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책상', 그 속에 숨은 교훈
"서로 다른 나무가 구멍을 내 상대에 파고들어 하나가 된단다"
▲ 서안천판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로부터 올라온 장부 촉이 보인다. ⓒ 고성혁
일주일에 한 번씩 국가무형문화재인 나주 소반장 '김춘식' 선생 공방에서 목공예를 배우고 있다. 지난 6주 동안은 세 번의 옻칠까지 포함 대부분의 시간을 서안(書案)을 만드는 데 썼다.
서안을 두고 '고요함 속에서 무한 에너지를 창출하던 옛 선비의 책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말갛게 앉아 스스로 고요를 머금고 있는 서안. 주변의 어지러운 것들을 정리하고 난 후 서안을 마주 대하고 앉으면 잡다한 번뇌를 잊게 한다. 마음을 깎고 다듬어 천판(天板) 위에 꿇어앉히는 듯 고요하게 침묵과 사색이 내린다.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과 평화를 얻을 뿐 아니라 사색 끝에 한 줄의 문장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서상'(書床)이라고도 하는 서안은 옛 선비의 벗이었다. 글을 읽거나 쓸 때 사용하는 낮은 책상이다. 어쩌면 옛 선비들은 그 앞에 단정히 앉아 세상의 이치를 생각했을 것이다. 국가경영에 미흡한 군주를 보면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옷깃을 펄럭이며 폐부를 찌르는 장계를 썼을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 인형이 돼 희화화를 거듭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참담함을 불러일으키는 누군가를 보면서 서안의 의미를 거듭 되새기게 된다. 서안은 어쩌면 투박하리만치 단정한 줏대와 단단함에서 더 큰 의미를 찾아야 할는지 모르겠다.
서안은 못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무를 고정시키는 힘은 오로지 스스로의 결합에 의해 발생한다. 나무를 잘라 천판(상판)과 밑판(아래 판), 그리고 양 다리를 만든다. 기본 틀을 만들고 나면 깎고 밀어 넣을 정밀한 그림(장부 촉과 장부 구멍)을 그려야 한다.
▲ 천판에 뚫린 장부 구멍다리로부터 솟은 장부 촉이 천판에 뚫린 구멍과 결합돼 있다. 전문가의 솜씨가 아니라 조금 조악하다. ⓒ 고성혁
그림이 조금이라도 잘못될 경우 들어가야 할 촉과 깎아놓은 구멍이 서로 맞지 않아 결국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몇 번의 실측으로 믿음이 생겼을 때 천판에 실제로 사각형 장부 구멍을 뚫음과 동시에 다리에는 그 구멍에 들어갈 촉을 만들고, 양 다리에도 가로의 장부 구멍을 뚫고 밑판에 장부 촉을 만든다.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면 접착제를 묻힌 다음 장부의 결합만으로 합체시켜 견고한 서안을 완성시킨다. 따라서 서안을 만듦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가로의 천판과 밑판, 세로의 양 다리를 결부시키는 장부의 촉과 구멍의 재단이다. 그것이 정밀하게 맞지 않으면 결코 단정하고 견고한 서안을 만들 수 없다.
지난 달 결혼한 지 채 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들 내외를 불렀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만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녀석들이 상대의 성격에 맞추기 위해 다소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 서안을 가리키며 얘기를 꺼냈다.
"서로 다른 나무가 자신의 품에 구멍을 내고 상대에게 파고들게 함으로써 하나가 된 게 저 서안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한다. 한 마음으로 하나의 몸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 서안이야말로 일심동체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서안은 서로를 이해하고 완벽하게 자신을 양보하여 상대의 살이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밀착되게 함으로써 하나가 된다. 그런 연후에도 조금이라도 튀어나오거나 들어맞지 않는 면이 있으면 톱으로 자르고 비틀어 맞추거나 그 흠을 메워야 한다.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고 사포로 골고루 문질러 매끄럽게 다듬은 다음 자신의 기호에 따라 도료를 칠한다. 옻칠의 경우, 김춘식 선생 공방에서는 3주에 걸쳐 칠하고 말린 후 결을 따라 사포질을 반복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 정도의 노고를 거치니 어찌 애정이 없을 수 있으랴. 고통 속에서 자신의 몸을 내주며 상대의 몸을 받아들이는 헌신과 양보야 말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하나가 되는 뼈저린 체현(體現)이 분명할 것이다. 서안은 어쩌면 양보로 탄생하는 명상의 틀인지도 모르겠다. 아들 내외가 그 말의 의미를 부디 알아들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광주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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