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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암살·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왜 빠졌을까

[주장]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감춘 사실들과 그 의미

등록|2016.12.02 14:00 수정|2016.12.02 14:00
11월 28일, 교육부가 그동안 밀실에서 진행해온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과 집필진을 공개했다. 이후 역사학계와 언론에 의해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 특히 현대사 서술 내용에서 보이고 있는 문제점이 속속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뉴라이트의 건국절,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입장 및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미화가 국정 교과서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국정 역사교과서에 '서술된 내용'이 아니라 '서술되지 않은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왜냐면 역사 서술에는 필연적으로 취사 선택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과서일지라도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사실들을 낱낱이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러한 취사 선택이야말로 그 역사 서술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즉, 국정 역사교과서가 무엇을 감추고 싶어 했는지를 살펴보면, 이 교과서의 성격이 확연해질 것이다. 여기에서는 교육부가 공개한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의 현대사 서술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살펴본다.

고의로 누락된 극우반공체제의 야만성

국정 <고등학교 한국사>(이하 국정 한국사 교과서) 현대사 서술의 가장 큰 특징은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의해 자행된 각종 범죄'의 누락이다. 예컨대 우선 정부 수립 초기에 일어난 '김구 암살 사건'(1949. 6. 26)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다.

이승만 정권기 정적(政敵) 탄압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김구암살사건은, 김구로 상징되는 당시 민중들의 민족통일 및 민족자주를 향한 염원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부 수립 초기 이승만 정권의 성격을 보여주는 점에서 더더욱 중요하다.

김구 암살의 배후에는 친일파 출신 군인, 경찰과 미국, 그리고 이승만이 있었던 바, 이 사건은 이승만 정권이 1948년 연말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이후 1949년 6월을 전후해 '국회프락치 사건' 조작, 반민특위 무력화 등의 공세를 펼치며 극우반공체제를 확립해가던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따라서 초기 이승만 정권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는 전혀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김구 암살 사건의 누락에 이어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는 한국전쟁 시기 국군, 경찰, 미군에 의해 자행된 각종 주민집단학살 사건 역시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전국적으로 최대 20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비롯해 세간에 잘 알려진 거창학살사건, 노근리 학살 사건 등도 모조리 빠져 있다.

이러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행된 한국사 최대의 '국가 폭력(혹은 국가 범죄)'이었으며, 이후 한국사회를 수 십년간 야만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재편하였다. 아울러 이승만 정권의 부패,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수 만명이 아사한 '국민방위군 사건'(1951년) 역시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국가 폭력(범죄)'를 제대로 서술하지 않는 방침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서술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1960년 3.15부정선거 이후 최대의 부정선거로 꼽히는 6.8부정선거(1967년) 역시 "제7대 국회의원 선거"로만 표기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설명이 전혀 없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학습한 학생들은 '6.8부정선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박정희 정권 시기의 각종 인권 유린, 언론 탄압 역시 축소되어 있거나 누락되어 있다.

언론 탄압에 대한 내용은 아예 빠져있고, 인권 유린과 관련된 내용은 "전국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민청학련) 사건", "인민 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 사건의 이름만 언급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인권유린 양상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

이는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박정희 정권기 경제 성장에 관한 서술 및 북한 인권 관련 서술과 비교할 때 확연해진다. 뿐만 아니라 동백림 사건의 경우 당시 박정희 정권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하고, 나아가 북한의 대남도발 차원에서 다루어 사건의 성격과 본질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요컨대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학살, 암살, 의문사, 고문, 사찰, 감시, 검열, 미행, 불법 연행, 강제 입영, 부정선거, 부정부패 등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이 자행한 국가 폭력 및 범죄에 대한 인식을 축소, 누락, 은폐, 왜곡하고 있다.

즉, 극우반공체제의 성립 과정과 그 기제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의외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국가보안법 제정에 대한 설명이 누락된 사실 역시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학생들로 하여금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극우반공체제와 그것의 억압성, 야만성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현재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민특위에 대해 언급은 하면서도 이후 친일파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는 '지배 당하는 것'에 대한 기억을 사멸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11월 29일 자 <조선일보> 사설은,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이승만 정부의 독재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됐다", "10월 유신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 체제였다"라는 구절을 근거로, '독재'를 명시했으니 '균형잡힌 교과서'라 강변했지만, 실상 그것은 '무엇이 독재인지'에 대한 설명이 배제된 선언적 서술에 불과한 것이었다.

화폐개혁, 8.3조치 등 박정희 정권의 경제 실책은 빠져

이 밖에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서술에서 왜곡 서술하거나 중요한 사실임에도 누락한 사례를 좀 더 살펴보자. 우선 이승만의 유명한 '정읍 발언'(1946. 6) 관련 부분의 경우 이승만의 발언 내용을 그대로 옮겨만 놓았을 뿐, 그 파장과 의미에 대한 설명이 없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주장한 이승만의 정읍발언은 당시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점에서 엄청난 파장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선 정읍발언의 의미를 평가하지 않은 채 무미건조한 서술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바로 이어지는 단락의 '대구 10월 항쟁'(1946년)에 관한 서술 역시 왜곡되어 있다. 10월 항쟁은 일제시기의 공출과 다름없던 미군정의 '하곡 수집정책'과 친일경찰 및 모리간상배의 농간으로 인해 발생한 민중봉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남로당이 주도한 "유혈 충돌 사건"으로만 처리하고 있다.

