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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접수, 한 곳은 모두가 원치 않는 곳에..." 왜?

[그렇게 고3 엄마가 된다 ③] 담임이 운을 뗐다... "톡 까놓고 말씀드릴게요"

등록|2016.11.10 20:49 수정|2016.12.28 14:09
"제가 부모님께 솔직히 톡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돌려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그게 좋으시겠죠?"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고3 담임 선생님 말에 남편도 좋다고 답했다. 하지만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시는지 몰라 두려움이 커졌다.

2015년 7월 초, 고3인 첫째가 담임 선생님과 면담 일을 알려줄 때는 상담 중에 이런 심각한 기분을 맛보게 될 줄 몰랐다. 상담은 부모 모두 필참이라고 했다. 오후 7시 상담 약속 시각에 절대 늦으면 안 된다고 첫째가 당부했다. 우리 뒤에도 상담이 하나가 더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나는 학교로 향했다. 학교 담벼락엔 전년도 주요 대학 합격자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펄럭이고 있다. 교문을 지나며 묘한 긴장감이 몸을 감쌌다.

학교 건물은 우중충하지만 아이들 표정은 밝다. 아이들이 공부에 찌들어 표정이 어두울 줄 알았는데 칫솔과 수건을 들고 웃고 떠든다. 배드민턴을 하는 아이들도 보인다. 어디 MT라도 온 것 같다.

고3만 학교에 갇혀 사는 건 아니었다

교무실에 들어갔다. 칠판에는 올 한해 대입 일정표가 빽빽하게 적혀있다. 생활기록부 작성 마감일, 수시 원서 접수, 수능. 저 수 많은 일정을 챙기려면 얼마나 정신없을까? 선생님 책상 어디든 자료들로 탑이 쌓여 있다. 치약과 칫솔 수건도 보인다. 고3 학생들만 학교에 갇혀서 사는 건 아니다. 고3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우리 첫째, 1번도 따라 들어온다. 생각보다 젊으시다. 선생님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솔직히 톡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셨다.

"지금 1번(첫째) 성적으로는 정시는 안 됩니다. 정시는 모의고사 성적이 좋아야 하는데 지금 1번은 모의고사보다는 내신이 좀 높은 편이에요. 이런 아이들은 재수해도 성적이 오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수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아 주시니 다행이다. 재수는 고민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니까 무조건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리고 1번은 학생부종학합전형으로 쓸 게 충분해요. 문과인데도 지금까지 발명을 계속했잖아요. 이런 케이스가 진짜 드물어요."

발명반 활동, 동전의 앞뒤

이게 뭔 소리인가? 문과생이 발명반 활동한다고 내가 엄청 구박했는데. 1번은 초등학교 때 발명반 활동을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이어왔다. 문·이과 선택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발명반 활동을 살리려면 이과에 가야 하지만 1번은 수학과 과학을 잘하지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고민하다가 문과를 선택했다.

▲ 첫째의 발명대회 상장 과 특허 관련 책 ⓒ 강정민

문과에 간 뒤로 대입준비를 위해 발명반 활동을 줄이는 게 좋겠다며 말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발명반 활동 때문에 아이랑 싸우기도 많이 했다. 그래도 아이는 발명반 활동을 계속하고 크고 작은 발명 대회에 꾸준히 참가했다.

결국, 나는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발명반 활동이 대입에 도움이 안 되면 어떠냐? 지금 네 행복이 거기서 나온다면. 그래 발명반 활동 끝까지 해 봐.' 그랬는데 지금 선생님께 문과생으로 발명반 활동한 게 잘한 일이란 칭찬을 받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이걸 잘 살려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쓰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내신 등급을 조금만 올리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지금 마지막 기말고사가 남아있는데 그게 딱 3주 뒤거든요. 0.5등급만 올려줘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쓸 학교가 많아져요. 1번아, 넌 수능까지 갈 필요도 없어. 딱 3주만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해 봐."

아이가 씩 웃는다. 남들보다 수험생 기간이 한 학기 단축된다니 얼마나 좋은가?

"지금 1번에게 제일 맞는 전형을 하는 학교로 A대가 있어요. 거기가 높긴 한데 그래도 한번 써 봐야죠. 1번아, 네가 A대 가면 선생님이 너 업고 운동장 한 바퀴 돈다. 알았지?"

모두가 웃었다. 진짜 우리에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진학설명회 때 들었던 적성고사가 우리 아이 내신 대에서 도전해 볼만 하다고 들었는데 적성고사는 어떤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선생님 적성고사는 어떤가요?"
"내신 등급으로는 도전해 볼 만한데 이건 순발력 있는 아이들이 유리해요.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해서요. 1번 성격과는 잘 안 맞죠."

선생님 눈이 정확하시다. 우리 1번은 순발력은 없다. 그러니 적성고사는 마음 접어야겠다.

수시 원서 접수의 전략과 전술

"수시 여섯 번 원서를 쓸 때 본인이 원하는 대학을 두 개 쓰고요. 제가 추천한 곳 한두 개 쓰고 부모님이 꼭 쓰고 싶은 곳 한두 개 쓰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도 선생도 부모님도 모두가 원하지 않는 곳을 하나 써요. 그래서 총 여섯 개를 씁니다."

마지막 문장이 목에 걸린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 대학에 원서를 왜 쓰지? 여섯 장만 쓸 수 있는 아까운 수시 기회인데? 아하~ 모두가 원치 않는 대학은 합격 가능성이 제일 높은 곳이구나. 마지막 안전판으로 한 장의 카드를 쓴다는 말씀이구나.

"제가 특별히 아버님을 모시고 면담을 진행하는 이유는 나중에 원서 쓸 때 의견이 굉장히 달라서 힘들어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에요. 왜 이 학교를 써야 하느냐 더 좋은 곳을 쓰면 안 되냐 이렇게 항의하는 아버님들이 꼭 해마다 한두 분 계시더라고요."

아버지들이 평소에 자식 성적을 잘 모르고 지내다가 나중에 원서 쓸 때 애 먹이는 일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걸 미연에 막으시려고 부모 필참 면담을 진행하시는 거구나.

3주간 열심히 공부하라는 선생님의 당부를 듣고 교무실을 나섰다. 아이는 다시 야자를 하러 교실로 올라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과 나는 1번을 키우면서 했던 선택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때 그 학원을 그만두지 말 걸 그랬나?"
"아니야, 그때 전학을 하는 게 아니었어."
"영어 학원을 좀 빨리 보낼 걸 그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남편과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열아홉 아이의 인생을 훑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과 다른 면담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1번은 선생님의 조언대로 3주간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 위 기사에 나온 수시 전형은 수능 최저 등급이 없는 경우였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2015년, 고3 엄마로 살며 느꼈던 감정을 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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