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적폐' 청산... 요기 베라를 기억해야 한다
"끝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다"... 공적 권력의 사유화 차원에서 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 국정농단의 두 '주역' 박근혜(오른쪽) 대통령과 최순실(왼쪽)씨. ⓒ 오마이뉴스
비선 실세와 '박근혜 게이트'
2016년, 가히 '역대급' 이라 말 할 수 있을 정치 스캔들이 터졌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인맥에게 부당한 이득을 챙겨주거나 비리를 꾸미는 일들은 지금껏 존재했다. 하지만, 최순실로 대표되는 이른바 '비선 실세'가 정부의 막후에서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고, 이토록 커다란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권력을 행사한 사례는 적어도 한국의 정치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비선의 실세로 여겨지는 최순실씨 일가와 그 주변 인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뒤에서, 혹은 정부와 기업의 요직 등에서 국가 권력을 주무르고 막대한 부당이익 또한 챙겨왔던 것이 연일 밝혀지고 있다.
특히 최순실씨 같은 경우는 박정희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인 1970년대부터 당시 영애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했고, 과거의 영애가 현재의 대통령이 되자 그의 연설문을 먼저 보고 심지어 수정까지 할 정도로 대통령과 밀접한 최측근 이상의 '비선'이 됐다.
마치 경험 없는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상왕이나 대왕대비 같은 사람들이 수렴청정이나 대리청정을 했던 것처럼, 최순실은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 같았고,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그의 뒤에서 향유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과 밀접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그밖에도 광고 감독 차은택씨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이 거대한 정치 스캔들에 연루돼 있는 사람들은 이 정부의 안팎에서 매우 강력하고 거대한 '비선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 가능한 범위 밖에서 이 카르텔은 움직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부의 붕괴와 탄핵
▲ 박근혜 탄핵안 가결 선포하는 정세균 의장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남소연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지난 11월 5일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약 12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못 해도 수십만 명, 많게는 160만 명 이상의 시민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이상 주최 측 추산). 법원 또한 행진 영역을 점차 넓히더니 청와대 100m 앞까지 문을 열어줬다.
국민들은 – 심지어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조차 -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퇴와 검찰 수사 이행을 요구하고 있고,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콘크리트 층 또한 무너지다 못해 5% 미만으로 붕괴해 버렸다. 더 추락할 것도 없는 수준인 것이다.
그리고 특검과 국정조사에서는 연일 증인들이 박근혜 정부와 최순실, 우병우 등 '비선실세'에 대해 증언들을 해줬고, 야당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이라는, 각각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국가가 국민을 죽인 사건들이 이 정치 스캔들과 함께 부메랑처럼 돌아와 버렸다.
결국 지난 12월 9일, 국회에서는 299명 투표 234명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고, 박근혜 정부가 지난 임기 동안 많은 법률과 헌법들을 위반해왔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밝혀졌다. 정부의 빠른 퇴진이라는 원래 구호에서 후퇴했기 때문인지 찜찜한 감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 정치사에는 적어도 성공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성과가 남았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고, 황교안 총리가 권한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향키를 잡게 됐다. 하지만 이미 국가와 정부의 시스템은 대다수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아무런 정당성 또한 찾을 수 없는 정부로 낙인이 찍혔다.
극우파들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더 이상 이 국가와 정부를 믿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 팬클럽인 '박사모' 등을 비롯한 극우 세력에서는 "좌파 세력의 준동" 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가져다 붙이곤 하지만, 사실 그들의 핑계는 근본적으로 빗나갔다.
왜냐하면 광화문부터 청와대 앞까지 가득 메운 그리고 전국을 가득 메운 촛불 중에는 여전히 자신을 보수라고 정체화하는 사람도 많았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에 실망했기 때문에 촛불을 들고 나왔다는 사람들 또한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극우 세력은 자신들의 집회 구역을 넘어 세월호 광장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는데, 이러한 면면들이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이미 붕괴될 대로 붕괴됐고, 그러한 백색 테러리스트들만이 그의 주변에 남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불리던 TK(대구·경북) 지방에서도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고, 탄핵 소추 당시에도 야당과 새누리당 내 비박계는 물론, 주류나 친박 중 일부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곤 했다. 그리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비박계와 친박계가 갈라져 새 당을 세우네 마네 하는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정당성을 잃어버린 권력은 빠르게 붕괴하고 있고, 또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사적으로 사용된 국가의 공적 권력
▲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왼쪽)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무릇 국가의 권력은 공적인 것이다. 그러한 만큼 권력의 소재지는 공적인 부분에 있어야 하고 그것의 행사 또한 당연히 공적인 부분에 한정되어야 한다. 국가 권력의 소재지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5000만 명의 국민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 그 권력 행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정치 지도자는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을 구별해내지 못했고, 그럴 능력 또한 함양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 덕분에 공적 권력은 사유화된 사적 권력이 됐고, 그와 친하거나 같은 카르텔 내부의 사람들을 통해 향유돼왔다.
