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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농민 30여명, 새벽 2시 광화문 도착

경찰과 잠시 실랑이 후 은박 매트 깔고 쪽잠 청해

등록|2016.11.26 09:51 수정|2016.11.26 09:51
광화문광장 캠핑촌에서 행사준비를 하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리본공작실에 들러 작업을 거들었다. 2시가 막 넘었을 때 김혜경(27)씨가 놀란 모습으로 황급히 들어와 "농민 30여 분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도착해서 쉬려고 자리를 펴는데 방석을 경찰들이 뺏고 끌어내려 한다"며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함께 작업을 하던 이들과 상의를 한 끝에 대형 핫팩 50개를 들고 김혜경씨가 말한 장소로 달려갔다.

▲ 곡성에서 출발해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농민들이 추위를 물리치기 위해 은박매트와 마대, 홑이불로 바람을 막고 있다. ⓒ 정덕수


▲ 콤바인으로 거둬들인 벼를 담는 마대를 뜯어 이불 대신 바람을 막는 농민들이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이분들과의 약속만 박근혜가 지켰어도 지금 이분들이 “박근혜 되진”을 외치며 고생하지 않았다. ⓒ 정덕수


곡성에서 출발한 농민들은 경찰과의 대치 끝에 은박 매트로 자리를 만들어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뜨거운 국물이라도 먹어야 한다며 김치찌개를 끓이고 사발면에 부을 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핫팩을 꺼내 전달하자 손이 언 농민들은 비닐봉지를 뜯기 힘들어 했다. 봉지를 뜯어 전달하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농민 몇 분이 벼를 담는 마대를 뜯은 걸로 바람을 막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세종문화회관 계단 맨 아래 도착해 자리를 잡은 농민들이 사발면을 뜯어 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 정덕수


▲ 물이 끓기 시작하고, 찌개가 알맞게 끓자 순서대로 배식이 시작됐다. 국민 앞에 한 선서도 지키지 않으며 새빨간 거짓말로 표를 갈취한 박근혜 퇴진을 외치려 이 농민들은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이곳에 왔다. ⓒ 정덕수


핫팩을 전달한 뒤 뜨거운 국물을 나누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서려는데 "여기 같이 뜨거운 찌개 좀 드시죠"라며 농민분이 권한다.

소주 한 잔 받고 찌개를 뜨라는 건 사양한 뒤 "경찰분들이 여러분을 오늘 밤 잘 지켜드릴 겁니다. 이들도 명령을 받아 움직이지만 속마음은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걱정 마시고 잠시 눈 좀 붙이시죠"라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경찰에 연행된 농민도 제법 많은 모양인데 그나마 이곳에 무사한 농민들이 반가웠다.

역사를 만드는 그들의 길 막지마라

왜(倭)를 불러 백성의 원성을 잠재우려 한
황망한 일 되풀이 하지만은 말아라
분개하여 일어선 고부의 동학군이 누구였더냐
빈 쌀독 눈물로 지키는 지어미의 어진 남편이요
배곯아 우는 아이의 종이호랑이 아버지였다
탐욕에 눈 먼 벼슬아치들의 수탈을 견디던
이 땅의 주인 농민이요 백성들었다
오늘 다시 서군, 동군으로 다그쳐 나선 길
사명을 망각한 자들 명령 받아
진군행렬 막아서는 자들 똑똑히 지켜보라

소임에 집요하지 못 하고
탐욕에 집요했던 자들 채근질이야
아둔한 난봉꾼 억지 부림이건만 
스스로 길 끊어버린 둔한 노릇이건만
혈맥의 피돌기 멈추려는 저 자들 하나 남김없이
시리게 푸른 하늘에 새기고
바다 다 마를 때까지 새겨 반드시 기억해두게 하라
그리하여 오랜 세월이 흘러 오늘을 기억할 때
누구의 조상이 역적이었는지
누구의 어버이가 가슴 따뜻한 부모였는지
억년 세월에 깎여 돌이 먼지가 되어도
너무도 선연해 지워지지 않게 할 일

그리하여야 저들이 설친 오늘이 역사가 된다
그리해야 우리가 오늘 외친 함성이 역사가 된다.

전날 바로 이분들의 앞길 막지 않기를 바라며 쓴 시를 다시 되뇌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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