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의 최후변론... '세월호가 불편했습니까'
기사 편집 이유로 기소, 벌금 150만원 구형한 검찰... 시민기자 제도가 법정에 섰다
▲ 검찰이 '세월호 모욕 후보' 심판을 위해 투표장에 나가라고 독려한 <오마이뉴스> 칼럼을 문제삼아, 편집기자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 오마이뉴스
저는 <오마이뉴스> 편집부 김준수 기자입니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2차 공판을 끝내고 나왔습니다.
지난 10월 7일에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지금 투표하러 가십시오>라는 기사를 편집했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바 있습니다. 기사는 지난 4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듯이 '세월호 진상규명'과 '소수자 보호'의 선거 의제를 되짚으면서 투표에 참여해달라고 독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시작은 보수단체의 고발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며칠 뒤, '한겨레청년단' 측에서 제가 편집한 기사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면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는 당일 고발을 취소했고, 다음날 곧장 검찰이 인지수사로 전환했습니다.
혐의는 이러했습니다. 공직선거법 58조의 2항, '투표참여 권유활동' 방법을 위반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이유였습니다. 이 기사가 '투표 참여를 독려하면서 특정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하는 경우'에 해당해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겁니다.
이 사안에 관해 지난 10월 13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국감에서 박 의원은 검찰의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기소가 언론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관련 기사 : 휴대폰 압수수색·편집기자 기소 "정부 비판 보도 옥죄려는 의도").
당시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김 기자가 편집한 해당 칼럼에는 세월호 모욕, 성소수자 혐오에 반대하는 내용 등 선거를 앞두고 제기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주된 논의들이 담겨있었다"라면서 "이것이 특정 정당에 반하는 투표를 유도한다는 이유로 기소한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판단으로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언론에 족쇄를 채우려는 시도"라고 비판했습니다.
기사 편집을 이유로 벌금 150만원 구형한 검찰
▲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자료사진) ⓒ 연합뉴스
검찰은 '<오마이뉴스> 같은 공인된 언론에서 문제가 있는 기사를 보도했다'며 벌금 150만 원을 구형했습니다. 피고인인 제가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재범의 우려가 있다"며 벌금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재판부에 요구한 겁니다. "언론의 자유를 인정한다"면서도 "그럼에도 기사 내용을 봤을 때 위법의 여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검사 측 주장이었습니다.
만약 기소 의견대로 해당 기사가 '중대한 위법'이라고 한다면 최소 징역 1년은 구형할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검찰이 벌금형을 구형한 것에 조금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해당 기사에서 '세월호 막말 정치인'을 언급한 것을 '공정성에 어긋나는 일'로 봐야 할까요. 특정 후보의 이름이 글에서 언급됐지만, 그마저도 시민단체가 앞서 기자회견으로 발표한 명단을 인용한 것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났는데도 '세월호 참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 일이 누군가에겐 불편해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침묵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용혜인씨, 세월호 추모 행진 참여와 대통령 풍자 그라피티를 그렸다는 이유로 재판에 섰던 홍승희씨의 사례를 보면 말입니다.
법원에서 <오마이뉴스> 본사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 앉아있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을 봐서라도 투표에 참여해달라'는 기사가 '벌금형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사안이라니요.
한국 역사에서 편집기자가 처벌된 사례는 매우 드뭅니다. 공교롭게도 처벌 사례는 모두 박정희 정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앞으로 한 달이 지나 2017년 1월 13일이 되면 저의 1심 선고가 나옵니다. 그 판결이 언론의 편집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또 다른 사례로 역사에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디 재판부에서 언론 자유와 시민 저널리즘의 보호를 고려하여 판결해줄 것을 기대합니다.
아래 내용은 13일 재판에서 발언한 저의 최후진술입니다.
저는 지난 4월 13일 실시된 20대 총선 당일 출고된 시민기자의 기사를 편집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유로 기소됐고, 오늘 법정에 섰습니다.
해당 기사에 특정 후보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새누리당 후보가 언급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도 나옵니다. 후보 이름은 여러 시민단체가 선거 전 기자회견으로 발표한 내용이고, 기사는 이를 인용한 것입니다. 내용은 해당 후보들이 이전에 했던 발언을 옮긴 수준입니다.
선거는 많은 후보 중 국민을 위해 일할 정치인에 투표하는 날입니다. 유권자는 후보에 관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고, 언론은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언론이 선거의 의미를 보도하고 후보의 행보를 알리는 것은 유권자를 위한 당연한 일 중 하나입니다. 후보가 과거에 했던 발언을 보도하는 것이 '후보 반대'라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봐야 할까요.
해당 기사는 세월호 '막말' 정치인, 성평등을 가로막는 정치인, 성소수자 혐오 의원 등 명단의 존재와 명단에 포함된 인물 중 지명도가 높은 사람으로 사례를 든 것뿐입니다. 글은 투표권 행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세월호 진상 규명과 소수자·약자 보호라는 정책적 문제를 외면하는 후보·정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일반적 투표 기준을 공익적 관점에서 제시합니다.
이는 투표를 앞두고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듯이 지난 총선의 선거 의제였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 및 정치적 표현의 자유 내지 언론의 자유가 헌법질서에서 지니는 중요성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보도할 가치가 있었다고 봅니다.
또한 본문 전체의 맥락을 살펴보면 해당 기사는 특정 후보나 정당의 선거 당락에 목적을 둔 것으로 보기 힘듭니다. 만약 기소 의견대로 해당 기사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면, 선거에 나온 후보가 과거에 직접 했던 발언조차 차후 언론이 유권자에게 알리기 힘들어진다는 얘기가 됩니다. 선거를 앞두고 언론이 입을 다물어야 마땅할까요? 출마한 후보가 했던 말조차 보도할 수 없다면, 후보의 과거 발언을 인용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도대체 선거 국면에서 언론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저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편집기자가 시민기자의 기사를 편집했다는 것이 기소 이유인 만큼,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제도 자체가 법정에 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사건의 판결이 곧 8만 명이 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시민기자의 글을 편집하는 편집기자의 자기 검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 작성자나 편집책임자가 아니라, 편집기자를 기소한 것도 의문입니다. 전례 없는 편집기자 기소로, <오마이뉴스> 편집부는 판결에 따라 기사를 편집할 때마다 글을 읽을 독자보다 검찰을 먼저 떠올려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재판 결과가 언론의 자유와 시민 참여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시민기자 제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재판부의 엄정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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