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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하야' 끌어낼 수 있는 '그리스 방식'

검찰 발표에도, 미동 없는 박근혜... 대한민국판 '도편추방투표' 해야

등록|2016.11.21 15:07 수정|2016.11.21 15:07
토요일마다 국민들은 꺼지지 않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달려가 "하야하라!"고 외쳐대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꿈쩍도 않고 있다. 헌법 제1조 2항에서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지만, 국민을 배신하고 능멸한 대통령을 끌어내릴 합법적 권력이 국민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으로써는 그 권력이 박근혜의 양심에서 절로 우러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의 가슴에서 양심이란 불이 번지기 전까지, 국민들이 토요일마다 촛불로 광장을 데울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최순실 게이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중간발표를 통해 "대통령이 최순실·안종범·정호성과 상당부분 공모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이들의 범죄와 악행을 단순히 방조한 정도가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모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헌법 제84조 때문에 재임 중인 대통령을 기소할 수는 없지만 수사는 계속하겠노라고 수사본부는 밝혔다.

이 정도면, 박근혜가 국정농단·헌법유린·뇌물수수·국민배신의 핵심 몸통이라는 게 공식적으로 밝혀진 셈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그를 끌어낼 합법적 방도가 없다. 오히려 그의 뻔뻔하고 안하무인격인 태도에 혀만 내두를 뿐이다.

특별수사본부의 발표에 대해 박근혜는 변호인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며 도리어 강경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뿐 아니다. 12월 중순 도쿄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에 자신이 꼭 참석해야 한다며 지금 이 상황에도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

▲ 서울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 ⓒ 김종성


박근혜를 보고 정반대의 관측을 하는 사람들

국민을 화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박근혜만 생각하면, 국민들은 가슴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그런 박근혜를 보고 정반대의 관측을 하고 있을 사람들이 있다. 지금 박근혜가 정상적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19일 토요일 서울역에 모여 퇴진 반대운동을 한 박사모 회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서양 민주주의의 원조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촛불집회와 청와대 움직임을 본다면, 그들은 박근혜가 국민 뜻에 따라 처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할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게 결코 과장되거나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이 글의 끝부분에서 나타날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7년부터 주민소환법이 시행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 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직접 끌어내릴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을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대통령을 상대로 한 국민소환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를 비롯한 실라쿠스·아르고스·메가라·밀레투스 같은 일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는 직접민주주의의 일환인 국민소환제가 한동안 시행되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도편추방법이다.

도편추방법은 독재자가 됐거나 될 가능성이 있거나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는 지도자를 몰아내기 위한 제도였다. 일종의 탄핵 투표였다. 서기 1세기에 태어난 플루타르코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흔히 불리는 <영웅전>이란 역사서에서 "이것은 압제적인 권력을 행사한다고 생각되는 사람, 진정한 민주적 평등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도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ostraca는 조개껍질이나 그릇조각을 의미한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의 일부 도시국가들에서는 투표용지로 사용되었다. 여기다가 자기 의사를 적을 수 있는 유권자는 노예를 제외한 자유인이었다. 아테네의 경우에는 20만 정도의 인구 중에서 3만 정도가 투표권을 갖고 있었다.

도편을 통한 그리스인들의 투표는 지금의 투표와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다. 먼저, 투표용지의 준비 방식부터가 달랐다. 지금은 나라에서 투표용지를 지급하지만, 그리스에서는 본인이 직접 도편을 준비해야 했다. 도편을 따로 살 여유가 없으면, 찬장 안의 그릇이라도 깨서 도편을 준비해야 했다.

신분증을 지참한 오늘날의 유권자들은 곳곳에 산재한 투표소로 가지만, 도편을 소지한 고대 그리스 유권자들은 시내 중심의 광장으로 죄다 모여들었다. 아테네의 경우에는 그 유명한 아고라가 그런 장소였다. 투표소로 쓰이는 광장에는 울타리가 쳐졌다. 유권자들이 드나들 통로만 남겨두고 사방에 울타리를 쳤던 것이다.

