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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는 어느 미국인의 메시지

대재앙을 초래하는 선거 제도,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등록|2016.11.14 15:22 수정|2016.11.14 15:22
선거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백만 시민의 촛불 집회가 이틀 전에 있었다. 집회 며칠 전, 전 세계의 패권을 행사하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터무니없이 불공정해 보이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미국인을 포함한 세계의 많은 이들이 "재앙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비난하는 와중에 과연 재앙을 초래하는 선거란, 나아가 대의 민주주의란 과연 합리적인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의문에 공명하는 어느 미국인이 쓴 기사를 찾았고, 여기에 소개한다.

*원문출처 :http://www.crimethinc.com/blog/2016/11/09/president-trump-countdown-to-apocalypse/

b.traven에 의해 작성된 글이며, 이들은 copy left를 주장합니다.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재앙의 날이 조금 더 앞당겨졌다

우리는 큰 방향에 대해서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일이 일어날 시기에 대해서는 잘 못 예측하고 있었다. 우리는 클린턴이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취임 이후 새로운 스캔들 때문에 신임을 잃어 점차 인기 없는 상태를 유지하다가, 최근 권좌에서 내려온 브라질의 딜마 대통령처럼 반동적인 복고 세력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은 FBI의 발표로 선거 전에 터져버렸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투표의 힘을 믿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절망하고 있었는지, 우파적이고 복고적인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트럼프의 대선 캠프를 구출한 FBI의 개입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는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즉 국가 보안 기구가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중대한 기능을 하는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오랫동안 정부는 시민들에게 양질의 삶을 보장하는 기능을 전제하는 척이라도 했다. 이른바 제 1세계에서 자본주의는 중산층을 양산하는 방향으로 안정화되었는데, 트럼프의 시대에는 더 큰 지각변동이 있을 것이다.

20세기 과잉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부드러운 벨벳 장갑으로 가려졌던 철근 주먹은 이제 그 맨손을 드러낸다. 당연히 선거 때마다 트럼프나 샌더스와 같은 선동가들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공약을 해보겠지만,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장밋빛 공약의 실천이 아니라 경찰, 바로 공권력일 것이다.

선거란 정당한 것인가?

트럼프의 당선 소식은 수많은 이들을 절망하게 하지만, 선거 때문에 인류 전부에 대한 믿음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선거는 인류의 비겁하고, 모욕적이고, 굽실거리는 최악을 모습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엄마와 자식을 강제로 분리하는 행동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기표소의 익명성 속에서는 강제 추방 정책을 지지한다.

대통령 선거는 세계의 중대 결정이 우리의 손 밖에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행동에 대한 무관심을 유발하는 기제로 사용된다. 우리를 권력의 외부에서 고정하고, 서로와 자기 자신 조차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바로 전략적인 국가 정책이다.

법을 잘 지키는 자유민주주의자들도 이제는 그냥 지켜보기만 해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 힘이 없이 관람만 해야 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또 다른 정치 캠페인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더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이 수직적으로 집중된 구조에 있다. 만약 미국의 대통령이 전 인류의 운명에 이런 불균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만약 자유 시장의 기업들이 사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면, 도널드 트럼프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이렇게까지 위험한 인물이 아니었을 것이다.

좋은 정부가 세계화된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믿음에 집착해 온 일부 좌파는 이 상황에 대해 일부 책임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화나고, 반항적인 현 상황에서 민주당이 기득권 후보를 내세운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민주당은 미국이 원래부터 위대하다는 생각을 정당화함으로서, 미국을 더욱더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트럼프의 길을 더욱 평탄하게 만들었다. 착한 자유민주주의자들이 가난하고, 아프고, 늙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정부에 낸 세금은 시민의 자유를 짓밟을 괴물을 합법적으로 추대했다. 트럼프를 재앙을 가져올 후보라고 매도하던 언론과 정치가들이 이제는 민주주의 절차라는 이름으로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민주주의

문제는 민주주의 그 자체다. 히틀러가 집권할 수 있게 한 바로 이 정부의 형태 말이다. 우리는 누구도 타인을 지배할 권리가 없다. 트럼프도, 오바마도, 테레사 수녀도, 그 누구도 선의를 핑계로 권력을 휘둘러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소수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기존의 구조를 지속하기보다는 우리의 요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수평적인 구조와 자율적인 운동을 창조해야 한다.

불행 속에도 한 가닥 희망은 존재한다. 트럼프 같은 사람이 지금 권력을 잡는 것이 4년 후에 잡는 것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우파들의 해결 방안이 좌파들이 제안한 정책만큼이나 적절하지 않은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경제적 위기, 생태적 파괴, 전쟁 확산의 시대에 '국가'란 누구도 손이 오랫동안 들고 있을 수 없는 뜨거운 감자다. 트럼프를 지지한 사람들도 그가 전지구적 세계 안에서 포디즘적 자본주의의 영광을 되살릴 수 없음을 보고 실망할 것이다.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분노가 "새로운 정상적인 상황 new normal"로 여겨지는 절망 상태로 변하지 않게 해야 한다. 이제는 투쟁하는 이들이 트럼프의 정책에 의해 가장 악영향을 받을 사람들과 연대할 때다. 이제는 위로부터의 해결책에 대한 희망을 최종적으로 버려야 할 때다. 일상적으로 우리의 주변에서 직접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면 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 때다. 그리고 스스로 통신기술 보안한 지식을 습득하고 실천해 나갈 때이다. 디지털 사생활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인 작동이 얼마나 폭넓게 빨리 진행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새로운 사회운동과 투쟁이 등장할 것이며, 서로가 연대하여 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 화산 속에서도 씨앗을 지키자.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

Our allegiance is not to "making America great again," but to all of humanity and the planet. (우리의 충성 맹세는 "미국을 또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가 아니라 전 인류와 전 지구를 위대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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