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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우습게 만든 전두환, '문화 융성' 우습게 만든 박근혜

[현장] 독립영화인 821인 시국선언 "박근혜 퇴진하라! 김세훈 영진위원장 물러나라!"

등록|2016.11.21 17:28 수정|2016.11.22 12:01

▲ 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독립영화인들이 821명이 참가한 박근혜 퇴진과 문체부, 영진위 개혁을 촉구하는 독립영화인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 김윤정


"박근혜 대통령이 요즘 갑자기 롱테이크를 찍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점프컷'입니다. 빨리 물러나고 더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

821명의 독립영화인이 21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치러진 시국선언문 발표장에는 40여 명의 독립영화인이 참여했다.

"박근혜 대통령, '문화 융성'이란 단어 우습게 만들었다"

▲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독립 영화인 시국선언문 발표현장. 고영재 인디 플러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 김윤정


고영재 인디플러그 대표는 발언에 앞서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다양한 창작 활동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를 읽었다. 이어 "박근혜 정부의 취임사에 '문화'가 27번, '문화 융성'이란 말이 12번 언급된다"고 지적한 뒤, "전두환이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말로 '정의'라는 단어를 낯간지럽게 만들더니, 이제는 '문화 융성'이란 말이 희화화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고 대표는 "진보적 색채를 조금 띠었다는 이유로 영화의 제작 투자를 막고, 영화계 수직계열 독점기업인 CJ마저 정부로부터 탄압받았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문화 정책이 '문화 예술'만 탄압한 게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중요하다 부르짖던 '문화 산업'까지 무너트린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계를 대표해 허욱 용인대 영화영상학과 교수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학생들이 정권에 반대되는 이야기, 정치적인 이야기,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해 제작을 하려 하지 않는다"고 전하며 "누가 이 아이들을 그렇게 길들여 놨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나쁜 짓 하는 사람들, 다 교수들이다. 자리하나 꿰차고 권력 마음대로 휘두르지 말고, 교단으로 돌아와 본인들이 잘하는 교육, 연구에 전념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부 지원 위한 셀프 검열... 더는 굴복 않겠다"

▲ 독립 영화인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 김윤정


윤가현 감독은 "박근혜 정권에 맞서는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을 다룬 영화를 만들면서, 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청년들의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기획안을 수정했다.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해 자기 검열하며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문화 생산 노동자이지만, 우리의 사장님은 문체부나 영진위가 아니"라면서 "이제는 주눅 들지 않고, 스스로 검열하지 않겠다. 검열하지 않아도 될 날들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안소현 국장은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일부 독립영화관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정황을 전하며 "지방 신설 독립영화 상영관 지원 정책을 보면 영진위 직영 상영관인 인디플러스 프로그램을 연간 219일 이상 상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다이빙벨>처럼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는 상영되지 못 하게 하겠다는 뜻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안 국장은 "문화지원정책의 핵심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인디스페이스는 권력에 놀아나지 않고, 독립영화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굳건히 버티겠다"고 덧붙였다.

독립 영화에 상업 논리 들이대는 영진위

▲ 이번 독립영화인들의 시국선언을 주도한 독립영화인 중 하나인 경순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 김윤정


이번 시국선언을 주도한 독립영화인 중 하나인 경순 감독은 시국선언문 발표 이후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독립영화인들, 다큐 영화 감독들은 시대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사람들이다. 영진위가 점차 정부와 문체부의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리면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이 점점 소외되고 제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영화는 영화의 근간이고, 독립영화인들은 다양한 실험과 예술,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자꾸 상업적 논리를 들이대며 지원 대상을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립영화인들은 시국선언문에서 "박근혜 정권의 문화정책은 끊임없이 문화예술인들의 '시대정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일관됐다"면서 작금 사태의 원인인 최순실과 차은택, 그리고 그들의 부역자인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영화진흥위원회 김세훈 위원장과 김종국 부위원장 등의 법적, 도의적 책임을 촉구했다.

이어 "영화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국정농단으로 전 국민을 우롱한 박근혜는 더는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라면서 "문화예술계를 쥐고 흔든 최순실과 차은택을 비롯한 '대국민 사기단'이 더는 발붙일 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문체부와 영진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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