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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도 줄고 사무직도 아니지만 행복합니다"

목포의 한 서점에서 일하는 청년 이기헌씨

등록|2016.12.06 11:17 수정|2016.12.07 15:07

▲ 이기헌 씨가 일하고 있는 목포의 한 서점. 목포종합버스터미널 1층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오래 전, 서점에서 일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책도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지난 11월 30일, 그 선망의 대상을 만났다. 목포의 한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이기헌(30)씨다.

"여유가 있어서 좋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요. 틈틈이 책도 볼 수 있어서 좋고요. 예전 직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입니다."

이씨는 한때 택배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2012년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찾다가 들어간 직장이었다. 중견기업에다 연봉도 꽤 높았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해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게 버거웠다.

"경기도 군포에서 살았는데요. 부모형제 곁을 떠나 타향에서 혼자 산다는 게 힘들더라고요. 원룸에서 사는 것도 재정 부담이 돼서, 고시원에서 생활했어요. 고통이었습니다."

▲ 이기헌 씨가 물류회사에서 가져온 책을 자신의 작업실로 옮기고 있다. ⓒ 이돈삼


▲ 이기헌 씨가 서점의 작업실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다. ⓒ 이돈삼


생활만 부담되는 게 아니었다. 일도 갈수록 힘들었다. 늘 시간에 쫓겨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고시원에 돌아오면 바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당시 이씨에게 취업의 첫 번째 조건은 급여였다. 급여만 많으면 근무환경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이라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게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서비스업이었는데, 당초 생각과 달리 힘들었어요. 언제나 고객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고객을 배려해야 하고요. 나는 없더라고요. 일만 있고요."

힘들어하던 이씨에게 형이 손을 내밀었다. '내려와서 같이 살자'는 것이었다. 형은 무안 남악에 있는 전라남도 유관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1년 조금 넘게 일하던 택배회사를 그만두고 내려왔다. 지난해 초였다.

이씨는 형과 함께 남악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다. 쉬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지금 일하고 있는 서점과 만난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짧은 수습기간을 거쳐 9월부터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 이기헌 씨가 일하는 서점의 풍경. 이 씨는 이 서점에서 일하고 있다. ⓒ 이돈삼


서점에서 이씨가 하는 일은 도서 검수. 물류회사에서 갖고 온 책을 일일이 확인하는 일이다. 바코드를 스캔해 컴퓨터에 입력하는 일까지다. 학습지 등 서점에서 필요로 하는 책을 따로 떼어오는 것도 그의 몫이다. 서점에 들어오는 책이 매장에 전시되기 전까지의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봉급은 이전보다 많이 줄었어요. 사무직도 아니고요. 그래도 행복합니다. 근무시간이 일정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요. 스트레스, 폭식, 음주 등으로 망가진 몸과 마음도 좋아졌어요."

이씨는 근무 외 시간을 활용해 자신을 계발한다. '책 읽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책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쉬는 날이면 영광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부모의 일을 거들기도 한다. 이전 회사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여유다.

"주변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친구들이 있어요. 서울에서 눌러앉지 않고, 내려왔다고요. 저는 그런 친구들한테 말합니다. 우리 지역에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냐고?"

이 씨의 말에서 자부심과 행복이 묻어난다.

▲ 이기헌 씨가 서점으로 들어온 책의 바코드를 스캔하고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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