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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세상사에 지쳤다면... 11월 추천영화 10선

[김성호의 씨네만세 158] 미틈달 기대작 10편을 소개합니다

등록|2016.11.02 10:57 수정|2016.11.02 11:02
모든 면에서 상상을 초월한 10월이었다. 연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됐고 관객이 된 국민은 그 참담한 수준에 아연실색하고 망연자실했다. 영화로 치면 졸작도 그런 졸작이 없었다. 그러니 망작이 돼야 마땅한데 사건은 10월을 넘어 11월까지 전 국민이 보는 스크린에 걸려 있을 태세다.

하긴 어디 좋은 영화가 살아남는 세상이던가. 좋은 영화가 스크린을 찾지 못하고 그저 그런 영화가 기록적인 흥행을 하는 걸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온 것이다. 결코 개봉할 수 없는 수준이라 생각한 졸렬한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져 연일 상영되는 오늘이다. 11월엔 과연 희망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

10월은 적어도 한국에선 영화의 달이었다.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 최고의 영화축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달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그 어느 때보다 작고 초라했다. 어느덧 21살, 사람으로 치면 어엿한 성인이 되었지만 동남권을 휩쓴 태풍 차바보다 더욱 매섭고 끈질긴 부산시의 외압엔 의연할 수 없었다. 올해 부산영화제를 찾은 관람객은 15만5149명으로 지난해 22만7377명보다 27.4%가 줄어들었다. 문화가 부흥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창작과 수용, 표현과 공유의 자유라는 걸 우리는 또 한 번 아프게 깨우쳤다.

그래도 10월 극장가엔 작은 희망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만년 조연 유해진의 주연작 <럭키>가 570만 관객을 모은 것이다. 조연배우 가운데선 독보적인 톱스타지만 그에게도 첫 도전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테다. 가끔은 누군가의 성취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끈해진다. 내겐 <럭키>가 거둔 성공이 꼭 그랬다.

이번 미틈달엔 어떤 영화가 희망을 싹틔울까. 동토에서도 가끔은 새싹이 핀다던데 이번 달엔 그런 영화를 꼭 만나고 싶다. 아래 미틈달 기대작 10편을 소개한다.

[하나] <램스>

램스포스터 ⓒ 인디플러그


2016년 한국에서 개봉하는 유일한 아이슬란드 영화. 이 나라 인구 가운데 태반은 이름이 '-손'으로 끝난다는데, 이토록 독특한 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영화는 끝없이 펼쳐진 설원 가운데 자리한 한 시골마을을 비춘다. 이곳에는 양을 자식처럼 아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양치기 형제가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양 전염병이 돌고 당국에선 모든 양을 죽여 묻으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난데없이 닥친 위기 가운데 형제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비상식적인 공장식 축산업의 영향으로 구제역이며 조류독감 같은 동물전염병 소식이 시시때때로 들려오고, 그때마다 수십만 마리며 수백만 마리가 우습게 죽어나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램스>가 남길 파문은 또 어떤 것일까?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다. 아, 참. 어떤 독자에겐 다음 문장이 더 끌릴지도 모르겠다. <램스>는 제68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제88회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에도 노미네이트됐다. 3일 개봉.

[둘] <코리올라누스>

코리올라누스포스터 ⓒ 메가박스 필름소사이어티


다음은 영화가 아니라 공연실황 영상이다. 요즘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해외 유명 뮤지컬과 오페라, 연극을 들여와 상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코리올라누스>도 그런 작품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비극으로 조지 루크가 연출했다.

주연은 마블 시리즈의 귀염둥이 악동 '로키' 캐릭터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톰 히들스턴이 맡았다. 톰 히들스턴은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톱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수상한 연애로 세계적인 가십남에 등극하기도 했다.

귀족과 평민세력이 치열한 견제와 암투를 벌이던 공화정체 로마를 배경으로 민중을 혐오하는 전쟁영웅 코리올라누스와 민중과 귀족 사이에서 고뇌하는 메네니우스의 이야기를 다뤘다.

메가박스가 1주일 간 독점 상영한다. 10일 개봉.

[셋] <시소>

시소포스터 ⓒ (주)리틀빅픽쳐스


10일 개봉하는 <시소>는 믿기 힘들만큼 아리고 아름다운 여행을 다룬 76분짜리 다큐멘터리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돼 호평 받은 <물숨>의 감독 고희영씨가 2014년에 찍은 작품으로 제작 2년 만에 뒤늦게 빛을 보게 됐다. 그룹 틴틴파이브 멤버로 유명한 이동우씨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은 이동우씨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자는 그를 TV프로그램에서 봤다는 임재신이란 남자. 임씨는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근육관련 질병을 앓고 있는 40대 남자로 이씨에게 자신의 망막을 기증해 100%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다큐는 어쩌면 평생을 서로 알지 못하고 살다 갔을 두 사람이 함께 제주도로 떠나 짧은 여행을 하는 모습을 담았다. 아름다운 풍광과 매력적인 음악, 두 사람의 진심이 어울린 예쁜 영화가 될 것이다.

[넷] <아내 업고 달리기>

아내 업고 달리기포스터 ⓒ (주)씨엠닉스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 뚱뚱한 여자를 홀대하는 남자는 이 영화를 보라.

