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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한 무기 발목지뢰, 장난감 같건만...

[논픽션 DMZ ⑩] 우리들의 낙원

등록|2016.12.15 17:12 수정|2016.12.15 17:27
비무장지대의 여름은 유독 길고 뜨거웠다. 특히 7월의 그곳은 마치 태양풍에 노출된 지구처럼 맹렬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지구의 같은 위도 상에 있는 지역 중에서 기온이 가장 높을지도 모른다. 이런 열기가 몇 년 동안 계속 진행된다면 불타는 금성처럼 변할 것이다라고 우리는 태양을 향해 하소연을 했다. 그렇게 비무장지대는 검게 타들어갔고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뜨겁게 달궈진 그곳엔, 남과 북이 미친 듯이 불모지 작업을 한 철책선이 쌍줄로 황갈색 속살을 들어내 놓고 능선을 따라 굽이져 이어지고, 그 사이 곳곳에 화공작전으로 검게 그을린 흔적들이 생채기처럼 남아 있으며, 또한 서로 지형적 경계를 목적으로 산과 들과 계곡을 마구 헤집어 놓은 비무장지대는 사실 숲이 형성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생물이 올바로 산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원래 모습으로 찾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 것이다.

오전에 한바탕 사격을 한 우리는 점심을 먹은 후 진중버스를 타고 통문으로 이동했다. 아직도 화약 냄새가 코끝에 남아 있었다. 소대장은 동기인 통문 소대장과 간단한 통과의례를 마치고 우리에게로 와서 다시 한 번 장비점검을 지시하고 실탄장전을 명한다. 소총 약실로 실탄이 장전되는 11개의 소리가 허공을 때렸다.

잠시 대남방송 소리가 멈칫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통문이 열리고 항상 그렇듯 우리는 비무장지대로 들어갔다. 순간 왠지 방탄조끼와 수류탄 무게가 어깨를 당기고 있는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아마도 이놈의 더위 때문이리라. 벌써 철모 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늘 수색작전은 MDL(군사분계선)을 돌아오는 일병 개나리코스다. 한낮 뙤약볕에 후끈 달아올라 있는 황갈색 보급로로 들어서는 순간 숨이 헉하고 막혔다. 벌써 길고 긴 여정이 머리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이 통문으로 다시 나오리라고 우리는 믿었다.

우리는 GP쪽으로 난 보급로를 따라가다가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박아놓은 수색로 표시 각목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첨병인 송 상병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방향을 정확하게 잡고 앞서가고 있었다. 다른 데서는 간혹 북한 침투조가 와서 이런 표식을 철거를 해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애 좀 먹으라고 장난을 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그로 인해 길을 잃어버려 고생하지는 않는다.

갈 지 자로 급경사면을 내려가서 계곡 상류를 건너 10시 방향으로 산허리 끼고 돌 때 우리는 멈추었다. 산에서 쓸려 내려온 토사가 수색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에 내린 폭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발목지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저 토사 밑에서 그놈이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토사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 첨병 송 상병은 소대장과 눈을 마주치고는 즉시 야수의 몸짓으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앞장 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5~6m 간격을 두고 그의 발자국을 밟으며 뒤따랐다. 아직도 물기를 머금은 흙은 우리의 발자국을 선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누가 나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무기를 고르라고 묻는다면 나는 즉시 발목지뢰라고 대답할 것이다. 뇌관 정도만 금속일 뿐 거의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 놈은 성인 손바닥에 올려놓고 힘껏 쥐면 금방 부서질 것처럼 느껴지고, 무슨 플라스틱 장난감 같기도 하고, 좀 과장하면 앙증맞은 얘들 도시락 반찬통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 악마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리건의 몸속에 숨은 악령처럼 그놈은 연약한 플라스틱 통 속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언젠가 잡아먹을 우리들의 발목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1953년 한국전쟁 휴전 후 미군에 의해 항공기로 무차별적으로 살포된 M14 발목지뢰는 그 후에도 국군에 의해 대전차지뢰와 대인지뢰의 호위병처럼 그 주위에 매설되어 왔다. 지뢰 제거작업 시에도 그놈은 두더지처럼 종적을 감추어 찾을 수가 없으며 그리고 또다시 매립하는 과장을 수없이 거쳐 왔기 때문에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지뢰 지도 상에도 존재하지 않는 발목지뢰의 수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덩치가 큰 두 놈과는 달리 훨씬 가벼운 발목지뢰는 지형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두더지처럼 땅속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비가 좀 오면 물줄기를 따라 이동하다 어딘가에 정착하기도 한다. 그러다 햇살 좋은 봄날 어떤 멍청한 놈을 만나면 가차 없이 자신의 몸을 터트리고 그 놈의 발모가지를 뭉게 버리고 만다.

