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병역 거부했는데, '진짜 감옥'을 경험했습니다

[남성성들] 살아남으려면 '시위 무용담' 과시해야

등록|2016.11.07 17:41 수정|2016.11.07 17:41

▲ 감옥에서 보낸 편지 ⓒ 김윤영


저는 병역을 거부했습니다. 1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아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남자라면 다녀와야 할 군대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남북 대치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연한 것들을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에는 제게 주어지는 남성성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지금의 국가가 제게 가르치는 평화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여전히 모호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일단 제 몸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화'와 '남성성'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저는 감옥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가 보고 겪은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감옥에서 필요한 것: 돈, 그리고 힘

감옥에서는 방 하나에 많은 인원이 좁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래도 '혐오시설'이라 그런지, 수감자에 비해 감옥의 방은 적고 좁습니다. 너무 좁아서 종종 누울 곳이 모자라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경우도 많고, 서로 겨드랑이에 다리를 집어넣고 엇갈려서 자는 일도 익숙합니다. 서로 낯선 사람들끼리 좁은 공간에서 갇혀 모든 생활을 함께해야 합니다. 수감자들끼리 서로 경계심이 많습니다. 일단 낯선 사람에다가 죄를 짓고 들어왔으니 '나에게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생활을 해야 하니 방에 생활 규칙이 필요합니다. 화장실 쓰는 순서, 잠자리 위치, 청소·설거지 당번, 각자 짐을 보관할 공간, 식사 당번, 이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공평하게 나누라고 방에 붙어 있는 '수용자 생활 안내문'에 붙어 있지만, 지키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생활은 늘 열악하고 불편합니다. 서로 양보하고 대화하며 정하면 좋으련만 사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을 차지하기 위한 힘겨루기가 생겨납니다.

이곳에서 주로 힘겨루기에 사용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돈(영치금)과 남성적(육체적) 강함입니다. 감옥에서 지급하는 물품만으로는 생활하기가 빠듯합니다. 그래서 영치금으로 먹거리나 생활용품을 구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무일푼인 사람이 많습니다. 부득이하게 신세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런 점을 이용하여 돈으로 필요한 물품을 사주는 대신 자기 원하는 대로 사람을 부리고자 하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자신의 '강함'을 입증하기 위해 드러내는 과시적 남성성

반면에 돈이 풍족하지 않을 경우, 살아남기 위한 힘겨루기에 사용되는 것은 남성적인 강함입니다. 험악해 보이는 문신을 하거나, 근육질이나 큰 덩치의 몸을 자랑하기 위해 걸핏하면 상체를 벗어젖힙니다. 자기가 얼마나 힘이 센 지 과시하는 것입니다. '나한테 맞으면 큰일 난다.' 무언의 압박을 줍니다. 거친 말투, 욕설도 빠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몇 번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는지, 누구와 싸워 이겼는지, 어떤 험악한 일들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무용담을 잔뜩 늘어놓습니다.

여기서 또 빠지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성적 능력에 대한 화려한(?) 이야기들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많은 이성과 성관계를 맺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만족했는지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게다가 듣고 있으면 강제로 벌어진듯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가 애써 스스로 폭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밀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대개는 돈이 많은 사람이 방에서 제일 폭력적으로 보이는 사람과 결탁하여 방에서 권력을 잡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방에서 필요한 물품과 먹거리를 사면서 돈이 많음을 과시하고, 다른 폭력적인 사람은 군기를 잡습니다. 조폭 영화에서나 볼법한 보스와 행동대장의 모습입니다. 방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은 방에서 좋은 환경을 다 차지하고 생활규칙도 자기들 편한 대로 정합니다. 이것에 따르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생활규칙뿐 아니라, 심하게는 개인의 생활까지도 간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사건건 간섭하고 트집 잡으려고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전염되는 폭력적 남성성

