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때와 행운'을 기다리는 동물원

[행복한 동물원을 찾아서 ⑧] 타이베이 시립동물원

등록|2016.11.25 11:03 수정|2016.11.25 11:34
[앞선 기사]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한 코끼리를 만났습니다

저기, 나무 옆 그리고 울타리 앞에 사슴들 보이나요?

▲ '자연과의 적정거리' ⓒ 이명주


저기 그늘 아래 잠자고 있는 반달가슴곰은요?

▲ '자연과의 적정거리' ⓒ 이명주


바위 옆 수풀 가운데 앉은 동물은 말레이맥이라고 합니다. 물 속에서 똥 싸기를 좋아하고, 그 똥을 자양분 삼아 자란 개구리밥 같은 부초 먹기를 또한 좋아한다는군요. 물색이 녹차라떼 같은 건 그 때문이랍니다.

▲ '자연과의 적정거리' ⓒ 이명주


낙엽을 꼭 닮은 나비들 보이나요? 부러 좁은 곳에 가두지 않고 향기롭고 맛있는 먹거리로 나비들이 사람 곁에 머물도록 해두었어요.

▲ '자연과의 적정거리' ⓒ 이명주


▲ '자연과의 적정거리' ⓒ 이명주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것도 좁고 삭막한 유리관에 갇히지 않은 나비를 본 게 참 오랜만입니다.

여기는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타이베이 시립 동물원'(이하 타이베이 동물원)입니다. 숲이 우거져 동물원에 있는 내내 삼림욕을 하듯 상쾌합니다. 

▲ 타이베이 동물원(Taipei Zoo) ⓒ 이명주


타이베이 동물원에서는 동물들을 언제고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물들이 사는 우리가 비교적 넓고 무엇보다 수풀로 우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을 보려면 이렇게 유리벽 앞에 서서 그들이 어디 있을까 유심히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들을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고요.

이렇게요.

▲ 모든 존재와 존재 사이엔 서로가 편안할 수 있는 '적정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 이명주


▲ '다른 동물과의 공존' ⓒ 이명주


양 옆으로 하늘색 드럼통과 빨간 미끄럼틀 보이죠? 저 물건들은 '동물행동풍부화'를 위한 장치입니다. 동물행동풍부화란 말 그대로 자연보다 지극히 단조로운 동물원 내에서 동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연적 습성을 잃지 않게 하려는 동기 부여 프로그램입니다. 통을 흔들면 먹이가 떨어진대요.

▲ '행동풍부화' ⓒ 이명주


타이베이 동물원 역시 '완벽하다'고 할 수는 절대 없겠으나(그 안에 갇힌 동물들을 생각할 때) 그래도 수많은 열악한 동물원에 비하면 본받을 점들이 많습니다.

앞서 동물들을 지나치게 좁은 우리에 가둬 언제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지 않고 그들 의지대로 숨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고, 음식으로 자연스레 사람 곁에 머물게 하며 행동풍부화 노력을 한 것과 더불어 유리벽 주변으로 펜스를 한겹 더 설치해 관람객들이 '적정거리'를 유지하게끔 한 것이 또 하나입니다.

▲ 동물원에 왜 가세요? ⓒ 이명주


그리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동물체험학습'이란 이름으로 살아있는 동물을 억지로 만지는 가학 행위 없이 그들이 죽어 남긴 털이나 뼈를 전시해두었습니다.

▲ 살아있는 동물을 강제적으로 만지는 건 '학대'입니다. ⓒ 이명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렇듯, 동물들의 이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겠죠? 그만큼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이 커지면 배려하고 나아가 사랑하게 되니까요.

▲ 타이베이동물원 교육관 ⓒ 이명주


타이베이 동물원의 대표적 마스코트인 코끼리 '린왕(Lin Wang)'입니다. 린왕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에 잡혀 노역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말년에 짝을 잃고 외로워하다 86세에 죽었습니다.

▲ 타이베이 동물원의 대표적 마스코트 린왕 ⓒ 이명주


타이베이 동물원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한 시민이 동물원 측에 '동물쇼'를 하지 말 것을 요청한 친필 편지인데요, 편지를 전한 사람도, 편지를 전시해 그 뜻을 기린 동물원 측도 존경합니다.  

▲ 모두가 '행복한 동물원'이 가능할까요? ⓒ 이명주


그리고 하나 더.  타이베이 동물원에서는 빗물과 동물(사람 포함) 분비물, 태양열 등을 시설 운영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빗물을 저장 후 정화해 동물원 동물들의 수조를 채우고 정원을 가꾸고 화장실 세척수로 쓰는 등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 빗물을 활용해 동물원 시설 운영에 활용하는 타이베이 동물원 ⓒ 이명주


판다 관람실 앞. 동물원 측은 30분 간격으로 관람객 수를 제한해 판다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역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제한 인원에 걸려 조금 아쉬운 맘으로 돌아섰는데요.

▲ 관람객 제한 ⓒ 이명주


어! 마침 판다 관람실 바로 옆 야외 우리에 사육사가 와선 여기저기 먹거리를 놔두고 있습니다. '판다를 볼 수 있나?' 갑자기 기대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0분... 20분... 목을 빼고 두리번거려도 판다는 보이질 않고 지쳐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

▲ '판다를 볼 수 있을까?' ⓒ 이명주


▲ 타이베이 동물원 인기쟁이 판다 ⓒ 이명주


실제로 처음 본, 정말 귀엽게 생긴 판다가 자신을 기다린 사람들 따윈 아랑곳 없이 간식 먹기에 열중합니다. 되레 판다가 식사를 하며 유리벽 넘어 우루루 몰려 수선을 떠는 사람 구경을 하는 듯 합니다.

▲ 사람 구경? ⓒ 이명주


타이베이 시립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만나기 위해선 이렇듯 '때와 행운'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전혀 지겹지 않고, 뜻하지 않은 동물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때 반가움과 재미는 배가 됩니다.

하지만 기억해주세요. 사람이 만든 어떤 동물원도 동물들의 원래 고향인 자연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동물원의 존재 이유는 야생에서 제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혹은 멸종돼가는 생물종을 보호하기 위함이어야 하며 그 또한 그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전제돼야 함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원은 그들의 원래 고향 '자연'일 겁니다. ⓒ 이명주


타이베이 동물원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5시까지입니다. 반나절 넘게 있었지만 동물원의 절반 좀 넘는 구역만을 돌아봤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의 '퇴근 시간'을 지켜주는 게 우선입니다. '칼퇴'를 원하는 마음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니까요!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