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 그게 인생이야
[열혈가족 23박24일 유럽여행기6]
▲ 벨기에 가는 길구글지도 ⓒ 최혜정
Camping de sorel에서의 하룻밤은 꿈결 같았다. 한여름이라 더울 줄 알았던 캠핑카 숙박은 밤엔 오히려 추워서 옷을 껴입을 정도로 쌀쌀했고, 덥지 않아 잠자는 데도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캠핑장의 공기는 맑고 깨끗했다. 안개가 자욱이 깔린 새벽, 캠핑장의 싱그런 공기는 '나니아 대륙'의 어느 곳에 서 있는 듯 신비로운 느낌을 만들어냈다.
갈 길이 구만리, 아침밥을 챙겨 먹자마자 길을 떠났다. 이제 프랑스를 떠나 북쪽으로 올라가야한다. 제일 먼저 '벨기에'다. 국토면적이 대한민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 벨기에에서 우리가 갈 곳은 수도 '브뤼셀'이다. 브뤼셀에는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이 있고, 꼭 먹어봐야할 벨기에 전통음식 '물(Moules:홍합요리)가 있다.
▲ 벨기에 가는 길고속도로 표지ㅁ판 ⓒ 최혜정
구글지도는 정말 놀랍다. 인터넷만 접속되면 세계 여러 나라의 원하는 곳을 모두 보여준다. 낯선 땅 유럽에 와서 구글지도는 우리의 안내자가 되었다. 구글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달리는 남편은 더 놀랍다. 늘 '내 고장 지리'가 부전공이라며 길에 대한 호기심과 남다른 감각을 보여주었던 남편은 이제 '유럽 지리'에 통달할 듯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은수는 열심히 캠핑장을 찾는다. 오늘 밤도 온 가족이 편안하게 쉴 곳이 있어야하니 캠핑장을 찾은 일은 제일 중요하다.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면 아무데나 세워놓고 자도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물을 공급해야하고 화장실도 비워야하고,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무 길에나 세워놓고 자는 건 위험하다. 캠핑카를 노리는 도둑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돈이 좀 들어도 안전이 제일 아닌가!
3시간 남짓 달리니 브뤼셀에 도착했다. 광장 외곽에 주차장을 찾아 캠핑카를 세우고 브뤼셀 광장으로 향했다. 지도를 펴고 이정표를 보고 물어도 보며 찾아가는 길은 늘 서바이벌이다. 브뤼셀은 시청 광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시청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그랑플라스 광장'의 건물들, 그 건물들 하나하나는 길드하우스의 역할을 했던 건물들이다.
▲ 벨기에 광장4식구. 은수는 어디? 사진 찍지요. ⓒ 최혜정
고풍스러운 자태로 그 옛날의 풍요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길드하우스는 상인조합의 쉼터가 되고 친목장소가 되던 곳이다. 지금은 레스토랑이나 은행, 카페 등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상공업의 중심이 되었던 과거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책으로 말하는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왜곡될 수 있지만 역사를 담고 있는 건축물들과 문화재, 예술품들은 수백 년, 수천 년을 지키고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이 간직되어 있기에 그 숨결로 역사의 진실을 느끼게 해준다.
광장 가득 관광객들을 '그랑플라스'의 아름다움을 사진기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코린트, 비잔트, 로마네스크...' 하며 외우던 건축양식이 눈앞에 있으니 '여기가 유럽이구나'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1년에 만들어진 브뤼셀의 마스코트 '오줌싸개 동상'은 관광객들이 실망하고 가는 유럽의 대표적 명소란다. 한때 프랑스 루이 15세가 가져가는 바람에 유명해졌지만 크기가 불과 60c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동상이다. 그 앞에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사진을 찍으려고 안달을 하는 모습들이 우스웠다.
▲ 벨기에 전통음식 Moules벨기에식 홍합탕 ⓒ 최혜정
브뤼셀에서 또 꼭 해봐야 하는 것은 벨기에 음식 물(Moules)을 먹어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앞에 떡하니 나온 물(Moules)은 하나도 낯설지 않는 그냥 홍합탕~ 홍합탕에 와인 첨가, 홍합탕에 크림소스 첨가, 홍합탕에 토마토소스 첨가! 그 정도 맛이었다. 집에 가서 해먹을 수 있으니 그립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간식도 빠뜨릴 수 없었다. 벨기에 브뤼셀에 와서 와플을 안 먹어보면 억울한 일! 벨기에 전통 와플에는 베이킹파우더 대신 이스트가 사용되어 더 담백한 것이 특징이란다. 하지만 현대의 벨기에 와플은 그럴 것 같진 않고... 줄서서 사고, 길에서 먹는 간식은 어느 나라에서나 맛있다.
네덜란드 캠핑장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벨기에의 또다른 유명 관광지 안트베르펜에 들러 애니메이션 <프란다스의 개>의 배경이 되었던 성당에 들러보고 싶었다. 그러나 안트베르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늦어 대성당 문을 닫았을 시각. 아쉽게도 광장 근처를 캠핑카 안에서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피곤한 아이들은 이미 곯아떨어졌고, 운전하는 아빠와 나만 광장을 돌아봤을 뿐이었다. 보지도 못할 텐데 괜히 시간을 낭비했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미리 찾아놓은 캠핑장은 찾을 수가 없었다. 캠핑장을 찾아 시 외곽으로 들어가다 보면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 구글지도가 먹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캠핑장 담당자인 은수는 초조해서 눈물이 터질 지경이 되었다.
▲ 벨기에 와플벨기에 길거리 음식 ⓒ 최혜정
누가 못 찾는다고 야단을 치는 것도 아닌데 사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몰랐다. 표지판에 의지해 캠핑장을 찾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 길에서 난관에 봉착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불빛은 우리 차 불빛 밖에 없었다. 다람쥐와 토끼가 뛰어다니는 시골 길을 따라 가다보니 막다른 길. 맙소사. 길을 잃었다. 안트페르펜에서 시간을 낭비해서도 안 되었고, 네덜란드까지 넘어와서 캠핑장을 잡으려했던 것도 무리였다.
그런데 막다른 길 끝을 자세히 보니 무슨 철조망이 있었다. 불빛을 비추니 사람이 나왔다. 할렐루야! 캠핑장이었다. 아빠는 후진을 해서 타고난 방향감각으로 캠핑장의 입구를 찾았다. 캠핑장 개방시간이 끝나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내려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왔고 길을 잃어 늦었다고 제발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 했다. 감사하게도 캠핑장 주인은 허락을 했고 늦은 밤 우리 가족이 차를 세울 곳을 친절히 안내해주었다. 은수는 긴장이 풀리자 펑펑 울었다. 그래서 같이 울었다. 비로소 편안히 쉴 수 있는 밤에 감사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 계획했던 것들이 척척 들어맞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그렇다. 하지만 할 수 없었던 것, 하지 못했던 것, 힘들었던 것, 이런 것들은 모두 인생의 토양에 심어지는 작은 씨앗이 된다. 더 큰 나무로 자랄 수 있게 꽁꽁 생명을 숨겨둔 씨앗처럼 우리 가슴 속에 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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