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망언' 목사 면담... 박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불통과 오만 드러낸 7일 종교계 인사 면담
▲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를 방문한 기독교 원로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 오른쪽 첫번째)와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원로, 오른쪽 두번째)를 만나 국정현안에 관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박근혜 위원장은 자기의 심기를 요만큼이라도 거스르거나 나쁜 말을 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그가 용서하는 사람은 딱 한 명 자기 자신이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대변인 시절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품성과 관련해 남긴 유명한 어록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3년 8개월 동안 보여준 행적은 전 전 의원의 평가가 옳았음을 입증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박 대통령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자신의 귀를 간지럽혀 줄 사람들만 가까이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7일 박 대통령의 동정을 보면, 이 같은 해석이 '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날 박 대통령은 종교계 인사를 만났다. 그가 만난 인사는 가톨릭 염수정 추기경과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였다. 김삼환 목사는 세월호 참사 때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세월호를)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망언을 해 빈축을 산 바 있었다.
염 추기경 역시 현 시국에 무관심으로 일관해 개혁 성향의 가톨릭 신도들 사이에선 원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박 대통령과 이들과의 만남을 두고 소셜 미디어는 온종일 들끓었다.
그런데 김 원로목사나 염 추기경의 지난 행적은 본질이 아니다. 그것보다 굳이 박 대통령이 민심을 듣겠다며 불러들인 김 원로목사의 과거 발언에 주목해 보자. 김 원로목사는 세월호 참사 바로 한 달 전인 2014년 3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렇게 설교했다.
"대한민국은 통일의 비전을 가진 대통령을 만났다. 통일은 대박이다. 대운이요, 대길이다. 교회도 통일을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고레스(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계몽군주)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
박 대통령은 신상필벌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충성심'이었다. 최태민·최순실 모녀를 가까이 둔 이유도 그들이 자신에게 (표면적으로)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최순실이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에게 남긴 한 마디는 무척 의미심장하다.
"내가 지금까지 언니(박 대통령을 지칭) 옆에서 의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내가 이만큼 받고 있잖아."
결국 박 대통령이 민심을 듣겠다며 김 원로목사를 초청한 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나 정국이 요동치는 와중에서도 자신은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본질적인 문제 외면하고, '사이비 종교' 해명에 급급한 박 대통령
더욱 심각한 건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다. 박 대통령은 염 추기경, 김 원로목사와의 면담 석상에서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등 성도들에게 오해받을 사이비 종교 관련 소문 등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지난 4일 있었던 제2차 대국민 담화에서도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사이비 종교 신도' 해명에 대한 집착은 지난달 각계 원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났다. <한겨레>는 1일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원로들에게 "저한테 '사교(邪敎)에 빠졌다'는 말까지 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지금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원인은 사이비 종교에 관한 뜬소문이 아니다. 최순실씨의 아버지 고 최태민 목사가 사이비 종교인이라는 사실보다, 박 대통령이 아무런 공직도 없고 아무런 검증도 받지 않은, 단지 개인적 인연일 뿐인 최순실에게 국정을 위임하다시피 한 게 더 본질적인 문제 아닌가. 이는 대의 민주주의를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모독한 행위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는 근본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자신에게 감언이설을 늘어놓은 종교인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였으니, 전여옥 전 의원의 일갈 그대로 박 대통령이 용서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임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4일 제2차 대국민담화에서 "국내외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천명했다.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 박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이다.
8일 박 대통령은 김병준 총리 임명을 철회를 시사하며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해 주신다면 임명해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을 이대로 뒀다간 정말 나라가 위태롭겠다는 판단이 든다. 그 이유는 박 대통령이 여전히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면서 권력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지난 3년 8개월간의 실정으로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 박 대통령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시민들의 힘이 더더욱 시급한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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