5.16쿠데타 관련 서술에서는 "5.16 군사 정변의 주도 세력은 (중략)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한편 부정 축재자 처벌, 농어민 부채 탕감 등을 추진하였다"라고 기술해 마치 5.16 쿠데타 이후 부정 축재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쿠데타 세력이 부정 축재자들을 제대로 처벌했다고 보기 어려울 뿐더러, 같은 시기 쿠데타 세력이 한국 경제를 커다란 혼란에 빠트린 '화폐 개혁'의 경우에는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

또한 유신 체제 성립 과정에 대한 서술 역시 극히 빈약하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설명만으로는 유신체제가 왜 출현했는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유신쿠데타 직전의 이른바 '데탕트(미중화해)'와 '7.4남북공동성명', '8.3조치' 등의 중요한 사건이 전부 누락되어 있다.

특히 '8.3조치'의 누락은 박정희 정권이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주도한 정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4대 의혹사건, 화폐개혁, 사카린 밀수사건, 중화학공업 중복투자, 부동산 투기 조장, 노풍피해 등 박정희 정권의 경제 실책이나 부정부패 사건이 빠져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4대 의혹사건의 경우 증권파동만 언급되어 있다).

아울러 박정희 정권기 경제성장 관련 서술에서는 세계사적 시야가 결여되어 있다. 특히 1960~70년대는 일반적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언급되는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성장과 세계 자본주의 간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유신체제기 중화학공업 추진의 경우 이 무렵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인 미국과 일본에서 중화학공업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이로 인해 '산업 이전'이 이루어진 것이 중요한 계기였지만,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오로지 박정희 정권만을 그 주체로 내세우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사 장의 제목(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이 무색해질 정도이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북과의 대결에서 구하는 종북 교과서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내놓으면서 끊임없이 '균형잡힌 역사관', '올바른 국가관'을 강조하였다. 교육부 홈페이지에서도 국정 교과서를 두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라 지칭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역사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매도하고, 편향 그 자체를 문제시하는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부분 집필진 중 정통 역사학자는 단 한 명도 없으며, 모두 특정 입장에 치우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국정 한국사 교과서 역시 '또 하나의 편향된 교과서'일 뿐이다.

아울러 누구나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한 어떤 입장을 갖는 것, 즉 편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편향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편향을 '옳은 것'으로 '포장'하는 작태이며, 국가(정부)나 언론이 나서 '올바름'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행태다.

이는 '올바름'에 대한 판단 기준을 국가와 특정 언론이 소유해 사상 통제를 자행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허나 '올바름'에 대한 판단은 오직 역사학자, 교사, 학생 등 교과서의 '선택 주체'들에게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올바름의 판단 기준'을 누가 소유할 것이냐를 두고 싸우고 있는 중이다.

이와 함께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특정 인물의 '공과'에 대한 균형잡힌 서술만이 마치 역사서술의 본령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교과서는 '인물사 서술'이 아니며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의 전체 흐름과 더불어 각 시대별 특징을 익힐 수 있도록 서술하는 것이 기본이다.

한마디로 역사교과서 서술에 '기계적 공과론'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정작 학습자를 안중에 두지 않은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이는 이 교과서 발행의 숨은 목적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아울러 '공과'는, 칼로 무자르듯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대의 맥락에서 보면 '공'으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과'로 평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이 '공(功)'이고, 무엇이 '과(過)'인가에 대한 규정 역시 결국 누군가에 의한 일방적 규정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끝으로 국정 한국사 교과서가 지닌 최대의 문제점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북에 의존하고 있는 사실이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기존의 교과서와 달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였"으며, 이를 위해 첫째,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임을 명확히 서술", 둘째, "제헌 헌법부터 현행 헌법까지 주요 내용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 상세히 서술", 셋째, "북한 핵 개발, 군사 도발, 인권 문제를 상세히 서술", "6.25 전쟁은 북한이 불법 남침하였음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이 설명대로라면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통성의 한 축을 북의 도발 및 북과의 대결에서 구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 세계에서 자국의 정통성을 이웃국가의 도발이나 적대적 관계에서 확보하는 경우는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할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가 특수 관계인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북의 존재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담보하는 구실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북한 정권의 경우 정권의 정통성을 김일성의 항일투쟁에서 구할 뿐, 남한의 존재 혹은 남한과의 체제 대결에서 구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만큼, 한국 정부의 정통성은 어디까지나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이나 건국강령 등에서 찾으면 될 일이다. 굳이 북과의 대결을 대한민국 정통성의 근거로 여겨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북한에 대한 의존'이라 할 수밖에 없으며, 남북 수구세력 간의 적대적 공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정권 비판자들을 툭하면 '종북'으로 몰지만, 정작 정신적으로는 북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 보수 기득권 세력의 민낯이라고나 할까. 하기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발상 역시 북한의 전체주의적 제도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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