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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 배우와 가수들 뭉쳤다

[현장] 18일 '박근혜 퇴진 광장 촛불 콘서트 물러나Show' 무대

등록|2016.11.19 17:32 수정|2016.11.22 11:55

배우 오소연의 빛제1회 물러나Show에 함께한 배우 오소연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빛'의 첫 파트를 부르며 등장했다. 무대 아래에서 나타난 그는 앞에 앉아 있던 시민에게 불을 나눠주었다. ⓒ 곽우신


"불을 켜요. 먼저 불을 밝혀요. 어둠 속에 혼자서 있진 마요. 처량해 보여. 우리 단 둘이 함께 견뎌."

배우 오소연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앉아 있던 시민에게 촛불을 건네준다. 그리고 그 불꽃을 무대 위에 서 있던 이정열 배우에게 전달한다.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들제1회 물러나Show의 마지막 순서를 위해 뮤지컬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열창하고 있다. 가운데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부르고 있는 배우 이정렬은, 실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포함된 인물로 이전부터 세월호 등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 ⓒ 곽우신


"수많은 밤, 아침만을 기다려왔어. 모든 게 잘 될 거야. 우린 너무 돌아왔어."

이정열 배우는 어느새 자기 옆으로 올라온 정영주 배우에게 LED 촛불을 부딪히며 빛을 전한다.

배우 정영주의 빛제1회 물러나Show에 함께한 배우 정영주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빛'을 부르며 무대에 올랐다. ⓒ 곽우신


"매일 매일 괜찮기만 기도해. 무뎌지려 해봐도, 상처는 낫지 않아. 유령에 쫓겨도 가는 거야. 가야만 해. 그럼 살 길은 또 생겨. 행복만을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살아있어야 행복해."

배우 조상웅의 빛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서 본래 게이브와 의사가 부르는 파트는 배우 조상웅이 맡아서 불렀다. 그는 실제 <넥스트 투 노멀>에 출연한 경험은 없지만, 이번 '시민과 함께 하는 뮤지컬 배우'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 곽우신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채, 조상웅 배우가 빛을 이어 받아서 한걸음 앞으로 나선다.

"긴 밤이 끝내 지나고, 먼 동이 트면 알게 돼. 얼마나 멀리, 어둠 속 헤맸던지. 안다고 믿던 세상을 저 빛이 새롭게 하니."

20명의 뮤지컬 배우가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제 각자 울리던 목소리가 서로 포개지며 광장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알잖아. 해 뜨기 전 칠흑 같은 어둠. 긴 밤이 지나면, 한줄기 빛. 다들 힘겹게 버텨 싸워야 올 한줄기 빛, 한줄기 빛. 어서 오라 한줄기 빛!"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말했던 한 정치인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대와 광장이 환하게 밝혀졌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을 닫는 마지막 넘버 '빛'이, 극장이 아니라 서울 청계광장으로 나와서 울려 퍼졌다. 실제 <넥스트 투 노멀>을 연출했던 변정주와 해당 극에 출연했던 오소연, 이정열, 정영주 배우의 합이 돋보였다. 뮤지컬 넘버는 극 안의 서사적 맥락에서 빛을 발한다. 다른 맥락 속에서, <넥스트 투 노멀>의 '빛'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빛'이 되어 반짝거렸다. 지난 1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광장 촛불 콘서트 물러나Show'의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노래, 다양한 시민

할머니도 함께지난 18일 오후 7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제1회 '박근혜 퇴진 광장 촛불 콘서트 물러나Show' 무대를 한 할머니가 촛불을 든 채 응시하고 있다. ⓒ 곽우신


지난 18일, 비가 간헐적으로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청계광장에 설치된 무대 앞으로 많은 시민이 몰려들었다. 오후 7시, 공연 시작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대 바로 앞 정도만을 채워 앉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청계천을 따라 앉을 자리 없이 쭉 늘어서기 시작했다.

이날 무대가 치밀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공연 중간중간 스피커에서 하울링이 나기도 했고, '민중의 노래'가 시작할 때 이서환 배우의 핀 마이크에는 음향이 들어오지 않아 급하게 다른 마이크를 준비해야 했다. 공연 시작 전, 행사 스태프에게 취재에 참고할 큐시트를 부탁했으나, 큐시트조차 따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배우 이서환의 팔찌뮤지컬 <빨래>의 '빵'으로도 유명한 대학로의 베테랑 배우 이서환도 이날 함께한 20명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얹었다. 마이크가 나오지 않는 음향 사고가 있었으나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무대를 잘 마무리했다. ⓒ 곽우신


하지만 그런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자리였다. 이날 '물러나Show'의 무대는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자리였다. 시민들이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목청껏 외치고 있지만, 본격적인 무대 시작 전에는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가 철도노동자들의 계속되고 있는 파업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세월호라는 세글자를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이날 무대 위에 올라온 여러 아티스트들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인기가수인기가수가 되고 싶다는 듀엣 '인기가수'가 김광석의 '변해가네'를 '하야하네'로 개사해 부르며 힘차게 손짓하고 있다. 민중가수 손병휘와 배우 이정렬의 조합이 흥미롭다. ⓒ 곽우신




