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정상적인 대통령' 가질 권리가 있다
[주장] 논란 증폭시킨 대통령 사과... 국기문란 책임지는 모습 보여야
▲ 박근혜 "최순실 도움 받았다" 시인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씨의 '대통령 연설문 사전열람' 논란에 대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비선실세로 지목받고 있는 최씨의 PC에서 대통령의 연설문 등이 발견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지 하루만이다. 다음은 대통령 사과문의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최근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시다시피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습니다.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습니다.
저로서는 좀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거리두기로 일관한 모습과는 대비된 대통령의 '사과'
대통령의 해명은 그동안 최씨 관련 의혹에 대해 거리두기로 일관했던 모습과는 사뭇 대비된다. 대통령은 최씨 관련 의혹에 대해 "비상시국에 난문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9월 22일),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10월 20일)이라 말하며 자신은 관련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 왔다.
비선실세 의혹과 최씨의 연설문 개입 의혹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해 왔던 청와대 역시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최씨의 취미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때 청와대는 "말이 되는 소리냐"고 반문했고, 이원종 비서실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비선실세의 존재 자체를 강하게 부정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최씨와의 관계와 청와대 내부 문서가 유출됐음을 시인함에 따라 향후 정국은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최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들이 언론을 통해 속속 보도되면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청와내 내부 문건 유출에 대한 대통령 책임론이 강하게 제기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대통령은 지난 2014년 불거졌던 '정윤회 문건' 논란 당시 청와내 내부문건 유출과 관련해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이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하며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말대로라면 청와대 문건을 최씨에게 유출하도록 지시한 대통령 스스로가 국기문란 행위를 한 셈이어서 일벌백계를 피할 수 없다.
진정성 의심... 거짓사과 논란까지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단행한 대통령의 사과가 논란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안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녹화 사과를 했고,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은 아예 배제한 채 2분도 안 되는 시간에 자신의 말만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사과의 내용 역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의 해명이 앞 뒤 말이 맞지 않는데다 진정성까지 의심받는 등 거짓사과 논란마저 일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최씨가 과거의 인연으로 주로 연설문과 홍보물을 도와준 것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씨의 PC에선 대통령 연설문 이외에도 대통령 업무와 관련된 자료도 상당수 발견됐다. 그 중에는 정부조직법개편안 관련 자료와 아베 신조 총리 특사단 접견 자료 등 극비 외교문서와 인사파일 자료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대통령 해명과는 달리 최씨가 국정 전반에 걸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씨의 국정 관여가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 중단됐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사실과 다르다. 최씨의 PC에서 발견된 연설문 중에는 2014년 3월 28일 발표된 '드레스덴 연설문'도 들어 있다. 청와대의 보좌체계 완비 시점을 2013년 8월 5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 발탁 이후로 넓힌다 해도 대통령의 해명은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씨가 최근까지도 매일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정호성 제1부속실장으로부터 건네 받아 검토해왔다는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의 증언도 나왔다. 이 전 총장은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에 대해 "최씨가 박 대통령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구조"라고 증언하기까지 했다.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최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홍보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도움을 준 정도가 아니라 최근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전방위적으로 국정에 개입해왔음을 시사한다. 대한민국 권력순위 1위는 최순실이라는 세간의 의혹이 허언이 아니라는 의미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통령을 향한 비판과 비난이 한층 거세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며 납득할 만한 후속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시민들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대통령을 향해 거친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개중에는 공사를 망각하고 국기를 문란시킨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대통령은 국민 앞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그동안 대통령은 자신과 관련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국기문란", "비방", "폭로성 발언" 따위의 면피성 발언으로 본질을 호도했다. 뿐만 아니라 의혹 제기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국민에게 서슬 퍼런 엄포를 놓기만 했다. 누구보다 솔선수범해서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양시켜야 할 장본인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묵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들을 오히려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처럼 몰지각한 인식을 가진 대통령이 지난 3년 반 동안 국정을 운영했으니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와 한탄이 국민들 사이에 대유행하는 것일 테다.
대통령 스스로 비선실세인 최씨의 국정농단을 자인한 이상 그가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당 내부에서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되는 등 대통령으로서의 정상적인 직무수행조차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사필귀정이다. 대통령은 이제라도 최씨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국민 앞에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비선실세의 국기문란과 국정유린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의 각성과 결단을 촉구한다. 국민은 정상적인 대통령을 가질 권리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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