이곳에는 생각보다 더덕이 많다. 사람에 의해 망가지고 피폐해지는데도 더덕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우리를 유혹한다. 그 더덕의 향기는 농염한 여인의 향기처럼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간혹 그 더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지뢰사고가 나기도 하고, 때론 더덕귀신에 홀려 길을 잃고 구천길을 해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지뢰를 밟는 것은 운명이며, 세속적인 표현으론 팔자인지 모른다. 팔자가 좋은 놈은 지뢰밭을 지나가도 비켜가고, 팔자가 센 놈은 수색로에서도 그놈의 습격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지뢰는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잠시 후 우리는 올 봄에 산불이 났던 지역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검게 타 죽은 나무들은 아직도 매케한 냄새를 풍기며 그 당시 처참했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라니 노루 정도 되는 크기의 동물들이 간혹 지뢰를 밟는 경우에 건조한 주위 환경과 겹치면 산불이 나고는 하는데 올 봄에도 그런 추측에 의한 산불이 났던 것이다. 하여튼 어떤 원인으로 산불이 나든 진화는 불가능하다. 그저 자연 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계곡 하류에 있는 화전민 터에 도착했다. 우리의 휴식처였다.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더위를 식혔다. 산기슭 능선 사이에 숨어 들어가 있는 그곳은 항상 그늘이 졌고 더구나 꽤 굵은 상수리나무 몇 그루가 시원한 그들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누가 살았을까. 어느 모진 인생들이 세상을 등지고 이곳 깊은 산골까지 들어와 화전을 하며 생존을 했을까. 그들의 손에 들려와 불규칙하게 쌓아 놓은 석축이 검푸른 이끼를 머금고 있고, 그 위로 몇 집이 모여 살았음직한 집터엔 잡풀이 우거져 있었다. 

그들은 누구였을까. 가족은 형성하고 있었을까. 애들은 몇 명이었을까. 전쟁의 포화가 그들의 삶을 망가트리지 않았을까. 그들은 군인들의 총에 죽지나 않았을까. 그들의 척박한 삶의 냄새가 코끝을 타고 들어왔다.

비무장지대는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었다. 그리고 휴전 후, 남과 북은 지옥과 같은 그 혼돈의 땅에 수십 년 동안 치유할 수 없는 상흔을 남겨왔고, 이젠 사람이 살 수 없는 동토의 땅이 되었다.

이곳에 사람이 살 수 있을 날이 올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매일 부대끼고 있는 우리가 볼 때 사실 그런 날이 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철책이 걷히고, 수많은 지뢰들이 제거되고, 망가진 산과 숲이 온전하게 치유될 수 있는 그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막연한 그런 상상은 그저 허공에 떠도는 티끌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 뿐이다. 공상처럼.

가파른 고개를 올라 탁 트인 황갈색 능선 안부를 따라 조금만 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군사분계선이 나온다. 뜨거운 태양의 복사열이 후끈 달아올라 숨을 막고 있었다. 한낮의 사막처럼, 이글거리는 저 태양으로부터 어느 한 점 숨을 곳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군 초병으로부터도 피할 곳이 없었다.

드디어 우리는 군사분계선 앞에 섰다. 땅에 박혀 있는 백색 삼각형이 우리의 진행을 거부하고 있었다. 더 이상 갈 수 없다. 광기를 품은 태양은 우리를 미친 듯이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 팻말 넘어 봉우리에 있는 북한군 초소에서 초병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100미터? 200미터? 모르겠다. 두 놈? 아니 세 명인가... 눈부신 태양과 흘러내리는 땀방울 때문에 그 형체들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국방군 동무들 넘어오라우, 넘어 오라우!"

그들은 깔대기로 이렇게 소리치며 넘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초소 안에서 우리를 겨냥하고 있는 총구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말없이 그들과 잠시 대치하고 있었다. 물론 이 앙증맞은 팻말에서 한 발짝 건너가면 그들은 우리에게 사격을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사격을 할 것이다. 아니 설마 사격을 하겠는가?

사실, 사격을 하든 안하든 그것은 그들 마음이다. 방아쇠를 붙잡고 있는 검지 손가락이 살짝 경련이 일고 있었다. 그 쇠의 촉각이 심장에서 멈추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이 등짝에서 솟구친 땀과 합류하여 몸을 타고 흘러 군화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이 시간이 지나 해가 뉘엿할 때 우리는 땀에 절어 하얗게 얼룩진 군화를 보고 항상 그렇듯 허탈하게 씩하고 웃을 것이다. 초병은 계속 우리를 놀려대고 있다.  

"국방부 동무들 날래 넘어 오라우!"

그 때 뒤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 씨팔새끼들 좃나게 떠드네!"

싸움닭 정 상병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곧바로 소대장이 "조용히 해 새끼야!"라고 내뱉었다. 야수와 같은 본능이 욱하고 치밀어 오른 것 같았다. 아마도 이 폭염 때문이리라. 저 태양이 그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는 곧 군사분계선을 뒤로 하고 왼쪽 경사면을 타고 내려갔다.

