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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광주 아짐들처럼, 이 밥상 촛불들에게 보낸다

젓가락을 춤추게 하는 이곳, 여수의 입소문난 밥집

등록|2016.11.26 13:19 수정|2016.11.26 13:19

▲ 젓가락을 춤추게 하는 이곳, 여수의 입소문난 밥집의 한정식 상차림이다. ⓒ 조찬현


대한민국에 촛불이 활활 타오른다. 주말에도 아랑곳않고 불을 밝힌다. 2백만의 촛불이 전국에 모여 그 불빛을 더욱 밝고 환하게. 최순실 국정농단에 따른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범국민행동이 26일 열린다. 그들에게 이 맛깔난 남도의 밥상을 바친다.

1980년 5월 광주 주먹밥처럼...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1980년 5월 광주의 아짐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나눠줬던 것처럼 이 밥상을 그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도의 밥상에서 힘을 얻어 민주의 촛불을 더 환하게 밝히라고.

▲ 예스러운 집은 정겨움이 가득하다. ⓒ 조찬현


밥맛 좋기로 이름난 여수의 밥집이다. 한정식 하면 으레 그 밥에 그 나물이겠거니 하지만 남도에서는 그 격이 다르다. 사실은 여느 집이나 별반 다를 게 없을 거 같아 보이는 소박한 백반일지라도 남도의 밥상은 그 집만의 독특한 맛과 차림새가 있다. 그러나 이 집은 한정식이라기에는 다소 소박하고 백반의 그것에는 넘쳐 보인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초기에는 다들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해 먹고사는 게 진짜 큰일이었다. 춘궁기인 보릿고개에는 한 끼 때우기에도 급급했다. 우리가 그나마 밥술이라도 뜨고 산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다. 이렇듯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밥상은 잔칫집이나 요릿집에서나 만나봤다.

전통 있는 밥집 "밥집한 지 40년도 훨씬 넘었어요"

▲ 모처럼 흡족한 밥상이다. 40여년 세월의 깊이와 진득한 맛이 느껴진다. ⓒ 조찬현


이 집의 한정식은 소박하다. 구절판이나 신선로가 없어 한정식이라기에는 다소 가벼워 보인다. 하지만 제육볶음과 쭈꾸미볶음을 대표로 하여 27가지 반찬과 음식이 차려진다. 모든 찬이 다 담백하고 맛깔스럽다. 점심시간에만 영업을 하는 곳이라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 친절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냥 인원수만 얘기하고 기다리면 한참 후에 밥상이 차려진다.

식당을 가득 메운 손님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휑하니 썰물처럼 사라졌다. 주방은 '달그락~ 달그락~' 설거지에 여념이 없다. 대충 정리를 해놓은 뒤 밥상을 차려줄 심산인가보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이집의 내력에 대해 묻자 "밥집 한 지 40년도 훨씬 넘었어요"라고 답한다.

여수공항 가는 길이다. 고즈넉한 고샅길로 들어서자 골목길에는 겨울 햇살이 따사롭다. 예스러운 집은 정겨움이 가득하다. 새벽부터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한다는 글이 바람벽에 붙어있다. 둘 이상일 때만 식사가 가능한 이곳의 음식 가격은 1인분에 14000원이다.

▲ 이집의 주 메뉴인 쭈꾸미볶음이다. ⓒ 조찬현


▲ 삼삼하게 구워낸 갈치구이가 입맛을 부추긴다. ⓒ 조찬현


▲ 맛깔난 제육볶음도 이집의 대표메뉴다. ⓒ 조찬현


2인 한상 차림이다. 제육볶음과 쭈꾸미볶음, 갈치구이, 우럭찜, 가오리초무침, 파래무침 등의 반찬이 나온다. 갓김치와 파김치 배추백김치도 있다. 굴젓과 양념게장도 맛깔지다. 정갈한 모든 반찬 하나하나에 다 손이 간다.

시선을 붙드는 근사한 상차림에 모든 음식이 간도 적절하고 맛깔지다. 남도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어서 좋다. 파래김치와 굴젓에서는 여수의 바다향기가 배추 백김치에는 시원 상큼함이 오롯하게 담겨있다. 

모처럼 흡족한 밥상이다. 40여년 세월의 깊이와 진득한 맛이 느껴진다. 가짓수 많은 밥상에 별반 먹을 게 없다는 생각은 순간 사라지고 만다. 이집의 맛깔난 음식을 골고루 맛보고 나면.

▲ 여수공항 건너편의 고즈넉한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는 한정식집이다. ⓒ 조찬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과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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