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장 사라지고, 대통령 대사 줄고... <판도라>를 둘러싼 의혹들
[판도라를 열다⑤] 영화 <판도라> 200만 돌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판도라' 한국 최초 원전 소재 재난 블록버스터!영화 <판도라>의 주역들. 사진은 지난 11월 29일 진행된 언론 시사 당시 배우들의 모습. ⓒ 이정민
지진으로 인한 원전 피해를 소재로 한 영화 <판도라>가 14일부로 누적 관객 200만을 돌파했다. 지난 7일 개봉 후 딱 일주일만의 성과다. 투자 난항, 베일에 싸인 등장인물, 그리고 촬영 종료 후 1년여의 기다림까지. 그간 숨을 죽이고 죽였던 영화가 관객들의 호응을 제대로 받는 모양새다.
각종 추측과 흉흉한 소문의 연속이었다. 국가 기반 시설로 특히 전 세계적으로 그 위험성이 널리 공유되며 감소세에 들어간 핵발전소(원자력발전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영화인만큼, 혹여나 작업이 더디거나 밀리면 정부와 관계자들의 압력 의혹이 일곤 했다. 모태펀드 투자 철회, 한국수력원자력과 부산시의 비협조와 같은 사실들이 일부 드러났고, 다소 사실관계가 모호한 소문도 있다. <오마이스타>는 개봉 이후 <판도라>의 제작 PD, 스태프 등 복수의 관계자를 만나 영화에 얽힌 진짜 뒷이야기를 수집했다.
[하나] 대통령 압박하는 이경영의 역할은 총리가 아니었다
우선 캐릭터의 변천사다. 영화에서 주요 안티테제로 등장하는 청와대의 총리, 배우 이경영이 맡아 그 느낌이 더욱 살아난 이 캐릭터는 초고에선 비서실장으로 설정돼 있었다. 실제로 개봉 이후 대통령의 정보선을 끊고 사사건건 대립하는 총리를 두고 국내 정치 구조상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본래 총리가 아닌 비서실장이었다고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판도라>의 한 관계자 A는 "캐릭터가 촬영 전에 바뀐 게 맞다"며 "투자사 쪽에서 양해를 구했다. 정확한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 비서실장 역을 다른 캐릭터로 바꿔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초고가 완성됐을 때는 2014년 10월경. 당시 청와대의 비서실장은 다름 아닌 김기춘이었다. '왕실장'으로 불리며 현 청문회 정국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권력의 실세다. 어떤 압력이 구체적으로 있었는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적어도 '그분들'은 영화에서 자신의 모습이 오르내리는 걸 싫어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 <판도라>에서 대통령 역의 김명민 분량이 상당 부분 편집됐다. ⓒ NEW
또 하나 김명민이 맡은 대통령의 분량이 편집과정에서 상당히 줄었다. 삭제된 대사 중엔 현 정권을 상기시킬만한 강한 대사들이 몇 개 있었다. 예를 들면 총리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과정에서 '도대체 이 나라는 누가 이끌고 있는 겁니까?'라고 한탄하는 대통령의 장면이 있었다. 총리가 대통령이 없는 자리에서 수석들에게 "대통령은 지금 판단능력을 상실한 상태다"라고 말하는 부분, 원전 하청업체 직원 재혁(김남길 분)이 시설을 수리하기 위해 들어가기 직전 자신들을 방문한 대통령을 향해 '(국민을 사지로 모는) 이게 나랍니까?'라고 항변하는 부분도 삭제됐다.
관계자 A는 "다만 편집은 전적으로 압력이 아닌 박정우 감독의 의지였다"고 설명했다. 영화 흐름 상 콘트롤타워의 부재를 묘사하는 게 주였는데 해당 장면은 너무 현 시국을 담는 말 같아서 관객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감독이 했다는 것이다.
