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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은 많아졌는데 제대로 된 무당 찾기 어려워"

경기안택굿은 바로 놀이판... 장엄 그 자체였다

등록|2016.11.08 15:07 수정|2016.11.08 15:07

고성주일년에 봄, 가을 두 차례 맞이굿을 여는 고성주씨 ⓒ 하주성


"굿이란게 무엇입니까? 모두가 즐거워야죠. 우선 정성을 들여 차린 음식과 흥겨운 굿판,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만족해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굿판 아닙니까?"

지난 6일, 하루 종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에 소재한 고성주씨의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이날 고성주(남, 64세)씨의 집을 찾아온 사람들만 어림잡아 300여 명 정도. 몇 차례 집안 가득했던 사람들이 바뀌고는 했다. 이날 찾아온 사람들은 대개 고성주씨의 단골네들이다. 고성주씨가 신내림을 받은 강신무이기 때문이다.

진적굿상진적을 올리기 위해 마련한 굿상. 차린 음식만 해도 엄청난 앙이다. 굿을 마치면 이 많은 음식을 모두 나누어준다 ⓒ 하주성


벌써 45년째. 한 해가 거르지 않고 봄과 가을에 자신이 섬기는 신령들과 단골들을 위한 맞이굿판을 연다. 고성주씨는 이 맞이굿은 경기안택굿을 보전하기 위한 안택굿 한마당으로 열고 있다. 음력 3월 7일과 10월 7일은 매년 고성주씨가 전안(신을 모셔 놓은 곳)에 손수 장만한 각종 음식들과 많은 전과 떡, 과일 등으로 상을 마련해 놓고 하루 종일 질펀한 굿판을 벌인다.

고성주씨의 맞이굿은 유명하다. 신을 받고 난 후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이날 맞이굿에는 악사 4명과 굿을 도와줄 굿꾼 5명 그리고 춤을 추는 사람 4명 등이 함께 판을 벌였다. 마침 일요일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굿판을 찾아왔다. 단골네들도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면서 잘 차려 내온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들을 하느라 바쁘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배부르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이 고성주씨의 맞이굿이다.

천궁맞이고성주씩 모든 신령을 불러들이는 찬궁맞이를 하고 있다 ⓒ 하주성


4대째 가계로 전해진 무계(巫系)... "무당이 없어서 굿을 못한다"는데

17새의 어린 나이에 신내림을 받은 고성주씨는 집안으로 전해진 경기안택굿을 지켜오는 유일한 무계이다. 외조모로부터 고모에 걸치고 고모의 신딸을 거쳐 고성주씨까지 100년 이상을 경기안택굿을 지켜오고 있다. 경기안택굿은 춤사위나 장단, 그리고 굿을 진행하는 절차가 서울과는 다르다. 일부 학자들은 경기 안택굿을 "춤과 소리 음악의 결정판"이라고 한다. "앞으로 이런 굿판을 보기 힘들 것이다. 아마 이 시대 고성주씨의 굿판이 끝나면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 듯하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맞이굿 전 과정을 녹화를 하고는 한다,

"예전에 최씨 어머니가 제가 내림을 받고나서 한 말이 있어요. '이 다음에 무당은 많은데 굿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굿을 못한다'고요. 그런데 요즈음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아요. 정말 무당은 더 많아졌는데 굿을 제대로 하는 무당을 찾기가 어려워요."

촛불굿판에 참석해 쌀을 올린 단골들이 밝힌 촛불 ⓒ 하주성


신장무녀 승경숙이 신장, 대감굿을 하고 있다 ⓒ 하주성


굿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에 고성주씨가 하는 말이다. 실제로 처음 25년 전에 고성주씨의 맞이굿판에 들어가면 내로라하는 큰만신들이 굿판에 들어와 하루 종일 굿에 취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때와는 양상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오전 6시부터 시작한 맞이굿이 밤 10시가 넘어 끝날 때까지 거의 고성주씨가 대부분을 맡아서 굿을 진행하고 있다. 그만큼 경기안택굿을 제대로 감당해 내는 무속인들이 다 세상을 떠나버렸다.