군사분계선은 지형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지도상에 표시된 군사분계선은 실제 지형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팻말이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산악지역은 지형 특성상 실제 팻말이 없는 곳이 많고, 따라서 처음 가는 지역이나 길을 잠시 잃어버릴 경우에는 모호해진 군사분계선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있는 위치가 남한인지 북한인지 확인하기 애매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독도법에 너무 의지하면 더욱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북한 정찰병과 조우하는 경우 총격전이 일어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GP에 도착했는데 남쪽이 아니라 북한 GP였다는,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무언가에 홀리면 자신의 의지력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을 그 전설이나 현재의 우리는 서로 공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산 능선을 내려서면 넓은 개활지와 만난다. 비가 많이 오면 습지로 변하고 가뭄에도 항상 습기를 머금고 있는 그곳엔 무성한 갈대숲이 형성돼 있었다. 그 갈대숲 너머에는 통문으로 향하는 봉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긴 한숨을 내쉬고, 침잠해 있는 그 갈대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갈대는 우리들 머리까지 커 있었다.

이 지역은 오늘 수색 중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지역 특성상 시야확보도 어렵고, 우리 GP에서 관측 사각지대이고, 군사분계선과 가까워 북한 정찰조와의 조우 확률이 높고, 곳곳에 우리가 매설한 지뢰밭이 있고, 또한 북한군이 설치한 부비트랩도 발견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색로가 수시로 변하여 물에 떠내려 온 발목지뢰가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비릿한 물 냄새와 짙은 풀냄새 그리고 뜨거운 열기가 뒤섞여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냄새는 더욱 강렬하게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그 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울렁거림 때문에 냄새가 지독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갈증이 일었다. 입이 바삭 타들어 갔다.

순간 수박이 뇌리를 스쳤다. 그 수박 맛이 머리에서 맴돌다 곧 사라진다. 막내 김 일병이 기어코 토악질을 해댄 것이다. 녀석은 산만한 허우대를 땅에다 쭈그려트리고 연신 머리를 쪼아대며 한바탕 오물을 쏟아냈다.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는 녀석이 진정하기를 말없이 기다렸다. 곧 좋아질 것이다.

얼마쯤 왔을까. 거리 감각이 없어졌다. 방향은 첨병이 알아서 잘 잡아주어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왔는지 그 거리감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거리였다. 시간은 가지만 거리는 그 만큼 좁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란 생각은 단지 희망사항 일뿐이다.

그러니까 이 숨 막히는 갈대숲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을 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득 오늘 통문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 공포감은 엑스타시처럼 절정에 올라 놀랍게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순간, 앞서가던 송 상병이 몸을 낮추며 주먹을 쥐어 올렸다. 우리도 즉시 몸을 낮추며 사주경계 대형을 유지했다. 앞에 무언가 있는 모양이다. 바로 발목지뢰였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를 회색의 플라스틱 통은 우리가 가야할 수색로 위에 반쯤 몸을 기울이고, 모른척하고 생뚱맞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주위에 또 다른 지뢰가 있는지 탐색했다. 그리고 잠시 후, 뒤에 있던 문 상병이 첨병 앞으로 가서 플라스틱 통을 천천히 들어 올려 뚜껑에 표시된 화살표를 safe 방향으로 돌렸다. 하지만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였다.

우리는 그에게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는 돌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 놈을 손바닥에 엎어 놓고 뇌관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연식이 오래된 녀석은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그런 녀석을 살살 달래며 때론 주문을 외듯 무언가 중얼거리면서 능숙하게 그렇게 드디어 뇌관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문 상병의 철모 안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개활지를 건너 온 우리는 산기슭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긴장을 풀었다. 한 모금 밖에 안남은 수통의 물을 우리는 입 속으로 탁탁 털어 넣었다. 마신 물보다 흘린 땀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 부족함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알약 같은 나트륨을 가지고 다닌다.

탈진을 조금이나마 막기 위함이지만 사실 효능은 미약하다. 한번 심하게 탈진이 오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머리도 빙빙 돌아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 속도 울렁거리고 입이 타들어 간다.

그런 낙오병을 데리고 어두워지기 전에 통문에 도달하려면 대원들이 번갈아 가면서 거의 짊어지고 가야 한다. 그리고 다음날 녀석에게 기다리는 것은 별도의 체력훈련이다.

이곳에서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순간, 한 시간 후 막사로 가는 진중버스 안에서 피게 될, 길게 빨려 들어간 그 진한 담배 한 모금이 입 안에서 감돌았다. 우리는 몸을 추스르고 능선 안부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저 봉우리에 올라 능선 길을 따라 가면 GP 보급로가 나온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부으며 된비알을 치고 올랐다. 이제 그 많던 땀도 나지 않는다. 열 한 개의 거친 숨소리만이 뜨거운 허공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늦은 오후, 서쪽으로 기우는 태양은 맹렬했던 정오의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붉은색을 띠기 시작했다. 된비알을 올라 봉우리에 도착한 우리는 턱까지 차 오른 숨을 진정시키며 그 태양을 보고 있었다. 시야가 탁 트인 비무장지대는 서서히 그늘이 져 가고 있었다.

이제 저녁이 되고 어두워지면 매복조인 박쥐들이 다시 이 낙원에 들어와 저기 어디에선가 몸을 묻고 밤새도록 어둠과 부대낄 것이다. 그리고 날이 새고 정오가 지나면 수색조인 독수리들이 오늘처럼 폭염과 지뢰와 함께 춤을 추며 이곳 낙원에서 축제를 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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