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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아내에게 선물한 성... 반응이 영~

[다섯 부부의 인상파식 여행] 아! 이베리아 반도 ⑨ 왕비의 마을 오비도스&돈키호테의 풍차마을

등록|2016.12.02 09:40 수정|2016.12.02 09:40

▲ 세르반테스 소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콘수에그라 풍차 마을 ⓒ 길동무


사람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비교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남과 남을 비교하는 것, 재물이나 지위에 대한 비교 등, 하여튼 비교는 하지 말아야 한다. 비교는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하고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 실이 있을 뿐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것이 비교다. 한 마디로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번 길동무 여행지 중 두 곳을 골라 비교를 시작하려 한다. 포르투갈의 진주라 불리는 오비도스와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 콘수에그라 풍차 마을을 비교의 저울대에 올려놓았다. 이 두 곳은 비교 대상으로는 참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우선 환경이 판이하다. 외적으로 유사한 것이라곤 각 국가의 수도 근교라는 것 뿐이다. 다만 가까운 것이 있다. 바로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다.

제목을 정했다. 비교를 시작한다. 여행지와 여행지, 자연과 자연, 그리고 역사와 그 역사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독립적이다.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전통이 있으며 풍속이 다르다. 그러므로 내가 시도하려는 비교는 우열 가리기가 아니다. 등위를 정하는 것은 더욱 안 될 말이다. 존재가치를 흥미롭게 드러내는 한 방법으로써 비교를 선택했을 뿐이다.

포르투갈의 진주 오비도스 vs. 스페인 콘수에그라 풍차 마을

▲ 포르투갈의 진주로 불리는 오비도스 성의 성루 ⓒ 길동무


▲ 왕비가 걸었을 오비도스의 골목 ⓒ 길동무


오비도스는 포르투갈인들이 자국의 진주라고 부르며 가장 선호하는 주말 여행지다. 수도 리스본 근교라는 점도 한몫을 할 것이다. 오비도스에는 오비도스의 상징인 아름답기 그지없는 고성이 있다. 위엄 서린 부분이 왜 없을까만 끌어안고 싶은 성루와 성문이 있다. 성안은 성곽을 포함 천천히 다녀도 2시간여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다. 홀로 걸어도 좋고 동반자가 있다면 손을 잡고 한들한들 걷기에 부담이 없다. 그림 같은 마을이다. 은퇴한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눌러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리라.

콘수에그라 풍차 마을은 오비도스와는 아주 상반된 분위기다. 지평선 아득한 드넓은 라만차 벌판, 봉긋 솟아오른 언덕 같은 돌산에 풍차 몇 개 들판을 굽어보며 도도히 서 있다. 길동무가 탐방한 날도 그랬거니와 늘 바람이 거세다고 했다. 거친 느낌이 물씬한 곳이다. 언덕 기슭의 마을은 고풍과는 거리가 멀었다. 길동무가 탐방할 그 즈음엔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마저 드물어 빈 마을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풍차를 등지고 바라보는 벌판 가운데 자락을 편 마을도 현대식 주택들이 군집해 있다.

▲ 풍차가 있는 곳에서 바라본 라만차 평야에 펼쳐진 마을 ⓒ 길동무


▲ 오비도스 성 안의 마을. 골목길 너머 아득히 성곽이 보인다. ⓒ 길동무


두 곳은 길동무가 찍은 사진 숫자로도 정감의 차이가 잘 드러났다. 오비도스를 담은 사진 숫자가 열 배는 많았다. 오비도스, 그만큼 아늑했다. 아릿한 곳이었다. 풍차마을은 황량했다. 그러나 당당했다. 힘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오비도스가 성벽을 두르고 보호받는 느낌이라면 풍차마을은 사방으로 벌판을 거느리고 우뚝 서서 닥쳐오는 풍상을 거뜬히 헤쳐 내는 강한 느낌이다.

오비도스는 잔잔하게 이야기를 많이 자아내는 곳이고, 풍차 마을은 선 굵은 몇 마디로 족할 곳이다. 승부는 오비도스로 기울었다. '왕비의 마을'로 불리는 아름다운 곳, 보석 같은 곳으로 평가받으며 사랑을 받는 곳 오비도스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풍차 마을이 세르반테스 소설 <돈키호테>의 배경이란 메가톤급 이유 하나를 내밀어 강력한 한 방을 먹인다.

승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좀 더 분석해볼 수밖에 없다. 알폰소 2세 왕이 오비도스의 대표로 고개를 들고 나온다. 오비도스의 아름다움에 반한 알폰소 2세 왕은 1210년 아내인 우레카 왕비에게 이 마을을 결혼 선물로 준다. 물론 이는 마을이 통째로 왕비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왕이라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을 어찌 통째로 선물할 수 있겠는가. 봉작이나 봉군과 같은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인물도 기리고 지역도 드러내는 역사 속 묘미다.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선포를 했다.

"나는 오늘 내 아내 나공주에게 포르투갈 여행 기념으로 오비도스 성을 선물하노라."

