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영덕 주민투표 1년, '한국 탈핵'의 길 열리나

[현장]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1주기 현장에서

등록|2016.11.15 11:26 수정|2016.11.15 13:37
"영덕군민의 뜻이다. 영덕핵발전소 건설 반대한다."
"정부와 한수원은 영덕핵발전소 건설계획 즉각 백지화하라!"
"영덕 탈핵은 한국 탈핵의 지름길이다. 핵발전소 계획 철회하라!"

영덕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해안길 '블루로드' 이른바 '푸른 바다'가 펼쳐진 해안도로를 20대 가량의 승용차들이 떼를 지어 지나고 있다. 열을 이뤄 지나가는 걸 보면 무슨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세히 보니 차량마다 시원시원한 글씨가 붙었다. 눈에 확 들어온다.

"핵발전 철회하고 청정영덕 지켜내자."
"주민투표 정당하다 핵발전소 철회하라."

▲ 영덕군 영덕읍 석리 부근의 해변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다 핵발전소를 짓겠다 한다. ⓒ 정수근


▲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1주기를 맞아, 핵발전소 예정부지에서 차량으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영덕 군민들. ⓒ 정수근


 
핵발전소 반대 차량 시위

'자동차 데모'가 거행된 곳은 영덕 땅에 들어설 핵발전소의 예정 부지 일대다. 특히 영덕군 영덕읍 석리 인근은 풍광이 참 아름다운 곳. 이 아름다운 땅에 핵발전소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래서 영덕주민들이 다시 모였다. 이들은 11월 11일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1주기를 맞아 다시 모인 영덕 주민들과 기념행사에 참여한 '탈핵 시민'들이다. 이들이 함께 핵발전소 부지를 찾아 '영덕 탈핵'을 외치고 '한국 탈핵'을 외쳤다.

지난 9월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강진은 영덕에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반도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란 것이 현실적으로 밝혀졌기 때문. 핵발전소 부지 5킬로미터 안에 활성단층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영덕주민들은 영덕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1주년 기자회견문으로 깊은 우려를 표했다.

▲ 이날 참석한 300여 명의 영덕 주민을 대표해서,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 1주년 기자회견 중이다 ⓒ 정수근


"지난 9월 12일 영덕과 가까운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고. 지금까지 500번이 넘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반도 남동부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며, 수많은 활성단층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012년 지질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양산단층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영덕의 자부터단층과 덕곡단층을 활성단층으로 명시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단층 5킬로미터 안에 핵발전소 예정부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덕군수의 영덕핵발전소 업무 중단 선언, 주민투표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 영덕군발전소통위원회는 핵발전소 추진 유보를 영덕군에 건의했다. 지난 11월 7일 이희진 영덕군수는 아래와 같은 발표로 화답했다.

"군민의 안전이 우선이다. 영덕핵발전소 부지에 대한 지질조사를 실시해 안전성이 확보되기 전에는 핵발전소 추진을 중단해야 하며, 그에 따른 업무를 중단하겠다."

▲ 이희진 영덕군수는 7일 영덕군청에서 영덕군의원과 도의원, 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신규원전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 영덕군청


이같은 내용의 발표는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 활성단층과 같은 위험 요소에 대한 인식 변화도 작용했을 테지만, 지난해 있었던 영덕군민의 위대한 주민투표도 주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영덕 주민은 약 4만 명. 상주 인구로 쳤을 때는 4만 명에 훨씬 못미칠텐데도 주민 투표에 1만1209명이 참여했다. 민간주도 주민투표 역사상 최대의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 91.7%가 원전 반대에 표를 던졌다. 사실상 영덕군민은 '영덕 탈핵'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런 상황에서 영덕군수 또한 주민들의 탈핵 의지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 주민투표 승리 1주년 기념행사에서 사물놀이패의 신나는 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 정수근


11일 오전 11시에는 영덕군청 앞마당에서 영덕 주민투표 1주기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과연 주민투표가 성사될 수 있겠나' 노심초사했던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며 성공적인 주민투표를 이루어낸 영덕 주민들이 서로를 격려했다.

작년 한수원과 정부는 영덕 주민투표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9월 8일 기장주민투표 소송 판결과 지난 10월 6일 삼척 주민투표 소송 판결에서 이들 주민투표는 국가사무가 아니라 지방사무에 해당된다는 사법부의 판결로 '적법 투표'임이 밝혀졌다.

활성단층 부지에 핵발전소 건설은 있을 수 없다

▲ 양이원형 사무처장이 주민투표 1주기 의의에 대해서 축사하고 있다. ⓒ 정수근


이에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사무처장도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주민투표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행사다. 그런 행사를 정부가 나서서 방해하고 협박했는데, 주민들은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91.7%라는 반대의사를, 세계 어디에도 유래가 없는 적극적인 주민의 의사를 표해주셨다.

그리고 최근에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다. 경주 지진으로 인해 이곳에도 양산단층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양산단층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삼척 주민투표를 주도한 삼척시장의 무혐의 판결과 부산시 해수담수화사업이 지방사무이고 주민투표 하는 거 맞다는 판결을 받았다. 영덕 주민투표도 마찬가지다. 91.7% 반대의사는 분명한 효력이 있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활성단층 부지에 핵발전소 건설은 있을 수 없다. 삼척, 영덕 원전은 이제 지자체에서도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 이제 정부의 백지화계획 밖에 없다. 이제 중앙정부에서 신규원전 계획을 백지화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전 정말 필요한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현재 100기가와트 발전설비가 있다. 원전 하나가 1기가와트다. 올해만 10기가와트 발전 설비가 추가된다. 110기가와트다. 아주 많이 쓰는 날조차도 겨우 85기가와트를 쓴다. 평소에는 얼마나 많이 전기가 낭비되는가? 이것은 국가적 낭비다. 따라서 신규원전 필요없다."

