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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부인하고 싶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159]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등록|2016.11.04 13:32 수정|2016.11.04 13:32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포스터. 그를 추억하게 된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2000년 부산의 노무현과 2016년 여수의 백무현을 잇는다. 한평생을 권위주의, 지역주의와 맞선 노무현은 더는 이곳에 없고, 유신의 유령들이 권력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경상도는 새누리당이 전라도는 국민의당이 눌러앉은 현실 가운데 과연 역사란 진보한다고 어느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를 보며 노무현을 떠올렸다. 불과 10년 전 이 나라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는 게, 한 나라가 10년 만에 이토록 퇴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국정원과 군의 대선개입 논란, 연이은 인사실패, 사이버 사찰, 세월호 침몰참사, 청와대 문건 유출 등 취임 초기부터 듣는 귀를 의심케 하는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더니 나라 꼴이 아주 갈 데까지 가버린 모양이다. 국기 문란이니 국정농단 같은 섬뜩한 단어가 연일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고, 지라시나 3류 정치드라마에서나 볼법한 황당무계한 시나리오가 점차 설득력을 얻어간다.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이 나라 절반 가까운 시민은 대체 무슨 죄로 이 사태를 감내해야 하는가 말이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2000년 부산의 노무현과 2016년 여수의 백무현을 잇는 다큐멘터리다. 혁명의 기운이 식어가던 런던과 민중의 힘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파리를 배경으로 쓴 찰스 디킨스의 명작 <두 도시 이야기>에서 제목을 따왔다. 참으로 적절한 작명이다. 16년의 세월과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공간의 격차를 뛰어넘어 두 도시의 공통되고 또 다른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낸 이 작품에 이보다 나은 이름이 있을까 싶다.

2000년 부산의 노무현과 2016년 여수의 백무현을 잇다

▲ 노무현을 기억하는 또 다른 무현, 고 백무현 화백.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영화는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부산 북·강서을 선거구에 출마한 노무현 당시 후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당선이 유력했던 종로 지역구를 내주고 모두가 사지(死地)라 했던 부산으로 내려가 낙선한 바로 그 선거다. 상대는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로 박근혜 정권 초기 비서실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당시 선거 과정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수차례 쏟아내 논란을 빚었다.

16년 전 선거 유세과정에서도 노무현은 노무현이었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노무현이었다는 뜻이다. 그는 원칙을 갖고 타협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했다. '바보 노무현'이란 생전 그가 가장 좋아했다는 별명과 노사모로 대표되는 강력한 팬덤을 이때 얻었다. 한국 정치 역사상 최고의 웅변가로 꼽히는 그의 유명한 연설 가운데 여럿도 이때 나왔다.

노무현이 종로 대신 부산을 택한 건 지역감정이 정치, 나아가 한국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역 구도를 깨뜨리지 않고 한국사회에 발전을 가져오기 어렵다고 생각한 노무현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 반해 부산을 택했다. 금배지에 목숨을 거는 정치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선택을 노무현은 결행했고 기꺼이 그 결과를 감내했다.

새정치라는 구호를 들고 정치판에 등장한 안철수가 연일 야당을 향해 날을 세우다 국민의당을 창당, 전라도의 맹주가 된 것과 대비된다. 과연 무엇이 구태정치이고, 무엇이 새 정치인가. 어쩌면 새정치는 아주 오래전부터 국민 곁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여수 을 선거구에 출마한 백무현은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맞서 노무현의 뜻을 펼쳤다. 지역을 넘어 정책을, 감정을 넘어 미래를 말했다. 하지만 2000년의 노무현과 마찬가지로 역부족이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고 노무현 전 대통령. 그가 떠난 지 불과 7년여 만에 한국사회는 국가의 바탕을 뒤흔드는 위기에 직면했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배급위원회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파문을 바라보며 한국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가졌던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새삼 깨우친다.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를 맹렬하게 비난한 프랑스의 수구적 사상가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고 말했다. 내가 아는 한 오늘의 한국에 이보다 아프게 박히는 말은 없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오늘의 참담한 사태가 아니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강한 향수를 지닌 이들 말고는 그리 흥미로운 영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2000년과 2016년의 선거판을 이어 붙여 여전히 지역 패권주의가 득세하는 한국 정치의 왜곡된 현실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이 같은 현실에 던지는 준비된 '한 방'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무현의 연설 영상을 유튜브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을 제한 이 영화의 강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매력적인 답을 내어놓기도 쉽지 않다. 두 도시에서 벌어진 선거판을 단순히 이어 보여주는 외에 영화는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출연진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삽입하고 있는데 영화적 재미와 다루고 있는 내용의 깊이 측면에서 여러모로 부족함이 엿보인다.

그런데도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오늘 한국에서 목격되는 비상식적인 현상을 불과 10여 년 전 차단할 수 있었음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부르짖었던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있었음을 일깨우는 영화란 점에서 볼 가치가 있다. 불과 69개의 스크린도 겨우 확보한 이 영화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파문 이후 박스오피스를 역주행, 흥행 순위 6위에 누적 관객 수 3만4658명(11월 4일 기준)을 기록한 건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오늘따라 그가 그립다.

"최선의 시간이었고,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으며,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절이었고, 불신의 시절이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으며,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 있었고,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으며,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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