행여 길동무가 들을까봐 조용히 성 하나를 선물을 했는데 아내는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아마도 왕비가 아닌 탓일 게다. 근데 난 아무래도 왕이 될 가망이 없으니 이걸 어쩌나.

오비도스를 선물 받은 왕비는 얼마나 기뻤을까? 역사 속 제도 봉군의 묘미는 당시 왕비만 기쁘게 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마을이 포르투갈의 진주로 불리게 하는 데 튼튼한 힘과 배경이 되었다. 후대의 왕들도 선대를 따라 왕비에게 오비도스를 선물했고, 그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아름다운 전통이 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남았다. 여전히 왕비의 마을로 불리며 그 품격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 골목에서 다시 갈린 골목 구석에 자리 잡은 음식점의 깜찍한 문 ⓒ 길동무


풍차 마을은 벌판이 펼쳐졌고 햇볕의 은총이 두터웠다. 바람이 풍성하게 오갔다. 벌판이 넓고 햇빛 풍성하며 바람 좋은 곳에 풍성한 수확은 당연했으리라. 그리고 방아를 찧을 풍차가 필요했으리라. 그렇다. 풍차 마을은 아늑하고 잔잔한 오비도스와는 태생적으로 딴판이다.

풍차 마을엔 예나 지금이나 라만차 지방의 상징인 광대한 벌판이 바람을 따라 사방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용기로 변함없이 꿈을 펼친다. 그러므로 풍차 마을에서는 돈키호테가 대표로 나설 수밖에 없다.

16세기에 발간된 소설 <돈키호테>, 어떤 학자는 현대소설의 시효라 평하고, 어떤 이는 세상에서 최고로 많이 읽힌 소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출간한 지 4세기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 <돈키호테>, 소설의 주인공 같은 세르반테스 생과 소설 속 가상 인물 돈키호테, 그리고 풍차는 들여다볼수록 참으로 멋진 조화다.

그러므로 승부를 가릴 수 없다. 두 곳의 존재가 실로 개성 넘치고 가치가 분명하지 않은가? 그것을 확인한 것으로 여기서 비교를 마칠 수밖에 없다. 더는 두 곳에 관한 저울질이 필요 없다. 이제 길동무 여행의 본질인 허허실실, 인상파식으로 왕비 마을의 품을 거닐어 보자.

후대의 왕들도 선대 따라 왕비에게 선물한 마을 오비도스

성(城)의 이미지는 참 다중적이다. 성은 우선 수난의 표상이다. 수난을 이겨내기 위해 힘들여 성을 쌓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은 보호막 이미지가 강하다.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으로 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살벌한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격동의 시기가 지나고 성의 기능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 성은 아름다운 대상으로 변한다. 특히 오래된 성은 그곳에 서는 것만으로 감회에 젖게 한다. 수난의 역사마저 그리움의 대상으로 바꾸어 대령하는 것이 성이다.

오비도스의 작지만 아름다운 성, 다중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성의 모델 오비도스는 아주 천천히 걸어야 그 진수를 즐길 수 있다. 작은 창이 아름답다. 오래된 시간과 따끈한 햇빛이 어울려 즐긴다. 크지 않은 문들과 지붕을 덮은 기와에서는 시간이 빚은 솜씨가 그윽이 배어난다. 창가와 담장의 꽃들이 수줍음을 다툰다. 이에 질세라 곳곳을 장식한 아줄레주(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가 반짝인다. 대형으로 무리를 이룰 때보다 아줄레주의 멋이 깜찍하다.

▲ 사람사는 느낌을 실감나게 했던 놀랍고 반갑고 이색적이었던 오비도스의 헌책방. ⓒ 길동무


▲ 헌책과 호박, 올리브유, 작은 꿀 병, 씨앗 봉지 등이 함께 어울린 책장 ⓒ 길동무


책방이 있다. 누군가의 손을 거치고 눈길과 마음을 받았던 헌책들이 모인 곳이다. 놀랍고 반갑고 이색적이다. 갑자기 사람사는 향기가 팍팍 밀려든다.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이 매우 큰 규모다. 의자가 곳곳에 놓인 것을 보니 마을 사람들의 독서모임이 있는 걸까? 마을의 사랑방 역할도 하는가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책장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박도 올라있고 꿀 병도 들어있다. 올리브유와 진자도 거기에 진열해 팔고 있다. 입구 한쪽에는 곡물도 있다. 채소, 과일, 가벼운 옷가지, 각종 씨앗 등 잡화상을 겸하고 있다. 마음의 양식을 쌓는 책들과 의식주에 필요한 물품들이 한데 어울리니 그도 하나의 의미가 된다. 그래 이 모두는 절대 여럿이 아닌 오직 하나다.

골목의 상점들은 모두 문이나 바깥벽에 아주 깜찍하게 상품을 디스플레이 해놓고 있다. 그냥 아웃 테리어다. 진자(Ginja)라는 이름의 초콜릿으로 만든 잔에 담은 체리 술이 여기저기서 유혹을 한다. 유혹이 있으면 피할 길동무가 아니다. 평소 술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유니카씨가 주모로 나선다. 골목길이라 건배사 없는 건배를 했다. 잔까지 한입에 털어 넣고 오물거리기는 처음이다.

