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가결에 대구시민들 "믿은 만큼 배신감도 컸다"
탄핵에 대부분 찬성하면서도 착잡
▲ 동대구역에 모인 시민들이 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결과가 나오는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조정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이 가결되자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이미 예상된 결과가 나왔다면서도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8일 오후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탄핵 가결 소식이 전해지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한 시민은 양손을 높이 들고 "탄핵 가결이다"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은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TV만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을 유린하고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놀아난 것이 억울할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정치 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왔다는 김선남(62)씨는 "국민 대다수가 원하고 저도 대통령의 탄핵을 찬성했지만 막상 탄핵안이 통과되니 착잡한 마음이 든다"며 "대통령이 분명히 잘못했기 때문에 좀 더 진솔한 마음으로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달성군에 살고 있다는 이철(60)씨는 "이미 대통령의 범죄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상태에서 스스로 내려올 기회를 줬는데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했다"며 "탄핵을 당하니 통쾌하고 시원하다, 몇 년 동안 가슴에 맺혀 있던 것이 뻥 터진 느낌"이라고 환호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배지혜(34)씨는 "탄핵 찬성표가 220표까지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며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분들의 실망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더 크다"며 "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 계속해서 나오니까 완전히 기대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 동대구역에 모인 시민들이 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결과가 나오는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조정훈
▲ 박근혜 대통령이 어려울 때마다 자주 찾았던 서문시장 상인들은 박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착잡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조정훈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찾았던 서문시장 상인들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서문시장 동산상가 지하에서 TV를 지켜보던 상인들은 대통령이 잘못을 반성하고 임기를 채웠으면 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최동수(65)씨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했다면 얼마 남지 않은 임기를 다 채우고 나왔을 것"이라며 "결국 탄핵을 당했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착잡하다"고 말했다.
최씨는 "대통령이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를 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민을 배신한 것이 되고 말았다"며 "사심에 의해 정치를 했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인철(60)씨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권력을 최순실에게 주었다는 것에 분노한다"며 "탄핵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제 우리 대구시민들도 무조건 새누리당만 지지할 게 아니라 야당한테도 표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서문시장 4지구의 노기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를 그렇게 못했으니 당연히 탄핵을 당한 것 아니겠느냐"며 "헌법재판소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상인들은 최순실이 잘못한 일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것은 억울할 것이라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서문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는 배순선(63)씨는 "잘못은 있지만 그래도 대구가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라며 "고향인데 아무리 밉더라도 지켜줘야 한다. 본인도 얼마나 억울하겠나"라고 말했다.
▲ 서문시장 동산상가 상인들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리는 박근혜 탄핵 투표를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 조정훈
박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대구의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성명을 발표하고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출발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탄핵이 가결된 후 가진 긴급 간부회의에서 "이번 탄핵안 가결이 그동안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계기가 되도록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며 "중앙정부가 흔들릴수록 지방정부가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 시민들을 지키는데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직무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탄핵을 반대한다며 정치권이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던 김응규 경북도의회 의장은 "탄핵 결과는 준엄한 국민의 요구에 따른 국회의 어려운 선택이었다"며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정국이 하루 빨리 안정적으로 수습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논평을 통해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지엄한 권한을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며 국정농단세력과 결탁하여 헌법을 유린한 그 순간부터 대통령은 자격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범죄자로 전락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압도적 탄핵가결은 위대한 국민의 승리"라고 말했다.
대구시당은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자진사퇴는 그가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행하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헌법재판소도 국정공백의 최소화를 위해 국회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최단 기간 내에 인용결정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도 "탄핵 가결은 주권재민의 결과이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며 "대한민국을 온전히 인양하여 부패를 척결하고 국민이 원하는 민주공화국을 국민들이 직접 다시 세우는 희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대구시당은 "대한민국 국민은 주권자로서 엄명을 내렸고 민의를 받든 이들은 그 준엄한 명령을 받았다"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첫 단추로 법과 원칙을 세우고 정의와 상식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 박근혜퇴진 대구시민행동은 9일 오후 대구백화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탄핵 가결은 국민의 승리라며 당장 내려올 것을 촉구했다. ⓒ 조정훈
시민단체들도 국민의 승리라며 당장 하야할 것을 요구했다. 박근혜퇴진 대구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5시30분 대구백화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부정한 권력을 심판한 역사적인 표결"이라며 "국회가 민의를 대변해 최소한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대구시민행동은 이어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을 유린한 공범들이 존재하고 권력의 크기만 달랐을 뿐 온갖 특혜와 비리로 나라를 망친 부역자들도 그대로다"라며 "탄핵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위대한 국민들의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대구참여연대는 "주권자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을 대의기관인 국회가 받든 것은 국민촛불의 승리이자 시민혁명 대장정의 서막을 올린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즉각 퇴진해 특검의 수사를 받을 것과 새누리당 해체, 내각 총사퇴 등을 요구했다.
한편 박근혜퇴진 대구시민행동은 9일 오후 대구백화점 앞에서 새누리당 해체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갖고 예정대로 오는 10일 오후 5시부터 한일로 교보문고 앞에서 시국대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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