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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0만 원짜리 일... 그마저도 꾸준하지 않아요"

'전북 장애인 자기 주장대회'에 나선 발달장애인과 부모들

등록|2016.11.23 18:23 수정|2016.11.23 18:23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줄게."

22일 오후, 비교적 쌀쌀한 날씨에도 옷으로 꽁꽁 싸매고, 마스크를 쓴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 30여 명이 전북도청 앞에 모였다. 이들이 추운 날씨에도 밖으로 나온 건 '전북 장애인 자기 주장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 전북 장애인 자기주장 발표대회 현장 ⓒ 문주현


전북장애인부모연대와 전북지역 발달장애인들의 자조 모임인 '나르샤'가 주최한 이날 대회는 전북지역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이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을 직접 풀어낼 수 있도록 마련한 시간이다. 이날 여러 구호가 대회 중간에 나왔지만, '엄마가 목숨 걸고 지켜줄게'라는 구호가 눈에 띄었다.

"한 엄마가 최근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자폐 2급의 자녀가 있는데, 이 아이는 혼자 살아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보장된 활동보조 서비스 시간은 1달 47시간에 불과합니다. 아이가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엄마들이 목숨 걸고 지켜주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싸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증언대회에 앞서 전북장애인부모연대 김정숙 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다. 부모연대는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 전라북도 장애인 인권보장을 촉구하며 전북도청 앞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간 지 벌써 3주. 지난주부터는 전라북도와 협의가 시작됐지만, 장애인 인권 보장, 자립생활과 장애인가족 지원,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등 어느 한 분야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엄마들이 돈 내놓으라고 하는 줄 알아요. 2차 협의에서 발달장애인 자립을 위해 소득보장을 요구했어요. 성인이 되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있더라도 한 달 30만 원에 불과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했더니 '부모들이 부정수급을 해서 소득보장을 해 줄 수 없다'고 답하더군요. 지금 엄마들은 시설에서 우리 아이들이 맞아죽는 것보다 부정수급이라도 해서 함께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 5월 전북 남원시 평화의집 장애인 폭행 사건은 김 대표의 말에 힘을 실어준다. 발달장애인 생활 시설인 남원 평화의집의 생활교사들은 수 년 동안 발달장애인들을 학대했다가 발각됐다. 가정에서 보살필 형편이 되지 않는 부모들이 이용료를 지불하고 아이를 보냈는데, 일부 장애인들은 심각한 학대를 당해 입소 전보다 장애가 더 심각해지기도 했다.

▲ 전북 장애인 인권보장 공동투쟁본부가 전북도청 앞에 설치한 농성장 ⓒ 문주현


"우리는 일 하는데 살기 힘든 걸까요?"

'2016년 전북 장애인 자기주장 발표대회'에 선 발달장애인들은 자립이 불가능한 현실을 직접 말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도 사람들은 저를 무시하고 처음부터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똑같은 인간인데, 지역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도대체 왜 저를 다른 사람으로 보는 걸까요?" - 발달장애 2급 이의경씨

발달장애인은 다른 장애유형보다 고용률이 현저하게 낮다. 전체 장애인의 고용률이 37.6%인데 반해 발달장애인의 고용률은 15.7%에 불과하다.

도윤승(발달장애 3급)씨는 "그나마 일자리를 구해도 꾸준히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복지관 같은 곳에서 하는 장애유형별 맞춤형 일자리 사업도 1년 계약이라 그 이후를 보장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라고 말했다. 전유미(발달장애 3급)씨도 "월 30만 원을 받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달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라고 말했다.

전씨는 4년제 대학을 나왔고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보육교사와 컴퓨터 자격증 등 다양한 분야의 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발달장애는 일자리를 구하는데 있어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발달장애인연대 나르샤의 대표 임윤택(발달장애 3급)씨는 "우리 장애인들은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힘이 없으면 맞아도 됩니까? 지능이 낮으면 학대해도 됩니까? 자기 말을 못한다고 무시당하고 손가락질 받아야 합니까?"라고 소리쳤다.

▲ 전북 장애인 자기주장 발표대회 ⓒ 문주현


"지역에서 함께 살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차별을 받아야 하나요?"라고 외치는 발달장애인들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부모들의 외침은 이 문장 하나로 정리할 수 있다. "지역에서 함께 살고 싶다."

김병용 전북 장애인 인권보장 공동투쟁본부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자기 이야기를 말 할 기회도 갖지 못했던 이들이 바로 발달장애인들입니다. 그러기에 당연히 동네에서 이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동네에서 같이 살자는 이 주장들을 이제 귀 담아 들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증언대회를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이들은 발달장애인과 관련된 정책으로 총 네 가지를 요구했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 추가시간 보장
행동발달증진센터 설치
발달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설치
발달장애인 소득보장을 위한 예산 확보 및 중장기 계획 수립

모두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김정숙 대표는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의료에서부터 복지까지 요구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가족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임윤택 대표는 "발달장애인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라며 전북도청에 정책 수립을 촉구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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