▲ 오비도스의 특산물 Ginja를 파는 집 ⓒ 길동무


▲ 골목길에 서서 진자를 즐기는 서양인들 ⓒ 길동무


"이건 주스야? 술이야? 오비도스야? 아님 풍차 마을이야?"

복나눔씨가 초콜릿 잔을 삼키며 한마디 한다. 술이라면 시쳇말로 지고 가는 것보다 마시고 가는 것이 편할 그다. 오비도스 토속주 진자는 그야말로 오비도스 느낌이다. 복나눔씨는 아무래도 다시 풍차 마을로 가야 할 것 같다. 거기에 어울릴 위스키 한 병 들고.

"술꾼에겐 주스지만 내게는 이 거 몇 잔이면 풍차를 돌려."

소주 몇 잔이면 길바닥이 일어나 이마와 박치기를 한다는 길대장의 대꾸다. 저만치에서는 서양인들이 체격에 어울리지 않은 그 쬐그만 초콜릿 잔 하나 들고 골목길을 전세낸 양 떠들어 댄다.

몇 걸음 옮기자 빵 굽는 집이 있다. 누구라고 밝힐 수 없지만, 길동무에는 빵순이 별명을 가진 이가 있다. 빵집 앞에서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그를 쳐다본다. 빵순이 아니래도 이 고소한 냄새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유리 없는 창이 있어 들여다보자 들어오라 손짓을 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실내에는 크고 육중한 탁자가 놓여있고 건강한 여성이 밀가루 반죽을 마음껏 주무른다. 마치 놀이를 하는 것 같다.

곧 익어 나오는 것이 있다. 따끈한 것이 바삭하고 고소하다. 2유로에 열 개, 놀랍도록 맛있는 빵이 값이 싸서 더 놀라게 한다. 크기도 적지 않다. 열 명이 나눠 먹기에 참 착하다. 알바라신에서는 맛있는 음식이 값까지 싸 환호를 지르게 하더니 오비도스에서는 빵이 맛과 값으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 오비도스 성곽 ⓒ 길동무


▲ 가이드 이 선생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동무 모두가 "우리가 언제 또 여길 온다고~"를 외치며 올랐던 오비도스 성곽. 오르고 나면 환호가 절로 나온다. ⓒ 길동무


고색창연한 성곽이 성큼 다가든다. 바윗덩이를 기반 삼았으니 성곽다운 튼튼한 성곽이다. 고소공포증 가진 사람은 오르지 말라는 가이드 이 선생의 당부를 들은 척 마는 척 모두 다 아찔한 성곽을 오른다. "우리가 또 언제 여기를 온다고", 누가 상기해주지 않아도 길동무 여행 신조는 여전히 싱싱하다. 

성곽에 오르니 시야가 한껏 넓어진다. 성 아래로 펼쳐진 지형이 오밀조밀 아름답다. 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것 같다. 굴곡과 온화함을 두루 갖춘 주변의 지세가 성을 쌓도록 요구한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역사 이야기와 인물들의 이야기가 숨은 곳일까? 어디나 땅은 참 무던하다. 성을 쌓아도 주인이 바뀌어도 모든 것을 견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진리만을 묵주처럼 돌리고 있다.

수로교도 보인다. 세고비아의 엄청난 규모 수로교를 보아서인지 정겹다. 이 성도 멀리서 물을 끌어왔었나 보다. 솟은 암반을 축으로 삼은 마을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산타 마리아 성당, 시청, 기념비와 미술관 중세 마을로서 구색을 다 갖췄다.

버스를 세운 곳으로 되돌아오는 길,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길거리 악사가 그새 자리를 폈다. 여행객을 흘끔거리는 것을 보니 연주 삼매와는 거리가 멀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마음이 있는 모습이다. 성문 근처 성벽 옆에는 중세 기사 복장을 한 이가 창대 하나 곧추세우고 섰다. 머리부터 신발까지 검게 치장을 했다.

▲ 오비도스 성곽에서 바라본 성밖 마을 ⓒ 길동무


▲ 성문 옆 성벽 아래서 중세 기사 복장을 하고 선 사나이 ⓒ 길동무


중세 기사들은 왜 저런 복장을 했을까? 상대방 기죽이려고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얼굴이 못 생겼었을까? 왠지 돈을 먼저 주고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아 동전 하나 던져 넣었다. 볼록 튀어나온 뱃살의 사나이, 검은 천으로 가린 그의 얼굴에 하루 종일 미소가 넘치기를 빌어줬다.

성문 밖 공터에서는 주말이면 장이 선다고 했다. 근처 농가가 많으니 농산물들이 풍성하게 시장에 펼쳐지리라. 직접 재배한 과일과 채소는 물론 맛난 간식거리도 많이 나오겠지. 장터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늘 흐뭇하다. 왕비의 마을에서 우아한 모습의 왕비를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 그러나 미련을 거두고 오비도스를 떠나야 한다. 여행자를 기다리는 것은 왕비가 아니라 다음 목적지다.
덧붙이는 글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인도네시아에 사는 한국인 다섯 부부의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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