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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처럼 살다가 떠난 백남기 농민 영면에 들다

고 백남기 농민의 광주 금남로 노제와 묘역 하관예절

등록|2016.11.07 15:38 수정|2016.11.07 15:54

▲ 고 백남기 농민 민주 사회장 노제가 거행된 광주광역시 금남로 무대에서 광주지역노래패가 조가를 부르는 모습 ⓒ 임무택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진압하는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후 317일간의 긴 사투 끝에 영면하신 고 백남기 농민께서 40여일만에 서울대병원에서 장례를 치루고 11월 6일 정오에 금남로 민주광장에서 노제가 진행되었습니다.

▲ 고 백남기 농민의 사회장 노제가 거행되는 금남로에 운집한 시민들의 모습 ⓒ 임무택


▲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김명섭신부가 조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노제는 보성 고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정형택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장의 사회로 시작하여 한계수 가톨릭농민회 광주대교구연합회장의 년보낭독에 이어 문경식 장례위원회 상임위원장과 김명섭 신부의 조사가 진행되고 정찬경 바리톤이 조가를 불러 장내가 숙연해지기도 하였습니다.

▲ 히다얏 그린필드 IUF-국제식품연맹 아태지역위원회 부위원장이 조사를 하고 통역을 하는 모습 ⓒ 임무택


▲ 노제의 사회를 본 정형택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장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광주전남교육문화원 '솟터'팀의 씻김굿으로 고 백남기 농민의 영혼을 달래고 금남로 민주광장에서 출발하여 금남로4가, 대인시장, 계림오거리, 광고앞, 서방시장까지 운구를 행진하였으며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한 후 망월동 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 광주전남교육문화원 '솟터'와 놀이패 신명의 오숙현씨가 씻김굿을 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 광주전남교육문화원 '솟터'와 놀이패 신명의 오숙현씨가 씻김굿을 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상식이 통하는 사회, 농민의 권익 보호에 긴 세월 헌신하셨고 2015년 11월에 쌀값 폭락을 비롯해서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더 힘들어지는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상경시위에 참여하던 중 경찰이 정조준한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깨어나지 못하셨습니다.

▲ 운구행렬이 시작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 운구행렬 맨 앞에 선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이 '살인정권 퇴진하라!'라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쌀이 나라의 뿌리이고 밥이 목숨이라며 "밥쌀 수입중단", "쌀값 21만원 대선공약"을 외치던 고 백남기 농민께서는 유신철폐 시위를 주도하여 투옥되면서 3번의 중앙대학교 제적 등 민주화를 위하여 치열한 삶을 사셨고 가톨릭농민회 전국연합회장,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으로 헌신하셨습니다.

▲ 고 백남기 농민을 운구한 꽃상여 ⓒ 임무택


▲ 화장을 마치고 민주열사 묘역에 들어서면서 입구 바닥에 '전두환 대통령 민박'기념 표지석을 밟고 있는 모습 ⓒ 임무택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민족의 생명력이자 정신적 고향인 '땅'을 지켜 내셨던 고 백남기 농민께서는 우리 모두의 가장이자 아버지이셨기에 님의 고귀한 뜻과 치열했던 실천의 삶을 가슴깊이 새기며 침묵하지 않고 깨어있는 힘으로 올곧은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을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 이영선 신부(천주교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장)가 하관예절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 아들 백두산씨가 고 백남기 농민의 유골함을 안장하고 있는 모습 ⓒ 임무택


▲ 고 백남기 농민 하관예절에 참석한 사람들 ⓒ 임무택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고단했던 삶은 떨쳐버리고 막걸리 한사발 걸치며 신명나게 꽹과리 두드리며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 고 백남기 농민의 하관예절이 끝나고 봉분을 쌓기 직전의 묘역 모습 ⓒ 임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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