이러한 '공적 권력의 사유화' 와 비선 실세,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 카르텔' 은 그저 단순한 정치 스캔들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박근혜 게이트'라고 불리는 정치적 사건은 헌법과 (자유)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 일동의 거대한 탈 법치, 반민주적 데카당스(사회적 타락)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국가 권력의 소재지가 '민의(民意)'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국가의 권력의 민의에 기반한다는 것은 이야기한 것처럼 국가 권력은 그 근본부터 시행, 그리고 책임까지 공적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헌법 전문에 적혀 있는 '4.19 민주혁명 정신'과 엮여,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공적이라는 것을 반복해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그의 정치 카르텔은 그것을 정면으로 위배했다. 박근혜 정부가 가진 권력이 국민의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만큼, 출발지는 민의였을 지 몰라도, 그것의 사용은 민의에 기반하거나 민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승마 연습을 하고 메달을 따는 데 들어간 막대한 수준의 돈은 대개 국가와 기업에게서 나왔다.
막상 민의를 이루는 민주국가의 시민들 중 많은 이들이 복지와 분배를 비롯한 기본적 시민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때, 정유라의 승마를 위해서 그리고 최순실의 비리를 위해서는 몇억 원은 우스울 정도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암암리에 사용됐다.
또 대통령의 뜻으로 설립돼 기업들이 지원하던, 문화재단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이라는 미심쩍은 단체들과 여러 회사들에 대한 의혹들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순실과 차은택 등이 관계되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은 점차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데,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비리와 돈세탁을 눈감아준 것도 모자라, 조장했다고 볼 수 있는, 아니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끝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다
▲ 탄핵 반대 '병신16적' 밟는 시민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이 박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등 친박 의원들의 얼굴 사진을 밟고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끝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 it's over)."
1973년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감독이던 요기 베라(Yogi Berra)가 자신의 팀을 지구 꼴찌라고 조롱하던 기자에게 쏘아붙이듯 남긴 말이다. 결국 뉴욕 메츠는 1위와 9.5 경기 차를 극복하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박근혜 게이트' 또한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당장만 봐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출두하겠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고, 정권의 실세 중 하나이자 이 정치 스캔들의 중심 인물 중 하나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정조사에서 카운터 펀치를 맞았지만 여전히 "늙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 거대한 정치 스캔들의 큰 축에 있고, 최순실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그들이 도망갈 구석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야당, 특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후원과 지지 그리고 제보는 점점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물론 그들이 꼭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부패한 정권과 그 관련자들을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즉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권위주의에서 아무렇지 않게 인권을 탄압하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던 권위주의 관료들을 민주화 과정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의 민주주의 사례에서 권위주의 관료들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뤄지곤 한다. 하지만 한국은 민주화가 1987년 6월에 일어난, 민주주의 추동 세력 내 온건파와 노태우로 대표되는 군부 독재 세력 내 온건 반대파 사이에 일어난 '타협' 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그러한 권위주의의 잔재들을 제대로 뿌리뽑지 못한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 때문에 악명높은 공안검사 출신 김기춘을 비롯한 권위주의 관료들이 여전히 정부의 요직에 앉아있는 것이고, 권위주의적 사고가 사회와 정치권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권위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증거는 무엇보다도 죽을 때까지 집권한 군사 독재자의 자녀가 민주주의의 큰 요소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시점에서도 이러한 군사독재의 낡은 유산들을 완전히 처분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탄핵을 시작으로 그러한 적폐들을, 그리고 권위주의 관료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것은 조금 늦었지만 민주주의로의 큰 한 걸음이 될 것이다.
비록 국민들에 의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퇴진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 한계점 때문인지 이 정치 스캔들의 범인들은 '금방 식어버리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증거 인멸이나 도주 등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또 황교안 권한 대행의 첫 발언처럼, 북한이나 경제 문제 등으로 화두를 돌려 관심을 잃게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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