이곳의 남성 수감자들은, 좋은 환경에서 살기 위한 힘겨루기를 넘어,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바깥에서야 마주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갇혀 있는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 저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사람은 없습니다. 눈앞에 끊임없이 폭력성을 과시하는 사람이 있을 때, 타인에 대한 경계와 혐오의 마음이 수감자들 마음속 깊이 새겨집니다. 남들에게 과시할거리가 마땅치 않은 사람은 여러모로 고달픕니다. 잠자리도 화장실 근처 제일 끄트머리로 밀려나고, 화장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번거로운 일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괜한 짜증과 화풀이의 대상이 됩니다. 직접적인 폭력은 잘 발생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상처를 받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나이도 어린 편에, 수감 생활 분위기도 잘 몰랐기 때문에 이래저래 많이 당했습니다. 돈도 마땅치 않거니와 과시할만한 힘도 마땅찮았습니다. 화장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자질구레한 일은 늘 제 담당이었고, 잠자리나 일상생활 공간은 화장실 근처였습니다. 일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으나,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견디기 쉽지 않았습니다. 적응하고 제 나름의 힘겨루기 방식을 습득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 그런 수감자들을 관리하는 교도관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실 수 있겠습니다. 교도관들은 대개 방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은 적당히 알아서 해결하길 바랍니다. 직접적인 폭력이 벌어지지 않으면 나서지 않습니다.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게다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달려가서 이야기하면 수감자들 사이에서 미움 받기 십상입니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개는 이기지 못하면 참고 지냅니다.

이러한 과시적, 폭력적 남성성에서 저 또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저는 제게 오는 편지들을 으레 많아 보이게 쌓아놓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도 했고, 시위에서 경찰과 맞붙은 이야기도 무용담처럼 늘어놓곤 했습니다. 죄짓고 들어온 당신들과 달리 나는 국가에 맞서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요령이 생겨 비교적 다른 사람에게 당하지 않으며 지낼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는 내내 좀 찜찜한 마음이 듭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남성성의 과시라고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박유호씨 ⓒ 김민


최근에 아주 오래간만에 본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감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잠깐 같은 방을 썼던 사람입니다. 제 기억에는 저보다 10살가량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 당시 둘 다 수감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 당하고 지내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곤 했습니다. 체구도 마르고 차분하고 조용한 친구라, 험난한 감옥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됐었습니다.

헤어지고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최근에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보이는 모습이나 분위기는 매우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이곳에서도 일이 많고 거칠고 위계질서가 강하기로 소문난 취사장으로 가게 됐던 모양입니다. 전보다 한껏 목소리도 커지고 말도 많아졌습니다. 욕설도 한마디 하지 않던 사람이 부쩍 욕설이 늘었습니다. 오랜만이라 서로 사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취사장에서 처음에 나이도 어리고 순해 보여서 사람들이 만만히 봐 이래저래 궂은일을 시키고 갖은 짜증과 화풀이의 대상이 됐었다고 합니다. 바깥에서 돌봐주는 가족도 마땅치 않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취사장은 일이 힘들어 나이 젊은 사람을 많이 뽑아가는 편인데, 개중에 자기 또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자기와 다르게 당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이기기까지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친구처럼 세 보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사람들이 자기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리를 잡아, 취사장에서 힘 좀 쓰는 형님들과 어울려 지내며,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 시키며 자기는 일을 덜 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남는 시간은 먹고 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에게는 문신이 없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요즘은 자기보다 나이 많은 취사장 신입들 다그치고 괴롭히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불안해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자신감 넘치고 기세등등한 모습이었습니다. 자신감은 보기 좋았으나, 그 자신감은 자신의 폭력성을 과시하여 얻은 것이었습니다.

누구를 위한 폭력인가

제가 겪은 일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그가 겪은 일들은 감옥에서 그리 특별한 경험은 아닙니다. 이런 폭력에 대한 경험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은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경계와 혐오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폭력성의 과시는 사람들의 마음속 삶의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불필요하게 과한 소비를 하면서 감옥에서 자신의 돈을 자랑하려고 노력하거나, 자신의 폭력성을 과시하는 모습은 감옥의 공기를 한층 더 차갑게 만듭니다.