싫은 정치인의 이름 직접 기입 '도편추방제'

현대의 유권자들은 자기 투표가 끝나면 투표소를 떠나야 하지만, 그리스 유권자들은 참가자 전원의 투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 번 투표한 사람이 또다시 투표하는 이중 투표를 방지할 목적이었다.

그래서 광장에 들어간 사람은 투표가 종료될 때까지 계속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도편 투표는 일종의 집회 같았다. 많으면 3만 이상의 유권자가 한 장소에 모여 투표했기 때문에, 이것은 지금의 촛불집회만큼의 열기를 뿜어낼 수 있었다.

지금의 유권자들은 투표소에 가서 기표를 하지만, 그리스 유권자들은 광장에 가기 전에 미리 도편에 표기를 했다. 오늘날에는 좋아하는 후보나 정당 이름 옆에 도장을 찍지만, 그리스에서는 싫은 정치인의 이름을 직접 기입했다.

그리스 유권자들은 여기에 더해 한 가지를 추가했다. 도편에 정치인 이름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말까지 기입했다. 예컨대, "떠나라!"나 "나가라!" 등의 구호를 적었다. 우리가 토요일마다 광장에서 보는 전단지 구호들이 그리스인들의 도편에 똑같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 아테네에서 발견된 도편. ⓒ 위키백과


이처럼 도편추방 투표는 많을 경우에는 수만 명의 유권자가 광장에 모인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투표는 외형상 지금 대한민국의 촛불집회와 비슷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한국의 촛불집회를 본다면, 자기들의 도편추방 투표와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앞서, 그리스인들이 촛불집회와 청와대 상황을 본다면 '박근혜가 국민 뜻에 따라 처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6천 개 이상의 도편에 이름이 적힌 지도자는 10일 이내에 나라를 떠나야 했다. 유권자 6천 명 이상이 "나가라!", "하야하라!"고 하면 그것으로 탄핵이 성사됐던 것이다. 그렇게 추방된 지도자는 10년간 돌아올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추방당한 사람 중에 대표적인 인물들이 크잔티포스, 아리스테이데스, 테미스토클레스 등이다.

그런데 이 추방은 외국 망명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이 4·19 때 국민들의 하야 요구를 받고 하와이로 망명한 것처럼, 도편추방투표에서 탄핵이 결정된 사람은 무조건 해외로 망명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월 중순에 도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국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해외에 나가 대한민국 대통령 역할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 리 없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눈에는, 이런 박근혜의 모습이 도편추방투표를 앞둔 지도자가 해외망명에 대비하는 모습처럼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청와대 코앞에서 도편추방투표가 이루어지고 그 도편에서 박근혜의 이름이 수도 없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박근혜가 해외 방문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리스인들의 눈에는 도편추방이 확실시되는 박근혜가 일찌감치 해외망명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단, 그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점이 두 가지 있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도쿄로 갈까? 그리고 하야 요구를 받으면서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에 그렇게 목을 매는 이유는 무얼까? 그런 게 궁금할 수도 있다. 이것이 그리스인들이 품을 한 가지 의문이다. 이에 대한 답은 박근혜 본인이 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왜 도편추방투표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토요일마다 계속 열리는가 하는 의문일 것이다. 국민을 향한 박근혜의 불굴의 도전정신을 이해하기 전까지, 그리스인들은 '대한민국의 도편추방투표는 전체 유권자가 광장에 한 번씩 다 참석할 때까지 계속되나 보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광장의 촛불이 꺼지지 않겠구나'라고 예측할지 모른다.

박근혜가 스스로 하야하지 않는다면, 고대 그리스에서처럼 유권자 전원이 광장으로 달려가 촛불을 들고 '박근혜 하야' 도편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LED 촛불처럼 꺼지지 않는 촛불이 광장을 계속 밝혀야만, 대한민국판 도편추방투표가 '박근혜 하야'라는 종국적 승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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