▲ 이날 300여 명의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모여 주민투표 1주기 행사를 기념하고 있다 ⓒ 정수근


주민투표 경과보고에 나선 영덕주민투표추진위원회 위원장 백운해 목사 또한 직접 투표에 나선 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밝혔다.

"전국에서 유례가 없었던 이틀간의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심한 방해공작 때문에 참여율이 저조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영덕 주민들 11,20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인명수순으로 60.3%가 투표하고 91.7% 가 반대한 놀라운 결과다. 그리고 경주 지진과 삼척과 부산의 주민투표 결과에 힘입어 마침내 지난 11월 7일 영덕군의 핵발전소 사업 중단 결정을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그간 서명 버스 1, 2, 3, 4차례가 있었고, 당일 3천 명이 자원 봉사활동을 했다. 이것은 주민투표사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불상사 하나 없이 아름답게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이 주민의 뜻이란 것을 알게 됐고, 주민의 허락 없이 핵발전소는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국의 연대자들 고맙다. 특히 탄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주민투표에 참여한 주민들에게 감사드린다."

영덕 군민들의 민주주의 행동에 감사한다

당시 주민투표관리위원회 노진철 위원장도 참석해 지난해 있었던 영덕 주민투표의 의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 노진철 주민투표관리위원장이 영덕 주민투표의 의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정수근


"11월 7일 영덕군수는 원전업무를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날이 올 거란 거 확신했다. 영덕군은 원전 예정지에 대한 정밀 지질 조사결과가 나오면 주민의견 수렴여부를 거쳐서 원전 문제를 결정하겠다 했다. 이것은 주민투표를 말한다. 며칠 전 영덕의 지진은 영덕이 더 이상 지진에도 안전한 곳이 아니란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영덕군수가 핵발전소 유치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칠 것을 믿는다.

더 나아가 이제 영덕군수는 영덕 핵발전소 유치신청을 철회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한수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주민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주민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11,209명의 용감한 영덕 군민들과 함께했던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중앙정부가 저지른 공공성 훼손에 대해서 분연히 일어선 영덕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들은 몸소 행동으로써 민주주의는 중앙정부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자신이 자신을 구속하는 결정에 스스로 참여하는 일임을 보여주었다."

이날 기념식에 참여한 어업인 박진달씨도 단순 명쾌한 논리로 핵발전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저는 어업을 하고 있는데요, 지진 이후에 마 고기가 확 줄어버렸습니다. 무슨 사달이 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요. 고기를 잡은들 어디다 팔 것이고요. 그러니 핵발전소는 안됩니다."

지난해 주민투표 결과 91.7%의 반대 의견은 영덕 주민들 스스로 핵발전소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한 사건이었다. 이런 현실에서 올해는 지진의 공포가 동해안을 뒤덮고 있다. 영덕도 더 이상 지진에 안전하지 않은 이 현실이 영덕군 스스로 핵발전소 사무 중단이라는 결단을 하게 한 것 같다.

▲ 차량 시위대는 한수원 영덕지사 앞으로 달려가 영덕 주민들의 입장을 전했다 ⓒ 정수근


▲ 한수원 영덕지사 관계자에게 주민들의 뜻이 담긴 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 정수근


이제 영덕군은 청정영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야 한다. 이에 이날 자동차 시위에 나선 군민들과 연대자들은 한수원 영덕지사로 방향을 돌렸다. 한수원 영덕지사 앞에서 청정영덕을 앗아가려는 한수원의 불순한 시도를 규탄하고, 영덕 핵발전소를 막아 청정 영덕을 지킬 것을 결의했다.

영덕과 함께 전세계 반핵운동으로

특히 이 자리에는 호주에서 온 지구의벗 활동가가 참여했다. 이름이 샘이라는 활동가는 다음과 같이 영덕과 연대해나갈 것임을 주장해 큰 박수를 받았다.

▲ 호주에서 온 지구의벗 활동가 샘은 영덕 주민투표의 의의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 ⓒ 정수근


"저는 지구의벗 국제본부에서 온 샘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영덕 군민들 만나 반갑고 여기에 연대를 보내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전세계에서 핵발전과 같은 더러운 에너지와 싸우고 있다. 저는 호주에서 왔는데, 호주도 핵발전소 반대하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에는 핵폐기물 처리장을 반대하는 데 많은 지역시민이 모였다. 독일에서도 핵발전소 폐쇄하는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도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막고, 기존의 핵발전소 폐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투표에서 승리한 거 축하한다. 영덕의 사례를 전세계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앞으로도 반핵운동을 함께해 나갔으면 좋겠다."

지난 9월 경주에서 일어난 5.8 강진에 500여 차례 여진 그리고 며칠 전 영덕 앞바다 지진은 우리 동해안 아니 우리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증거다. 이런 상황에서 강진이 온다면 끔찍한 사태를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험한 핵발전은 중단되는 것이 옳다.

▲ 오른쪽 붉은 반원 표시한 곳이 원전부지다. 단층대와 5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지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 환경운동연합


따라서 "신규 핵발전소는 철회하고, 수명 다한 핵발전소는 위험천만한 수명연장을 할 것이 아니라 멈추어 단계적으로 핵발전소를 줄여가자"는 환경단체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핵발전이 아니라 태양발전과 바람발전 같은 신재생에너지다. 영덕 주민투표 1주기를 맞아, 위험천만한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한국 탈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직접 현장에 참여해 취재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