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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 그래서 다시 간다

[다섯 부부의 인상파식 여행] 아! 이베리아반도②

등록|2016.11.08 15:05 수정|2016.11.09 12:03

▲ 돌산에 둘러 싸이고 숲에 가린 알바라신 ⓒ 길동무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누구나 많은 자료를 검토한다. 여행사 상품을 따라 패키지 여행을 가지 않는 한 취향에 따라 중요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일정을 정한다. 오래 머무를 곳과 짧게 훑을 곳을 결정하고, 이동 거리도 신중하게 참작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식사 시간과 장소도 중요하게 고려한다.

길동무 다섯 부부 여행도 이는 늘 중요한 검토 사항이다. 다음 여행지가 결정되면 코디를 담당한 길 대장이 이 모든 것을 고려해 스케줄을 짠다. 아울러 현지의 숙련된 전문가를 선정하여 오랜 기간을 두고 조율을 거듭한다.

▲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마을 알바라신으로 들어가는 계곡의 단풍 ⓒ 길동무


그런데도 여행 중에 변수가 생길 가능성은 늘 있다. 길동무 여행 신조가 '많은 곳 다니는 것으로 기록 세우지 말자'이기도 하거니와 벌써 십여 년을 함께 다니는 다섯 부부이기에 의견 통일이 빨라 여행 중에도 사정에 따라 일정이 바뀔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4년 전 아프리카 4개국을 갔을 때도 그랬다. 요하네스버그에 가서야 남아공의 블라이드 리버 캐년(Blyde River Canyon)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긴급회의를 했다. 결론이 쉽게 맺어졌다. 그럴 때마다 길동무의 여행 핵심 지침은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언제 또 여기를 온다고."

그렇다. 온 김에 볼 것 보고, 먹을 것 먹고, 누릴 것 누리고 가야 한다. 일정 변동으로 새벽 3시에 기상했다. 호텔에 사정하여 어렵게 아침 도시락도 준비했다. 그날 오후 일정 쇼핑도 바뀐 일정의 볼모로 잡혔다. 그러나 다녀온 후 결론은 모두 대만족이었다.

이번 이베리아 반도 여행도 마찬가지 변수가 생겼다. 애초에 계획이 없었던 곳이지만 좋은 곳이 생겼다. 조금 부지런을 떨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바라신(Albarracin)이다. 발렌시아에서 테루엘(Taruel)을 거쳐 사라고사로 가는 일정에 알바라신을 들르기로 했다.

마드리드로부터 275km, 그러나 테루엘에서는 소요시간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가이드 이 선생의 추천은 길동무에게 쾌재였다. 기상 시간을 당기고 아침 식사도 서둘렀다.

"와! 정말 좋다. 오지 않았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어요."

성격 좋고 표현에 적극적인 유프카씨다.

"어떻게 후회를 해요? 오지 않았으면 알지도 못했을 텐데."

이번엔 길 대장이 나섰다. 길동무 여행 코디다운 판단력이다. 알바라신(神) 덕이죠? 프카 씨는 생글거리며 환호성부터 질렀다. 이구동성 여성 길동무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탄성은 알바라신에 점점 가까워지면서부터 분위기가 감지되었던 바다. 끝을 보일 것 같지 않던 평원, 해발 1100m를 넘나드는 고지의 평원이 어느새 다가온 얕은 능선 하나를 넘어 과달라비아르 강(Rio Guadalaviar)이 흐르는 계곡으로 진입한 뒤부터다.

▲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알바라신 ⓒ 길동무


▲ 알바라신 돌 위의 집 ⓒ 길동무


구불구불 강줄기를 타고 닦인 길은 마치 임꺽정의 산채를 찾아가듯 바위산을 좌우로 헤치더니, 하나둘 나타난 산골 농가를 미련 없이 뒤로 흘린다. 그때부터 신음이 들렸다. 우르르 차창으로 몰려든 단풍 때문이다. 민둥산일 수밖에 없는 돌산 사이로 흐른 작은 강의 혜택이리라.

계곡과 농가 주변엔 상큼한 연초록색과 순도 높은 노란색, 맑은 주황색을 얹어 버무린 황홀경이 무더기 무더기로 펼쳐졌다. 단풍 없는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가슴을 사정없이 흔들기에 충분한 단풍, 그 사이에서 간간이 얼굴을 내민 붉은색 단풍은 화룡정점이었다. 능히 이월에 피는 꽃을 능가할 매혹이다.

돌산에 둘러싸인 해발 1171m의 알바라신, 스페인 동부에 위치한 아라곤 지방 주도 테루엘에 속한 작은 마을 알바라신은 고풍이 철철 넘쳤다. 지난 1961년 스페인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했다. 길도 집들도 집을 덮은 기와도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 시간이 멈춘듯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 ⓒ 길동무


▲ 고풍의 집과 집 사이로 아득히 성이 보이고 ⓒ 길동무


누구라서 시간을 멈출 수 있겠는가? 째깍째깍 그침이 없으되 중세의 시계 하나 있어 알바라신의 시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길과 벽은 짙은 분홍빛으로 나이 들었고, 돌가루 기와는 나이든 분홍빛 멋의 본보기였다.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다듬으면 집지을 만큼 돌이 생기지 싶게 돌이 많았다. 돌을 노래한 시인이 많거니와 많고 많은 돌이 이렇게 사람의 감성에 불을 지르다니.

