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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비서실장 당시, 청와대에 무슨 일 벌어졌나

"최순실 모른다"며 한사코 부인... 거짓말 증언과 정황 수두룩

등록|2016.11.20 19:29 수정|2016.11.20 19:29

최순실과 김기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반부의 키맨은 김기춘? ⓒ 방송화면 갈무리


2013년 8월.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얼개가 드러나던 때였다. 박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위기였다. 그때 '공작정치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김기춘 전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부른다. 김 전 실장의 '화답'은 빠르고 강력했다. 임명장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야심작'이 세상에 나온다. '채동욱 찍어내기'가 그것이다.

박 대통령 구해주고 '숙제' 대신 해준 김기춘

첫 작품의 조력자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과 보수언론 <조선일보>였다. 아무튼 '검찰총장 찍어내기'는 대성공을 거둔다. 채동욱 전 총장의 혐의는 '혼외자 논란'. 개인적인 문제를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다놓고 집중공세를 펴면서 '업무수행 부적격자'로 몰아세웠다. 채 전 총장이 떠나자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2013년 11월. 유신독재정권의 '공안통'답게 엄청난 일을 밀어붙였다.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이 국무회의에 상정되자 일사천리로 심의 의결됐다. 이를 주도한 배후 역시 김 전 실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게 그의 두 번째 야심작이었다.

이명박 정권 인사 밀어내기와 노무현 정권 인사 완전 축출. 이것도 김 전 실장의 '작품'이라는 설이다. 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정부에 유리하도록 언론을 움직였다는 정황도 있다. 또 박근혜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 배후에 김 전 실장이 있다는 정황도 나온 상태다.

위기를 넘길 방책을 만들어주고, 어려운 숙제를 대신해주고, 물타기로 국면을 돌파하도록 도와주고, 이것저것 확실하게 챙겨주는 비서실장. 박 대통령은 이런 김 전 실장의 능력에 의존했을 것이다. 또 곁에 오래 두고 싶었을 터, 그래서 박 대통령은 '김기춘 사퇴'를 외치는 야당에 맞서 '김기춘 지키기'에 열중했던 것이다.

최순실 너무 잘 알고 있을 터, 그래도 "맹세코 모른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성완종 리스트'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물러난다. 2015년 3월이었다. 재임기간은 1년 7개월. 이때에도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이곳저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간 굵직한 농단행위는 포착되지 않는다. 대부분 김 전 실장이 청와대를 나온 이후 벌어진 사달들이다. 그런 그가 '나는 최순실을 모른다'는 얘기만 반복한다.

"최순실씨를 본 일도 통화한 일도 전혀 없다. 하늘에 맹세한다." (10월25일)
"(최순실 관련) 보도 받은 적도 없고 알지 못한다. (최순실을) 만난 적도 없다. 통화한 적도 없다." (11월2일)

제집 드나들 듯 청와대를 출입해 온 최순실을 정말 몰랐을까? 김 전 실장은 '최태민 집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사람 중 하나다. 중앙정보부가 '최태민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던 1970년대 말, 김 전 실장은 중앙정보부와 청와대에 근무했다. 

게다가 '골수 친박'이다. 박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정수장학회의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1980부터 6년 동안 맡았다. 또 친박 원로 모임인 '7인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과의 친분도 깊다. 이런데도 최순실을 모른다고 우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최순실 맹세코 모른다" ⓒ 방송화면 갈무리


거짓말하고 있다는 증언과 정황 수두룩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수두룩하다. 7인회 멤버인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 직후 박 대통령을 만나 '최태민의 그림자를 지워라'고 말했다가 이 때문에 "미운털이 박혔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7인회가 최순실을 아는데 김 전 실장만 몰랐다? 말도 안 된다.

최순실 소유의 건물에서 김 전 실장을 봤다는 증언도 있다. 또 최순실의 조카에게 각종 특혜와 이권을 챙겨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종 문화체육부 차관은 검찰조사에서 "2013년 10월 쯤 차관에 내정된 뒤 김기춘 전 비서실장으로부터 최순실을 소개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이 최순실을 돕기 위해 '문체부 숙청작업'을 감행했다는 증언도 있다. 2014년 10월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이 사퇴한다. '최순실 재단'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앞서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들을 정리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은 이 일을 주도한 사람으로 김 전 실장을 지목했다.

이런데도 최순실을 모른다고 손사래 친다. 뭔가 숨길 것이 있다는 얘기다. '하늘에 맹세한다'는 표현까지 동원하는 걸 보면 숨겨야 할 것이 꽤 중요한 거란 얘기다. 뭘까?

최순실 국정농단의 '전반부' 숨기기 위해?

힌트는 이미 주어져 있다. 김 전 실장의 청와대 재임기간 '최순실의 행각'은 드러난 게 많지 않다. 김 전 실장이 박근혜-최순실' 관계를 어느 정도 통제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을 깔끔히 처리하는 능력자인 그가 흔적이나 증거들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일까?

'최순실 국정농단'은 박 대통령 당선부터 시작됐으니 3년 반 지속돼온 셈이다. 지금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건 대부분 후반부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의문점 하나. 전반부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사람이 김 전 실장이다.

'모른다'고 버티는 김 전 실장.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전반부에 해당하는 시기에 청와대의 '왕실장'이었다. '전반부의 비밀'을 땅에 묻고자 최순실을 끝까지 모른다고 우기는 건 아닐는지. 김 전 실장을 반드시 수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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