아이리쉬 포크 밴드 '바드'부드러운 곡만 노래하지만 사실은 가슴 깊이 화가 나 있다는 밴드 '바드'도 이날 무대에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했다. ⓒ 곽우신


여러 메시지가 중첩된 것처럼, 장르도 참 제각각이었다. 인기가수가 되고 싶다는 두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아 이름 지었다는 너스레와 함께, 민중가수 손병휘와 배우 이정열의 듀엣 '인기가수'가 이날 무대의 첫 타자였다. 이들은 기타를 치며 김광석의 '변해가네'를 '하야하네'로 개사해 불렀다. 평소 부드러운 노래만 불러서 이런 무대에서 딱히 어울리는 곡이 없다는 아이리쉬 포크 밴드 '바드'가 분위기를 풀더니, 문동만 시인은 자작시 '우주의 기운으로'를 낭독하며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했다.



마임이스트 조성만마임이라는 장르가 사회 비판을 위한 퍼포먼스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잘 보여준 무대였다. ⓒ 곽우신


피타입의 차진 욕설언더그라운드 힙합계에서 관록을 쌓은 피타입은, 자신이 왜 이 무대에 올라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솔직하고 거친 언어로 풀어냈다. ⓒ 곽우신


이어서 마임이스트 조성진은 퍼포먼스 '석양 대통령'을 통해 몸짓으로 시국을 비꼬았다. 언더그라운드 힙합계의 대부로 불리는 래퍼 P-Type(피타입)은, 자기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X발, 근데 이건 아니잖아요"라며 격한 언어와 함께 '불한당가', '광화문' 등을 부르며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하모니카를 부는 안치환언제나 거리의 시민들과 함께 노래했던 가수 안치환 역시, 이날 행사에 빠지지 않았다. ⓒ 곽우신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안치환은 "1987년 승리가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이번에도 완벽하게 승리하지 못하면 똑같은 일이 몇십년 후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외쳤다. 그는 '자유'에 이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른 후, 아쉬운지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개사해 몇 소절을 추가로 불렀다. '주술적 보이스'를 지닌 밴드 아시안체어샷은 '뱃노래'와 '반지하제왕'을 부르며 격렬한 헤드뱅잉과 함께 록 스피릿을 보여줬다.

정권을 향한 체어샷밴드 아시안체어샷은 자기만의 독특한 아우라로 마음껏 록 스피릿을 뿜어냈다. ⓒ 곽우신


아이의 눈망울물러나Show 무대를 집중하고 있는 한 어린이. 이날 무대 앞에는 다양한 시민이 함께 몰려 들었다. ⓒ 곽우신


무대의 자유로움만큼이나, 이날 함께한 시민도 세대와 성별 등에 특별히 국한되지 않았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있는 조합원의 옆에는 아시안체어샷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동영상 촬영을 하는 젊은 시민이 있었다. 피타입의 랩에 박자를 맞추며 몸을 흔드는 어르신이 계셨고, 안치환의 무대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학생이 있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보내는 답가

배우 송용진의 '민중의 노래'송용진은 사회적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연극·뮤지컬 배우 중 한 명이다. ⓒ 곽우신


이날 무대의 대미는 구소영 음악감독과 함께 무대 위로 올라온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 20명이었다. 세월호 때부터 열심히 광장에 함께했던 배우도 있었고, SNS 등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이도 있고, 이번 무대에서 보는 게 다소 생소한 이름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왜인지 모를 결연함이 묻어 있었다. 장르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도, 하나같이 참으로 고맙고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지난 10일, 서울 보신각 앞에 모인 동아방송예술대학교 학생들이 '민중의 노래' 등을 부르며 현 시국선언에 나섰다. 당시 언론 보도와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날 무대에 올라온 배우들은, 후배가 부른 노래에 대한 답가로서 오늘 무대를 준비했다며, <넥스트 투 노멀>의 빛에 이어서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와 '내일로'를 연이어 부르고 공연을 끝마쳤다.



조상웅과 이규형두 배우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이 눈에 박힌다. ⓒ 곽우신


18일 공연은 끝이 났지만, '물러나Show'는 이제 시작이다. 그래서 포스터에는 '1st'라는 글자가 함께 붙어 있었다.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쉬지 않고 매주 금요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뭉칠 것이라며 문화와 예술로 투쟁할 계획을 밝혔다. 무대가 끝난 후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시민의 발길이 그리 무겁지 않은 건, 아마 곧 다시 이 자리에 모일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의 무대도 두 번째 무대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빛나는 촛불사람이 떠난 자리에도 촛불은 남았다. 촛불은 계속 타오르고 있다. 내일을 향해서.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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