거기, 처처에 여인 얼굴의 립스틱 같은 포인트가 있었다. 단풍들, 돌 틈에서 자라 그리 아릿하고 그리 환할까? 늦가을 녹황색이 담갈색 바위산 틈에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알바라신은 그냥 가슴 시린 한 편의 서사시였다. 퍼질러 앉아 한 며칠 바라봐도 절대 질리지 않을 풍경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찾아오는 사람이 적어 훼방도 없을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 그냥 그대로 구도가 잡혔다. 사진을 인화하면 역사와 돌의 마티에르 효과가 두텁게 만져질 것 같았다. 마을이 생긴 때를 따져볼 것도 없이 천년 세월이 쌓이면 이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노크롬 회화가 거기 지천이었다. 돌아가서 골라낸 사진 큼지막하게 확대하여 틀 안에 넣어 걸리라 마음먹었다. 내 마음에서 중세가 노닐고 돌에서 나온 보석이 아니라 그냥 돌이 보석이 되어 발산하는 그 단단한 감성이 변하지 않도록.

▲ 고풍 물씬 풍기는 중세의 집, 돌산과 그 사이의 맑은 단풍 ⓒ 길동무


"이 동네에서 이장 노릇이나 하고 살까."
"누구 맘대로?"

깜짝이야. 혼잔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골목 끝 집 뒤 언덕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보며 중얼거린 말인데 어느 사이 따라온 아내가 들었나 보다. 얼마를 돌았을까? 흩어졌던 길동무들이 작은 마을의 작은 광장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다시 보는 길동무의 얼굴들이 올 때와 달랐다. 고아함으로 빛났다. 이심전심으로 제각기 선 자리에서 자세를 잡았다. 사진 안으로 나이 먹은 소년 소녀들의 모습이 들어앉았다.

▲ 알바라신 작은 마을의 작은 광장에서 길동무 다섯 부부는 나이 먹은 소년 소녀가 되어 한 장의 사진 안으로 들어 앉았다. ⓒ 길동무


"역시 우린 여행하기 딱 좋은 나이야."

길동무 중 가장 연장인 류 테너 형님의 일성, 모두 공감 백배였다. 가이드 이 선생은 그사이 작은 레스토랑(La Taberra)을 탐색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 또 다른 환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여행 식사 중에 가장 오래 기억될 만한 식사가 중세의 느낌이 물씬 나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맛의 출처는 다양하다. 화려한 모양과 색, 넘치는 풍성함, 배어나는 정성 등 다 맛을 배가하는 원인이다. 그러나 역시 맛은 맛에 있다. 재료이건 솜씨이건 맛은 맛이 결과다. 그리고 맛은 누가 뭐래도 먹는 이의 입맛이다. 바로 그거다. 모두의 입맛에 딱 맞았다. 주문한 메뉴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햄 모둠, 다진 버섯 계란볶음 순대, 양 갈비, 모둠 하몬(숙성 돼지고기) 등 일종의 스페인 가정식이었다. 물론 길동무의 입맛은 식전의 알바라신 경치가 한몫 했을 것이다. 와인 네 병을 함께 비운 점심이었다. 마지막 탄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맛은 역시 값이야. 오늘 점심도 제가 냅니다."

모임의 회계로서 점심값을 치른 복나눔씨였다. 가이드 이 선생을 포함 11명이 흥겹고 푸짐하게 먹은 점심값이 144유로, 썩 좋은 품질의 와인 네 병이 포함된 값이었다. 주인도 서빙을 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식사하고 나가는 손님들이 만족한 모습으로 그리 크게 웃고 나가니 얼마나 흐뭇할 일인가. 웃게 만든 복나눔씨도 또 크게 웃은 길동무도 모두 복을 나눈 셈이다.

▲ 알바라신을 뒤로 두고 길동무를 전송하던 길 ⓒ 길동무


"알바라신은 봄이 환상입니다. 야생화 천국이 되지요."

떠날 시간 임박한데 이게 뭔 유혹이란 말인가? 이 선생의 말 때문이 아니다. 우리 길동무는 언젠가 다시 알바라신에 가야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덤으로 갔으니 이제는 정식으로 가야 한다. 덤으로 간 것은 알바라신의 역사와 품격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둘째 길동무 여행 지침 "우리가 언제 또 여길 온다고"가 어긋났다. 갈 곳과 볼 것을 남겨 놓고 돌아섰다. 너무 좋아서, 너무 들떠서 그만 마을 입구 인포메이션 센터가 제공하는 투어리스트 중 하이킹 코스 탐방을 남겨두고 왔다.

한 시간 남짓이면 돌아올 수 있다는 코스, 성벽 넘어 뒷길과 계곡물 따라 돌아난 트레킹 길의 이정표를 따라 가지 않았다. 거기 오솔길 곳곳에 스민 이야기들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왔다. 그러므로 길동무는 알바라신에 빚을 졌다. 알바라신의 천천히 가는 중세의 시계여 변함이 없을지어다. 언젠가는 다시 갈 길동무를 기다리며.
덧붙이는 글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 한인 경제신문 사이트 PAG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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