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법조계 사찰, 참으로 '불순하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의 폭로... 박 대통령 탄핵 사유가 또 추가됐다
▲ 청문회 출석한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4차 청문회에 출석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5일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4차 청문회는 지난 2014년 불거진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의 진원지였던 '정윤회 문건 파동'을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건 파동의 핵심증인인 정씨는 이날 청문회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최순실 청문회'에 '최순실'이 없듯 '정윤회 청문회'에 '정윤회'가 빠진 것이다.
자칫 김 빠진 사이다가 될 수 있었던 상황. 그러나 이날 청문회에는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깜짝 놀래킬 만한 비화를 여럿 들고 나와 청문회를 뜨겁게 만들었다. 특히 조 전 사장이 터트린 청와대의 '양승태 대법원장 사찰 의혹'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국기문란 행위라 사실로 판명될 경우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조 전 사장은 이날 오전 "조 사장이 구한 17개의 파일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하는게 생각나는 걸 하나라도 말해달라"는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의 질의에, 주저없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일상생활을 사찰한 문건"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대법원장에 대한 사찰은 "삼권분립의 붕괴이고 명백한 국기문란"이라고 강조했다.
조 전 사장의 폭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청와대가 지난 2014년 춘천지법원장인 최성준 지법원장(현 방송통신위원장)도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성준 지법원장의 관용차를 사적 사용, 대법관 진출을 위한 운동, 이런 것을 포함한 두 건 내용이 사찰 문건"이라고 청와대를 겨냥했다.
조 전 사장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지난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세계일보> 기자가 확보한 '대법원, 대법원장의 일과 중 등산사실 외부 유출에 곤혹', '법조계, 춘천지법원장의 대법관 진출 과잉 의욕 비난 여론'이라 적혀있는 대외비 문건을 국조특위에 제출했다. 이 문건에는 조 전 사장의 폭로대로 대법원장의 동향과 최 전 지법원장에 대한 부정적 평판 등이 기재돼 있다.
조 전 사장이 청와대의 법조계 사찰 의혹을 폭로하자 정치권과 법조계는 발칵 뒤집혔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삼권분립의 대원칙을 청와대가 정면으로 거슬렀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15일 입장문을 통해 "만일 법관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이 실제 있었다면, 헌법정신과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실로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불/순/하/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도중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청와대의 법조계 사찰은 불순한 목적과 의도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여러 정황상 법관의 약점을 빌미로 청와대가 사법부의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청와대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김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청와대의 사법부 통제 의도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난 12월 5일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공개한 비망록에는 '법원이 지나치게 강대하다. 견제수단이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이라는 2014년 9월 6일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이 적혀있는가 하면, '2014년 9월 7일 임기만료인 양창수 대법관의 후임으로 호남 출신을 배제하고, 검찰몫 획득을 위해 양승태 대법원장 등과 교류하라'는 내용도 적혀있다.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망록에는 2014년 10월 4일 김기춘 비서실장이 '통진당 해산판결-연내 선고'라고 언급한 내용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그로부터 2주일 뒤인 10월 17일 통진당 해산 심판 선고를 연내에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정황으로 미뤄 봤을 때 청와대가 통진당 해산에 개입한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청와대가 통진당 해산과 법원 인사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내용이 김 전 수석의 비망록에 적혀있는 걸 감안하면 조 전 사장이 폭로한 청와대의 법조계 사찰 의혹은 사실일 개연성이 아주 크다. 게다가 해당문건에는 국정원을 의미하는 '워터마크(보안마크)'까지 찍혀있어 청와대가 법조계 사찰을 위해 국정원까지 동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사장은 이에 대해 "작성 주체는 알 수 없으나 '대외비'로 취급되어 공직기강비서관실, 비서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안다"라고 진술했다. 이는 해당 문건을 박 대통령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실이라면 조 전 사장이 폭로한 내용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탄핵을 피할 수 없다. 주지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삼권분립을 박 대통령 스스로가 부정하고 파괴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주주의 시스템 무력화... 헌재의 탄핵 인용 이유가 늘어났다
▲ 탄핵 후 첫 주말 촛불집회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후 첫 주말 대규모 촛불집회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이 열린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가 어둠에 잠겨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각 조직은 국가권력이 어느 한 곳으로 집중되지 못하도록 상호 견제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조 전 사장의 폭로는 청와대가 이와 같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는 의미다. 청와대가 군사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초헌법적인 폭거를 자행한 것이다.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외려 이를 마구 훼손시키고 있었다. 조 전 사장은 자신이 세계일보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입수한 자료만 17개에 달한다고 증언했다. 이는 특검 수사까지 고려하면 박근혜 정부의 헌법·법률 위반 사례가 앞으로 더 추가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박 대통령은 현재 탄핵 심판 중에 있다. 국회가 헌재에 제출한 탄핵소추 사유만 해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반 의혹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끔찍하게도 박 대통령과 최순실이 움직이는 곳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헌법이, 국기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헌재가 탄핵 인용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민뉴스와 필자의 블로그 '바람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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