이곳에서는 자신을 과시하는 행동과 말은 넘쳐나지만, 미안하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 같은 것은 웬만해서는 듣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잘못을 하고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상대방에게 진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을 트집 잡아 무엇인가 요구하거나 괴롭히지 않을까 합니다. 별 의도 없는 호의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의심을 가지고 긴장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함부로 호의를 받기도, 주기도 힘들어지는 문화. 몸뚱아리로만 사는 징역이라 서로 위악을 부려 몸이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이해는 갑니다만, 저는 관계에서 먼저 총을 내리고 접근하는 편인데 이게 사람들에게는 '호구'로 보이거나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의심을 받는 것 같아서 슬프기도 합니다. 최소한의 일상생활에서조차 이런 경계와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니, 삶이 늘 고단합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란 바로 이런 마음들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런 모습이 감옥만의 특별한 풍경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도 익숙하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타인에 대한 경계와 혐오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남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과 폭력성을 과시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부득이한 것으로 합리화 되고 있습니다. 아니 요즘은 적극 권장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국가 간의 외교적 갈등과 군비경쟁, 학교·직장· 사회 어디에서든 사람들을 다루고 통제하려는 일,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안타깝지만 반드시 필요할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는 그것을 '진정한 남자'라면 갖춰야 할 '남자다움'이라고 부르며, 사회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남성성'이야말로 타인에 대한 혐오와 공포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폭력적인 관계 맺기가 권장되는 세계에서 인간의 연대, 평화의 가치라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가 되어버리지 않나 싶습니다.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양심이 존중받는 사회''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관련 여론 수렴을 위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이 열리는 2015년 8월 9일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죄수복을 입은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은 위헌'이라며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2년 전 제 자신의 병역거부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을 때, 당장 평화로운 세계가 다가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살아본 바, 평화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더라도, 이대로 우리의 꿈을 허무맹랑한 소리로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일단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남성성'의 가치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폭력과 지배를 통한 관계 맺기 방식이 타인에 대한 혐오와 경계를 어떻게 증폭시키고 있는지, 타인을 보는 시선을 어떻게 일그러뜨리고 있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1년간 지내면서 폭력과 혐오의 감정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는 과정을 보았고, 그 속에서 제 자신도 자유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평화'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써왔던 게 아닌지 반성을 해봅니다.

남성들의 관계 맺기 방식은 국가 간의 외교적 관계, 평화 문제에 대한 논의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군축을 반대하며 '힘 없는 평화는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설득력을 가지듯이, 가부장제의 남성성도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겨눈 총을 절대 내려놓지 않으며, 그 이유를 상대방 탓하는 것도, 남성성이 가지는 폭력과도 유사한 것 같습니다. 관계의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는 걸 잘 상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명색이 병역거부자이기에, 평화에 대한 담론이나, 논의를 나름 꾸준하게 고민해나가면서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가 정말 뿌리 깊이, 무의식적·역사적으로 곳곳에 존재하고, 그리고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설득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새삼 제게 무겁게 다가옵니다. '낙오'에 대한 은연 중의 공포가 서로를 겨눈 마초성이라는 총을 내려놓게 하는 걸 어렵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무기의 존재를 그 이유로 삼지요. 난 이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저 자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핑계를 대는 거지요.

제 생각에 평화주의이든 여성주의이든 답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악순환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총을 내려야 합니다. 총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제가 될 것이고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적인 남성성을 꺾어 내려면, 그것을 버리는 사람들이 생겨야 하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먼저 내가 하고. 아직은 그 정도 자기 선언 밖에는 못하겠지만, 남은 수감 기간 동안, 그리고 밖에 나가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좀 더 고민하고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며 지내겠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이야기로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와 평화, 사랑의 마음이 여러분과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2016년 가을 박유호가 씁니다.

(*글쓴이 박유호씨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이유로 여주교도소에서 복역 후 지난 10월 28일에 출소했습니다. 이 편지는 지난 10월 15일에 작성된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페미디아(www.femidia.com)에도 실렸습니다.

박유호씨는 이 글을 통해 노동당 여성위원회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당원들과 함께 시작한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에 참여합니다. '남성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글쓰기 연재'는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는 남성 노동당원들이,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시작한 글쓰기 시리즈입니다. 여기에서 '남성성'이란 R.W.코넬의 저작 『남성성/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하나의 '남성성'이 존재한다기보다 만들어지고, 수행되는 개념으로서 한국사회의 남성성이 어떻게 실천되고 유지되는가를 성찰적으로 나누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