10일 개봉하는 영화 <아내 업고 달리기>는 뚱뚱한 아내와 억지 결혼한 남자가 우여곡절 끝에 '아내 업고 달리기' 대회에 출전하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렸다. 남편의 홀대에 시달리다 못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와 뚱뚱한 아내에 마음을 주지 않는 남편. 한국에서라면 '이혼이 정답'이라고 외칠 사람도 적지만은 않겠으나 비행기를 타고도 한나절은 가야하는 인도에선 또 다른 정답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미국 못지않은 영화강국 인도에서 평단과 관객에 호평을 받고 건너온 영화다. 과연 어떤 힘을 감추고 있을지 뚜껑을 열어볼 일이다.

부부사이가 예전 갖지 않아 고민인 독자가 있다면 남편·아내의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나들이 가보는 건 어떨까? 현자의 나라 인도의 영화에서 어떤 깨달음을 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섯] <줄리에타>

줄리에타포스터 ⓒ (주)쇼미미디어앤트레이딩


현존하는 스페인 출신 감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누굴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페드로 알모도바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아카데미시상식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가 인정하는 거장으로 평단과 대중을 모두 만족시키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의 영화에선 성과 소수자, 죄의식 등에 대한 깊은 관심과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이는데 17일 개봉하는 <줄리에타>에서도 그와 같은 특징이 엿보인다. 남편을 잃은 아내, 아버지를 잃은 딸. 남겨진 두 여자가 겪는 상실과 불안, 죄의식에 대한 드라마라 전한다.

겨울의 입구에서 거장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은 관객에 추천한다.

[여섯] <레이디 수잔>

레이디 수잔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눈이 번쩍, 귀가 쫑긋, 가슴이 벌렁할 소식이다. 제인 오스틴이 그린 단 한 명의 악녀, 레이디 수잔이 영화로 찾아온 것. 수잔 역은 <언더월드> 시리즈의 그윽한 여전사 케이트 베킨세일이 맡았다. 마침 <언더월드> 신작도 이달 개봉 가능성이 있어 케이트 베킨세일 팬에겐 더욱 알찬 11월이 아닐까 한다.

자칭 제인 오스틴 광팬을 자처하는 위트 스틸먼이 연출을 맡았다. 팬심 가득한 연출은 득일까 독일까. 궁금함을 감출 수 없는 관객이라면 24일 극장으로 향할 것.

[일곱] <슈퍼소닉>

슈퍼소닉포스터 ⓒ 씨네룩스


어디 비틀즈, 마이클 잭슨 다큐멘터리만 나오란 법 있나. 오아시스도 살아 있는 전설이라 믿는 팬에게 즐거운 소식이다. 글러먹은 성질머리의 전설적인 록스타 갤러거 형제가 직접 제작한 자기네들 이야기다. 과연 오아시스답지 않은가.

볼품없는 지하연습실에서 25만 관객을 불러 모으는 대스타가 되기까지. 마구 내지르던 앳된 목소리가 백년이 지나도 기억될 명곡에 담기기까지. 꿈을 현실로 만든 이 멋지구리한 밴드의 이야기는 24일 개봉한다.

[여덟] <잭 리처: 네버 고 백>

잭 리처: 네버 고 백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톰 크루즈가 돌아온다. 어느덧 만으로 54세. 액션스타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톰 크루즈의 필모그래피에선 퇴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세월은 희대의 청춘스타를 열정적인 청년배우로 만들었고 이내 다시 연륜 쌓인 대배우로 빚어 가는 중이다.

그의 복귀작은 <잭 리처: 네버 고 백>이다. 그와 영원을 약속할 듯 보였던, 니콜과 케이티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와 원치 않는 이별을 당할 뻔한 뒤에 직접 제작한 분노의 영화 <잭 리처>의 후속작이다. 고용인의 불안과 고용주의 불안을 동시에 맛보고 있는 행복한 형님, 톰 크루즈의 새로운 도전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라스트 사무라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나 보다. 에드워드 즈윅이 메가폰을 잡았다. 24일 개봉한다.

[아홉] <테일 오브 테일즈>

테일 오브 테일즈포스터 ⓒ 오드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동화가 영화로 태어난다. 24일 개봉하는 <테일 오브 테일즈>는 이탈리아 유명 동화작가 잠바비스타 바실레의 동명원작을 바탕으로 역시 이탈리아 출신의 색깔 있는 감독 마테오 가로네가 연출했다. 전작 <박제사>, <고모라>, <리얼리티: 꿈의 미로> 등을 통해 세계 영화팬들에게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 마테오 가로네가 자신의 색채를 유감없이 발산한 작품을 찍어냈을지 자못 기대된다.

셀마 헤이엑, 뱅상 카셀, 토비 존스, 존 C. 라일리 등 어느 때보다 쟁쟁한 출연진이 영화에 힘을 더한다. 그림 형제와 안데르센 동화의 원형이 되었다고까지 알려진 잠바비스타 바실레의 동화가 무한한 생명력을 얻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열] <어느날>

어느날포스터 ⓒ 오퍼스픽쳐스


<여자, 정혜>, <멋진 하루>의 감독 이윤기의 신작. 그의 섬세한 표현과 감수성을 그리워한 영화팬들에겐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김남길과 천우희가 주연한 <어느날>은 어느 날 밤 사또의 방에 찾아든 장화와 홍련의 이야기처럼 귀신의 소원을 산 사람이 들어준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귀신이라니, 그 귀신의 소원이라니, 절로 섬뜩한 생각이 들지만 이윤기 감독과 공포물은 어울리지 않는다. 당초 11월 중 개봉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반작업이 늦어지며 12월로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개봉일 미정.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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