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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김영란법' 시행돼도 농부들이 걱정 않는 이유

[독일의 농부 3] 생활 유기농업 연구하는 바덴 원예시험연구소

등록|2016.11.04 14:18 수정|2016.11.04 23:45
지금 한국은 '김영란법'을 걱정하는 농부들이 많다. 법질서와 사회정의를 세우자는 법을 대놓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한국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국가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물론 농부들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의 제정 이유와 목적에 이의가 있을 리 없을 것이다.

'법'이 필요하고 옳다는 건 잘 알겠지만, 농사짓고 먹고 사는 데 지장을 줄까 노심초사다. 심지어 법의 영향으로부터 거의 무관해 보이는 소농들조차 사실 본인은 잘 모르겠는데 주위에서 자꾸 그렇다고 하니 괜히 덩달아 불안하다. 특히 '아름다운 꽃'을 농사짓는 낭만적인 농부들조차 '김영란법' 때문에 난리다.

아닌 게 아니라 법 시행 이후 꽃 소비 감소세가 심각해 화훼시장이 어렵다고 한다. 김영란법이 화훼산업에 유난히 악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단순해보인다. 평소 유통되는 꽃의 85% 가량이 선물용으로 소비되는 국내 화훼시장의 유통구조와 동력 때문이다. 결혼, 장례, 인사 등 각종 경조사에 '특별한 마음과 의도를 담은 선물'로 주고받는 물량이 대부분이라 그렇다.

어쨌든 화훼농가들과 상인들은 '김영란법' 때문에 꽃다발, 화분, 화환을 마음대로 재배할 수도 팔 수도 없으니 울상이라고 한다. 화훼시장이 위축되는 게 당연하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농부들의 민원대로 '멀쩡한 김영란법'을 함부로 개악할 수도 없다. 법을 훼손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대책을 찾아야 한다.

선물용 꽃이나 농산물에서 '일상생활용' 꽃과 농산물'로

연구소 카페처럼 정갈하고 아름답게 ‘꽃’으로 장식된 농기구 창고 ⓒ 정기석


역시 선진농업국인 독일 등 EU에서 그 해법과 대안을 엿볼 수 있다. 그 나라의 합리적인 농부들과 시민들이 하는 것처럼 따라 하면 된다. 독일 등 EU의 시민들은 부담스러운 경조사 선물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일상생활용으로 꽃(화훼)을 소비한다. 자연스레 독일의 농부(원예사)들도 일상생활용 화훼를 개발하고 재배한다.

근본적으로 꽃을 통해 '부정청탁' 등의 부담스러운 동기와 불순한 의도를 전할 수 없다. 그래서 고가의 경조사 화분이나 과잉 치장한 화환이 화훼시장을 주도하지 않는다. 대부분 소박한 화분 장식, 따뜻한 마음으로 포장한 기념일 축하 꽃다발 등이 주종이다. 독일 시민들에게 '꽃'이란 특별한 선물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스며든 생활소품에 가깝다.

독일의 어느 도시를 가든 그 사실은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수백 년 된 고색창연한 고건축물의 베란다, 발코니마다 어김없이 제라늄 등의 꽃 장식이 있다. 가정집 정원조차 온갖 꽃으로 울긋불긋하다. 독일 시민들의 치유정원인 170만 개의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에는 온갖 꽃으로 만발하다. 마치 도시 전체가 꽃밭 같고 국토 전체가 생태치유공원 같다. 

