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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베르사이유

[열혈가족 23박24일 유럽여행기⑤]

등록|2016.11.07 10:46 수정|2016.11.07 10:46

베르사이유를 바라보며캠핑카 안에서 ⓒ 최혜정


지난밤은 캠핑카 숙박 첫째 날, 가지고 온 재료들로 한국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소위 '물갈이'라고 불리는 배탈 걱정을 안 해도 되고 편하게 맘껏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Camping de Indigo'는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대규모 캠핑장이다. 넓디넓은 대지에 캠핑카들이 들어설 수 있는 구역과 텐트족들이 들어설 수 있는 구역이 따라 정리되어 있고, 샤워시설, 화장실, 빨래방, 매점, 음식점까지 없는 게 없다.

캠핑카에 물을 채울 수 있는 급수시설과 전기시설도 완벽하다. 캠핑족들의 천국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하루만 머물 예정이다. 우리의 유럽여행 컨셉은 방랑 여행객! 스웨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려면 일정이 빡빡하다.

아침 일찍 캠핑카를 타고 베르사이유로 출발했다. 캠핑카 안에 빨래줄을 만들고 빨래를 잔뜩 널고 움직이니 빨래가 춤을 추었다.

캠핑카 짜파게티점심식사 ⓒ 최혜정


베르사이유는 관광객이 너무 많이 평균 2~3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니 일찍 서둘러 갔는데도 베르사이유 근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우선 그 안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점심으로 캠핑카 안에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 엄청 맛있었다.

점심을 그렇게 간단히 해결하고 베르사이유 정문 앞으로 가니, 해가 들어갔다 나갔다, 비는 내렸다 그쳤다, 줄은 끝도 없고, 입장권은 어디서 사서 들어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아무튼 줄은 서야겠기에 일단 아무데나 줄을 서고 입장권을 구입해오는 걸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무더운 날씨에 들어가면 물을 사먹을 데도 없을 텐데 깜박하고 물을 가져오지 않은 게 생각났다. 우산도 가져와야겠고 하기에 아이들을 잠시 줄 세워 놓고 캠핑카에 물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아이들끼리 두는 게 아니었는데...

베르사이유 입장 줄서기각국 사람들이 다 모였다 ⓒ 최혜정


베르사이유는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만 모인 곳이 아니라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관광객의 지갑을 노리는 소매치기,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 구걸하는 걸인까지 모이는 곳임을 잠시 간과했다.

아이들은 그 사이 표를 사야겠다는 생각에 큰 누나는 표를 사러가고 아들이 혼자 줄을 서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언니를 따라간 줄 알았던 우리 막내딸은 언니와 오빠 사이를 오가는 연락병을 자처하고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넓디넓은 베르사이유 광장을! 혼자!

그러다 누군가 허리춤에 찬 카메라를 슬쩍 빼가는 것을 느꼈단다. 그래서 재빨리 돌아섰더니 그 사람도 깜짝 놀라며 카메라를 손에 든 채 당황하더란다. 우리 딸 예원이, 얼마나 겁이 없는지! 말 한 마디 없이 째려보며 손을 내밀었단다.

분명히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빼내간 소매치기인 줄 알면서 아주 당당하게 내놓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던 것이다. 그 소매치기가 땅꼬마 동양소녀의 당당함에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아무튼 말없이 순순히 카메라를 주고 사라지더란다.

오빠에게로 돌아 온 예원이는 이 무용담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리고 오빠는 폭발하고 말았다. 누나가 돌아오자 어린애를 혼자 보내면 어쩌냐고, 사고 날 뻔 하지 않았냐고, 얼마나 험한 곳인데, 뭐하는 거냐고 불같이 화를 냈단다.

누나는 자세한 상황도 들어보지 않고 따지는 동생 녀석이 황당하고 서운해 화를 내고, 예원이는 동생의 위험을 미리 막지 못한 누나에게 화가 나서 둘은 싸늘하게 식은 채 캠핑카에 갔다 온 엄마와 아빠를 맞이했다. 미안하고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다시는 아이들끼리 두지 않으리라.

베르사이유 궁전 내부는 온통 금칠! 화려함과 섬세함 웅장함이 어우러진 왕족의 거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400년도 더 된 이 거대한 궁정이 아직도 이렇게 화려한데, 궁전을 지었을 그 당시에는 얼마나 화려했으며 얼마나 많은 돈과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고혈들이 들어갔을까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베르사이유거울방 ⓒ 최혜정


베르사이유천정화 ⓒ 최혜정


베르사이유 거울방천정화 ⓒ 최혜정


베르사이유는 유럽 최고의 왕권을 자랑하던 부르봉 왕조가 107년에 걸쳐 살았던 절대군주 체제의 대표적 사적지이다. 루이 13세가 사냥을 하며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지은 작은 별장이었으나 태양왕이라 불린 루이 14세의 막강한 권력과 50년이란 긴 공사기간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만리장성에 고대 중국인들의 피와 땀과 목숨이 묻힌 것처럼, 프랑스 국민의 피와 땀이 베르사이유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베르사이유의 대정원은 궁전보다 더 놀라웠다. 넓디 넓은 정원을 다 돌아오려면 미니 열차를 타고 한참을 돌아야했다. 열차에서 내려서 정원구경을 하며 걷다가 다시 열차를 탈 수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도 이어졌다. 물론 영어로!

베르사이유 정원을 도는 미니 열차열차 줄서기 ⓒ 최혜정


베르사이유 관광은 기다림과 혼잡함, 피곤함을 준다. 반면에 눈부심, 광대함, 놀라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는 '십년감수'라는 추억을 주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은 평범한 날들에 감사하게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캠핑카에서 피로를 풀며 한가로운 저녁을 먹었다. 프랑스에서 장을 봐도 한식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우리들에게 만족하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자, 이제 벨기에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프랑스 북쪽으로 이동이다.

미리 찾아 놓았던 'Camping de sorre' 캠핑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곳은 프랑스 북쪽 작은 시골 마을, 관광객이라곤 없고, 휴가를 위해 조용한 곳을 찾은 프랑스인들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캠핑장을 운영하는 노부부는 영어를 못했다. 20여 년도 전에 배운 서툰 프랑스어로 겨우 수속을 마치고 들어간 캠핑장은 작고 아담했다. 공기는 나무들이 갓 품어낸 산소들로 가득차 있는 듯 맑았고 나무도 풀도 싱그러웠다. 

그런데 이곳은 설거지를 하는 곳도, 화장실도, 샤워장도 모두 아담 사이즈! 프랑스 작은 민박집에 온 듯 했다. 낯설고 이국적인 공기가 우리를 설레게 했다. 동양인을 처음 보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는 옆 캠핑카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우리를 보느라 즐거웠을 것이다. 두 얼굴의 베르사이유를 만나느라 피곤했던 하루를 뒤로하고 꿈결같이 편안하고 행복한 밤을 맞이했다.

캠핑장프랑스 북쪽 벨기에 국경 근처 ⓒ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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