을 수도 있고 ㅇㅇ 오히려 여당 비박계가 XX 탄핵하고 싶어 할걸? 다음 대선 생각하면 빨리 꼬리 잘라야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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