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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에게 아들 남친 소개, 우린 행복합니다

[커밍아웃 스토리 ③] 8년 전, 아들의 커밍아웃...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등록|2016.11.22 09:30 수정|2016.11.22 09:30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커밍아웃 스토리'를 연재합니다.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부모들이 성소수자인 자녀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일종의 커밍아웃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편집자말]

▲ 8년 전 가을 무렵이었다.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의 아들과 나의 기억들을 되돌아본다. ⓒ pixabay


8년 전 가을 무렵이었다. 그 시간부터 지금까지의 아들과 나의 기억들을 되돌아본다.

학교 근처에 자취를 하는 아들이 졸업 시험을 앞두고 갑자기 집으로 왔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아들이 대학시절을 즐겁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한 탓일 것이다.

아들은 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며칠 동안 말도 하지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 내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상담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전화로 상담을 문의하니 "그냥 내버려 두세요. 그래도 죽진 않아요"라는 여유 있는 상담사의 말이 돌아왔다. 섭섭했다. '자기 자식 아니니까 쉽게 하는 말'로 들리는 속 좁은 엄마의 불평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아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유를 알려고 다그쳐 물었다. 그 친구가 어렵게 꺼낸 말은,

"아들이 동성애자입니다."

듣는 순간은 그냥 멍하였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시간이 정지됐다.

"이게 뭐지? 대체 이게 뭐지?"

생각도 멈추고 심장도 멈추는 느낌이었다.

바로 미국에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동생이 말했다.

"한쪽에 많은 수의 이성애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 적은 수의 동성애자가 있어. 그리고 그사이에 또 다양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존재해. 아들은 적은 수의 동성애자일 뿐인 거야. 아무 문제 없어."

동생의 말은 무지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었고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무척 위로가 됐다. 마음을 진정하고 누워있는 아들의 뒤에 대고 말했다.

"너 고민 있지? 난 들을 준비 되어있어. 얘기해줘. 기다릴게."

이틀이 지나도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답답하여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내 아들.
너의 고민을 엄마는 벌써 눈치챘다."

편지의 중간에 동생이 해준 말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인 것처럼 썼다.

"지구가 뒤집어져도 엄마는 네 편이다."

이 문장에는 엄마의 마음을 알리려고 밑줄까지 그었다.

"괜찮아, 사랑해."

머리맡에 놓인 짧은 편지를 한동안 하염없이 들여다보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참 후, "엄마 밥 주세요"라는 너무도 반가운 소리에 얼른 밥을 차렸다. 아들은 한 그릇을 다 비우고 곧바로 학교로 갔다. 아들은 무사히 졸업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 후 '왜 아들이 동성애자일까' 궁금했다. 우리 가정은 화목하고, 나를 넘치게 아껴주시는 시아버님, 착한 남편과 지금까지 감사하게 잘 살아왔는데, 왜?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제일 먼저 나와 같은 입장의 부모를 만나고 싶었는데, 도무지 만날 길이 없었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긴 고독의 시간은 철저히 나의 몫이었다. 그 기간 나는 마음 깊숙이 숨겨놓은 욕심을 내려놓고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단련의 시간으로 삼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생애 가장 감사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후에 '친구사이'라는 게이인권단체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게이를 아들로 둔 부모를 만났고 우리 아들과 같은 성소수자 당사자 친구들을 만났다. 이곳에서 궁금한 모든 답을 얻었고 마음의 부자가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비싼 돈을 내가며 받았던 상담에서, 오히려 상처받고 보냈던 시간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큰 결심을 하고 이곳을 찾아간 나의 결정에 감사한다.

마음 깊숙이 고독이 자리 잡았던 많은 성소수자들을 만나며 조금씩 치유됨을 느낀다. 여기가 난 참 편하고 좋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했던 "성소수자는 모여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성소수자도 모여야 하지만 부모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하는 반쪽 만난 아들, 우린 가족이 되었다

▲ 영화 <친구사이>의 한 장면. ⓒ 청년필름


지금은 부모와 당사자의 만남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부모모임'으로 이어져 매월 정기모임을 진행하고 있고, 요즘은 여러 가지 행사로 바빠졌다. 3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모임에 찾아오시는 부모님들은 점차 안정을 찾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편견이 가득한 사회에서 우리 자녀가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걱정하신다.

하지만 우리 성소수자 아이들은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5년 전 우리 아들은 사랑하는 반쪽을 만났다.

아들이 외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 내가 만나는 형 집에 와도 돼요?" 해서 그러라고 하니 문밖에 있던 아들의 애인이 곧바로 들어왔다. "실제로 보니 내가 생각했던 모습보다 더 마음에 드는구나!"라고 반겨주었다.

첫인상도 역시 좋았다. 나의 첫인사에 고마워하고 좋아하던 아들과 애인의 표정은 나를 흐뭇하게 했다. 시아버님과 같이 살고 있어서 아들 선배라고하면서 곧바로 인사시켰다. 할아버지도 아들의 애인을 아주 좋아 하셨다.

아들 애인이 돌아간 뒤 한동안, 아들과 나는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이상하게 서로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나는 안심의 눈물이었고 아들은 감사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아들과 헤어질 때는 꼭 안아주는 습관이 생겼다. 간지럽지만 귀에다 대고 "사랑해"라는 말도 아낌없이 자주한다.

여전히 잘살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편안하다. 혹시 싸우지는 않나 하고 이리저리 돌려 물어봐도 천생연분인 아이들이다. 저절로 내 아들은 둘째가 되었고 아들의 애인은 큰아들이 되었다. 난 고생 안하고 공짜로 큰아들이 생겨 운 좋은 엄마가 되었다. 우리 식구 모두 큰아들을 참 좋아한다. 이 자리를 빌려 공짜로 얻은 내 큰아들에게 편지를 부친다.

"공짜로 얻은 내 큰아들에게

덩굴째 들어온 큰아들아!
많이 우울하던 아들이 너를 만나 밝아진 것이 참 다행이다.
철없던 우리 애가 지금까지 직장 잘 다니는 것도 네가 옆에 있기 때문이지.
네가 '저희는 행복해요'라고 하고 둘째도 '행복해요'라고 하니 뭘 더 바라겠니!
너희 전화 받고 나면 난 늘 행복한 울보가 되어버린다.
너희는 어렵게 만났기에 사랑의 깊이가 더없이 깊은가 보다.
솔직히 너희를 보면서 나도 아빠께 더 잘해야지 반성하곤 한다.
너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 장례식 때도 함께 빈소를 지켜주어서 든든했다.
명절 때마다 잊지 않고 보내주는 선물도 고맙다.
무엇보다 서로 재미있게 살고 있어서 난 기쁘다. 아낌없이 사랑해."

8년의 세월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들을 통하여 엄마는 많이 배우고 앞으로도 배워 갈 것이다. 차별과 혐오가 없어지는 세상을 위해 살 것이며,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꾸며 살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헤쳐 갈 길이 멀겠지만 나는 늘 그분께 의지하며 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제 편이심을 저는 압니다." (시편 56,10)


[커밍아웃 스토리 살펴보기]
1편 당신의 아들일 수도 있는, 어느 게이의 커밍아웃
2편 "좋은 엄만 줄 알았는데..." 아이의 한 마디에 털썩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커밍아웃 수기 연재의 세 번째 편입니다.
하늘님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입니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중복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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