다행히 최근 우리 농식품부도 "기존의 선물용 위주의 꽃 소비 구조를 생활소비로 바꾸는 내용의 대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소비를 독려하고 소비문화를 바꾸는 정도의 노력으로는 부족한 듯하다. 근본적으로 화훼산업과 시장의 발전과 성장을 위한 정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이 일상에서 꽃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용 꽃'을 개발하는 원예기술부터 시작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연구보다 교육을 더 하는, LVG원예시험연구소

하이델베르크하이델베르크대학의 학사주점 ‘붉은황소(Zum roten Ochsen)’를 장식한 꽃 ⓒ 정기석


독일은 '농민'과 별도로 채소, 화훼를 전문적으로 농사짓는 '원예사'가 다른 직종으로 분리되어있을 정도이다. '꽃'을 농사짓는 원예농업에 대한 농가의 관심과 기술수요가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정부의 농정 정책과 전략이 농업 현실이나 농촌 현장과 겉돌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농정이 도시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도시의 생활문화를 선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두 번째 방문하는 중세의 고도 하이델베르크 시는 여전했다. 도시 전체가 꽃밭 같고 생태치유공원같았다. 하이델베르크대학 광장도, '황태자의 첫사랑'이 꽃을 피운 학사주점 '붉은 황소'도 아름다운 꽃과 멋진 나무로 마치 생물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동화, 또는 상서로운 전설같은 하이델베르크 시의 경관도 독일 원예기술의 산물일 것이다.

하이델베르크의 화훼산업과 경관을 모두 책임지는 <바덴 주립 원예시험연구소(LVG Heidelberg ; staatliche lehr-und versuchsanstalt fuer gartenbau heidelberg)>의 존재와 역할 때문일 것이다. LVG연구소는 1952년 10월, 과수 및 채소 재배학교로 설립된 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실용적인 농가교육과 농민후계자 실습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농민의 기술을 심화시키는 교육도 필수적이다. 어쩌면 연구나 기술개발보다 '농부들의 교육'에 더 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크리스토프 힌체(christoph hintze) 연구소장을 비롯 모두 53명의 연구원들이 하이델베르크를 비롯한 바덴주 농부들의 생활과 생업을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에서는 화훼만 특화해 전문적으로 농사짓는 원예농업이 유망하다. 그래서 LVG연구소도 1990년 초 2천만마르크 이상을 투자해 4.5ha의 시험포 등 교육․시험연구 시설을 확충했다. 그에 따른 교육과목도 2배 이상 강화, 심화했음은 물론이다.

종자부터 유기농으로, 농부교육도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연구소 크리스토프 힌체 바덴 원예시험연구소 소장과 연구원들 ⓒ 정기석


LVG연구소의 주요 시험·연구분야는 유기농 채소 재배, 관상용 식물재배에 집중돼 있다. 특히 종자부터 유기농으로 개발하고 생산해 유기농 법인과 유기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수자원 보호, 원예시설 기술, 원예경영 기술도 중요한 업무다. 기본적으로 연구소의 온실은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 여가활용 정원관리법 교육을 통해 시민들의 '일상생활용 화훼' 소비를 촉진하는 책무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힌체 연구소장은 물론, 유기농 채소 담당연구원 프라우 사비네 라이니쉬(frau sabine reinisch)씨는 성실하고 열정적인 공무원으로 보인다. 독일의 친환경 농업을 배우러 온 한국의 농부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애를 썼다. 무엇보다 현장 안내, 설명을 하는 동안 시종일관 웃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감이 확고한 사람에게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표정에서 화훼·채소 분야 등 독일 유기농업에 대한 확고한 농정 철학과 연구개발 방법론을 충분히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

마침 연구소에는 수십 명의 고등학생들이 실습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교과 과정부터 시작되는 독일의 농업전문학교의 학생들이다. 고등학교 2~3학년 과정이 되면 국가와 원예협회 등의 지원을 받아 의무적으로 연간 2~3주 동안 연구소의 현장실습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역시 독일 농업의 경쟁력과 독일 농촌의 안정감은 '어릴 때부터, 종자 때부터'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농업교육에서 비롯된다. 두 눈으로, 분명히 또 확인했다.    

연구소지열 에너지로 유기농 화훼를 시험, 연구하는 유리온실포장 ⓒ 정기석


덧붙이는 글 ※ ‘독일의 농부’ : 문화경관 직불금, 농업회의소, 협동조합,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고 있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유럽연합)의 행복한 농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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