"맞이굿은 신령님께 드리는 최고의 굿판인데 음식을 사다하는 사람들도 있데요. 돈만주면 굿상을 차릴 수 있게 전이면 나물 등 음식을 만들어다 주기도 한다네요. 모든 것을 집에서 준비를 하지 않고 사다가 올리면 그 안에 정성이 있기나 하겠어요. 굿은 정성이리고 하잖아요. 정성을 드려야 단골들도 덕을 보죠."

별상별상굿을 하고 있는 고성주씨 ⓒ 하주성


별상고성주씨가 별상굿을 하고 있다. 별상에서는 작두에 오르는데 올해는 작두에 오르지 않았다 ⓒ 하주성


일일이 준비한 각종 음식에 보는 사람들도 감탄해

굿은 즐겁고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것이 고성주씨가 배우고 실행하는 굿판의 논리이다. 하기에 맞이굿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부터 모든 것을 준비한다. 굿상에 진설하는 각종 제수는 물론 굿판을 찾아 온 사람들에게 대접할 음식 하나하나를 모두 고성주씨가 직접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고성주씨의 맞이굿판에 가면 가장 먼저 받게되는 것이 바로 음식상이다. 20여 가지나 되는 각종 반찬에 24시간을 끓여 준비한 탕국 그리고 각종 떡과 전, 고기까지 푸짐하게 한 상 차려준다. 상을 받는 사람들마다 눈이 커진다. 맞이굿날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준비하는 사람들만 해도 10여 명에 달한다. 모든 사람들이 고성주씨의 단골들이다. 누구나 이 집에선 대우를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대접을 하려고 한다. 고성주씨의 단골들이 매년 늘어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밤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상을 받은 손님들이 모여있다 ⓒ 하주성


터대감고성주씨의 맞이굿 터대감은 질펀하다. 마당으로 나온 단골들도 모두 전복차림이다 ⓒ 하주성


봄, 가을로 많은 음식을 차려 판을 벌이는 고성주씨의 맞이굿판. 신내림을 받고나서 매년 한 해도 거르지 않는 맞이굿판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딱히 표현할 말이 없다. 떡 시루만 해도 80여 개나 된다. 그 시루를 밤새도록 쪄낸다. 떡시루를 받는 사람들은 복을 받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밤새 준비한 떡시루를 받아가는 단골들은 절로 입이 함지박처럼 절어진다. 단골들이 앞 다투어 맞이굿판에 정성을 보태는 이유가 바로 어려움 속에서도 일이 잘 풀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누가 이렇게 일주일 전부터 음식이며 모든 준비를 하겠어요. 그런 정성이 가득한 굿판이니 복을 받을 만도 하죠. 아마 앞으로는 이런 굿판을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이제 이렇게 준비를 하는 사람도 없을 테고요."

도깨비대감경기 전통굿에서는 대금굿에서 쌀말을 타는 도깨비대감을 논다 ⓒ 하주성


장엄 그 자체인 경기안택굿, 모두가 흥겨운 굿

고성주씨의 맞이굿에서 가장 흥겨운 놀이판은 모든 단골들이 함께 참여하는 터주굿이다. 터대감을 놀리는 이 굿거리는 마당에 굿상을 차려놓고 단골들과 맞이굿을 보러 온 사람들도 모두 참여를 한다. 전복을 입고 얼굴에는 검정칠을 한다, 밤이 깊은 시간이라 '도깨비굿'을 하는 것이다.

경기안택굿의 터굿에서는 쌀말을 탄다. 쌀말 위에 올라간 무격이 말 위에서 뛰면서 원을 그린다. 도깨비굿을 할 때는 집안의 불을 모두 끈다. 그리고 말 위에서 신탁이라는 공수를 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놀이판은 잡입가경이다. 그저 흥겹게 뛰놀고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고성주씨의 맞이굿 한마당. 벌써 내년 봄 맞이굿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티스토리 블로그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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