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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일으킨 루터, 유폐된 1년이 없었다면

제임스 레스틴의 <루터의 밧모섬>

등록|2016.12.14 16:17 수정|2016.12.14 16:17
종교개혁의 창시자 하면 누구라도 루터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는 비텐베르크 성당의 나무문에 '면벌부'와 관련된 '95개조 반박문'을 내 건 장본인이었죠. 그 일로 황제가 주제하는 '보름스 제국회의장'에 소환됐습니다. 그를 아끼는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렸지만 루터는 그 길을 굽히지 않았죠.

그곳 회의장, 곧 심문장에 소환된 루터는 처음엔 기가 눌려 아무런 말도 답변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등장했을 때에는 그 논쟁에서 아주 당당하고 힘이 있었고, 로마 교황청의 어긋난 논조와 그릇된 행보에 정면으로 반박해 냈습니다.

문제는 루터의 95개조 논조와 보름스 제국회의를 바라보는 수많은 여론이었죠. 로마 교황청을 위시한 많은 정치적 이해집단들, 정경유착의 고리처럼 얽혀 있는 메디치가를 둘러싼 경제적 이익집단들, 그들 역시 루터를 함부로 단죄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루터의 설교와 강의를 박탈하고 자중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정리코자 했습니다. 물론 교황과 황제를 둘러싼 최측근들은 모종의 또 다른 속내를 감추고 있었죠. 루터를 제거하자는 것 말입니다.

책겉표지제임스 레스틴의 〈루터의 밧모섬〉 ⓒ 이른비

만약 그때 루터가 안전하게 귀가했더라면, 아니면 루터가 살해당하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종교개혁의 횃불이 훨씬 미미하게 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루터가 우리가 아는 명실상부한 루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에 있었습니다.

"1521년 5월 6일 자정 무렵 바르트부르크 성의 도개교가 내려왔고 엄격한 성주 한스 폰 베를렙쉬는 여독에 지쳐 꾀죄죄한 루터를 티내지 않고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베일에 싸인 손님의 진짜 정채를 알지 못했지만 명령받은 대로 따랐다. 루터는 성 꼭대기에 있는 두 개의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81쪽)

제임스 레스틴의 <루터의 밧모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귀향 여정 여드레째 되는 날, 루터는 복면의 괴한에게 덮쳐 피습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인도하기 위한 작센의 프리드리히 선제후가 벌인 계책이었던 것이죠.

이 책은 저널리스트이자 역사 저술가인 레스턴이 쓴 글입니다. 그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루터의 용기와 열정에 매료돼, 루터의 생애 가운데 가장 빛나는 한 시기를 다루지만, 그의 모든 삶을 집약하여 보여준 전기적 형식의 글을 써 내려갑니다.

사실 그 바르트부르크 성은 1491년 루터가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만스펠트로 이사하여 살면서 바라 본 웅장한 성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30년 뒤 루터가 정치적인 인간세력들로부터 피신해 숨어들어간 그 요새였던 것입니다. 1521년 4월에서 1522년 3월까지 근 1년여 동안 갇힌 상태로 말이죠.

그런데 왜 하필 그 성을 '밧모섬'으로 지칭한 것일까요? 신약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치세 때 유배지로 끌려가 쓴 글인데, 그 유배지가 바로 밧모섬이었죠. 바르트부르크 성도 바로 그런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뜻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제 로마서 3장 23-24절에 이르렀다. 성 히에로니무스의 공인 본문은 이렇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킹제임스 본은 말을 약간 바꾸었다.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대속을 통하여 그 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루터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고쳐 썼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음을 압니다.'"(221쪽)

왜 루터가 명실상부한 루터요, 그의 종교개혁 횃불이 유럽 전역으로 활활 타오르게 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바르트부르크 성에 유폐돼 있는 동안 루터는 모든 독일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신약성경을 번역해 냈고, 그 중 로마서를 번역하면서 도출한 '오직 믿음'이라는 전대미문의 용어가 그를 유배지에서 '대부활'케 한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루터의 종교개혁 깃발은 비텐베르크 성문에 내건 95개 반박문에서 촉발되었을지라도, 그 개혁의 횃불이 훨훨 타오르게 된 것은 바르트부르크 성에 1년간 갇혀 성경 번역에 매달렸던 그 고난의 삶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 모두가 나를 엉뚱한 시선으로 바라볼지라도, 그 속에서 정말로 바른 것을 밝혀낸다면, 분명코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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