[둘] 한수원은 <판도라>의 정보를 세세하게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영화 기획 이후 시나리오가 나온 직후부터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판도라>에 접촉을 시도했다. 실제로 박정우 감독 이하 몇몇 스태프가 한수원 관계자와 수차례 만나 정보를 교환했고, 실무 협조를 위해 이야기가 오갔으나 끝끝내 한수원은 여러 조건을 달며 일반인에 공개가 허가된 부분도 촬영을 불허했다. 제작진은 원전 시설이 크게 보이는 부산 기장 지역을 찾아 주민들의 긍정적인 답을 끌어내 촬영을 준비했지만 돌연 주민들이 촬영을 반대해 결국 강원도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관계자 B는 "마을 주민들이 촬영 찬성과 반대로 나뉘다가 한수원 측과 접촉한 이후 반대하시는 분들의 목소리가 커져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부산시 역시 소극적이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서병수 시장이 "이 영화를 왜 도와줘야 하냐"고 말했을 정도로 모든 관계 당국이 부정적이었다. 이에 제작진은 강원도 고성의 한 마을을 차선으로 택했고, 배경으로 보이는 원전 시설은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해야 했다.
▲ 영화에 등장하는 원전 시설은 대부분 세트장이다. ⓒ NEW
원전 내부 촬영 역시 한수원의 비협조로 모두 강원도 지역에 세트를 따로 지어야 했다. 사실 이 부분도 손쉽게 갈 방법이 있었다. 박정우 감독은 필리핀 바탄에 지어진 원전이 국내 노후 원전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는 걸 알고 현지로 날아가 협조를 얻어냈다. 바탄 원전은 완공 이후 무슨 이유에선지 가동이 안 돼 상당 기간 방치됐고, 현재는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필리핀 영상위원회 등은 <판도라> 측의 협조 부탁에 흔쾌히 응했으나 단서를 하나 달았다. 그게 바로 "한수원의 허락이 있으면 도와주겠다"였다.
연계 사업 수주 등 여러 협력으로 필리핀 원전 관계자는 한수원과 매우 긴밀하다. 관계자 B는 "마치 아버지와 아들 혹은 형제 관계인 것처럼 한수원과 돈독하더라"며 "한수원 쪽에 말을 해도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아예 요청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탄 원전 촬영이 불발되며 새로 춘천에 세트를 짓는 과정에서 제작비가 꽤 올라갔고, 후반 작업이 길어지는 하나의 원인이 됐다.
[셋]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받은 배우는 누구?
통상 상업영화 기획에 있어서 탈고된 시나리오는 주연 배우 후보들에게 가장 먼저 간다. 주연이 정해져야 투자도 한결 수월하고, 이어지는 다른 캐스팅에서도 더욱 쉽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 <판도라>는 어땠을까.
예상외로 김남길이 아닌 정진영이 시나리오를 가장 먼저 받았다. 관계자 A는 "이야기에서 박평식 소장이 갖는 무게감이 컸고,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이었다"며 "정진영 선배를 언급했을 때 만장일치로 모두가 찬성했다"고 말했다. 정진영도 평소에 탈핵, 반핵에 공감하며 활동해왔던 터. 정진영은 <오마이스타>에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 그다음 날 '너무 좋다. 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 영화 <판도라>에서 핵발전소 현장 소장 평섭역을 맡은 정진영. ⓒ 권우성
김남길 역시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공부를 시작했고, 흔쾌히 합류했다. 김남길과 가족으로 나오는 문정희와 김대명은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취지에 공감한 경우다. 특히 문정희는 <연가시>의 주연으로 박정우 감독과 인연이 있었는데 제작진 입장에선 "역할이 너무 작아 주기 미안할 정도"였다고. 김대명 역시 "이 시대를 살면서 원전에 대한 고민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합류 의사를 밝혔다는 후문이다.
이밖에 촬영 과정에서 몇 가지 내용 수정이 있었다. 경주 대지진 전 시나리오상 지진 진도는 5.8이었는데 사고가 나면서 6.1로 대폭 올렸다. 관계자 A는 "지진방재센터에서 여러 경우를 시뮬레이션해서 정한 수치였는데 우리나라에 그런 강진이 올 거라곤 상상 못 했다"며 "후시 녹음을 통해 더욱 현실적인 수치로 올려야 했다"고 전했다.
* 관련기사
[판도라를 열다①] 현 정부의 또다른 아킬레스건, 이 영화가 폭로한다
[판도라를 열다②] 소름끼치는 상상력... "내가 대통령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판도라를 열다③] 박근혜 대통령과 판박이... 끔찍해서 끝까지 보기 힘들다
[판도라를 열다④]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원전사고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
[인터뷰] 김남길 "정치 까는 영화? 죽는다고 생각하고 최선 다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