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조선>이 '내부자들'에서 '심판자'로 변신한 이유

[서평] #그런데최순실은? 이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정리한 정철운 기자의 <박근혜 무너지다>

등록|2016.12.20 11:21 수정|2016.12.20 11:21
지난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한국 정치 현대사에 또 하나의 슬픈 역사가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정유라 이화여대 특혜 의혹으로 시작되어 대통령 연설문 대리 작성, 이어 박근혜-최순실게이트까지 언론 보도로 드러나며 광화문 광장에 100만 촛불이 모인 이후였다.

이를 두고 '촛불시민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견 사실이지만, 국정농단 의혹을 끈질기게 취재해서 보도한 기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사건의 초반부터 탄핵 가결 직전까지, 각 언론의 보도를 정리한 책이 지난 1일 출간됐다. 바로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미디어팀장이 쓴 <박근혜 무너지다>다.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지기까지, 국정농단 보도 정리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보도를 주도하고 있는 JTBC와 TV조선의 존재감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더욱이 서로 가는 길이 달라 보였던 두 종편이 하나의 길에서 만나 같은 목소리로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최순실 국정농단 단독 보도를 쏟아내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중략)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통령이 사실상 사장을 임명하는 KBC·MBC·YTN 방송사는 지배구조의 문제가 크지만, 근본적으로는 종편이 여론을 주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상파의 오래된 '오만'과 '편견' 그리고 '무지'가 빚어낸 결과가 아닐는지. 오너 경영 체제인 종편은 한마디로 '시장' 상황에 따라 같은 대통령 임기 중에도 얼마든지 논조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미르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보도되던 지난 여름, 국정농단 사태가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질 것을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조선일보>가 청와대를 상대로 시작한 '싸움'에 <한겨레>가 참전하고, 이어 JTBC가 '태블릿PC' 건을 보도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진영'이 다르다고 평가받던 언론들이 연합 전선을 구축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의 책 <박근혜 무너지다> 표지사진 ⓒ 메디치미디어

10월 7일에는 김형민 SBS CNBC PD가 페이스북을 통해 '#그런데_최순실은' 해시태그를 쓰자는 제안을 올렸다. 임기 내 다섯 번째 30% 이하 지지율을 기록했던 박 대통령은 이후 지지율 5%까지 추락하게 된다.

'콘크리트 지지율'은 무너진 뒤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송민순 회고록 논란, 단식과 국감 파행으로 상황을 바꾸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궁지에 몰린 탓이었는지, 10월 24일 정부는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을 발표한 것이다.

불과 6개월 전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 간담회에서 개헌에 관해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고 발언한 것과 달라진 태도였다. 이를 두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덮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JTBC <뉴스룸>에서 최순실씨의 태블릿PC가 보도됐다. 대통령의 연설문 수정본을 최순실씨가 먼저 받아보았고, 수정까지 했다는 내용이었다. 개헌 카드를 단박에 뒤집을 특종이었다.

<박근혜 무너지다>는 이처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진행되는 시점마다 어떤 보도가 나왔는지 타임라인으로 정리한 책이다. JTBC와 한겨레 등이 국정농단 의혹을 추적하며 기사를 내보낼 때마다 당시 MBC와 KBS 등 공중파 방송이 어떤 뉴스를 메인으로 보도했는지 비교하기도 한다.

변화하는 언론 지형, 여전히 숙제는 남았다

▲ JTBC는 지난 10월 24일 메인 뉴스프로그램 <뉴스룸>에서 "최순실씨의 PC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이 나왔다"라고 보도했다. ⓒ <뉴스룸> 갈무리


저자는 TV조선과 <조선일보>의 변화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언론을 향한 압박이 거셌다면서 가토 <산케이신문> 지국장을 비롯해서 소송이 많아진 점을 예로 든다.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 언론 무차별 소송과 함께 이전 MB정부보다 보수언론에 특혜를 주지 않은 점을 거론한다. 언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일방통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리던 언론지형이 2016년 20대 총선을 계기로 뒤집히고 있다는 분석도 볼 수 있다. 여소야대 형국이 보수언론의 보도 방향도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얘기다.
4·13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난 뒤 <조선일보> 편집국과 TV조선 보도국은 분주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낮에 가장 의지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TV조선은 대통령이 밤에 가장 의지한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겨냥했다.

보수 정당이 선거에서 압승하지 못한 것이 보도 방향 변화의 변수라는 것인데, 저자는 <조선일보>가 '내부자들'에서 '심판자'로 변신한 이유로 이 같은 선거 결과를 꼽는다. 친박이 '몰락'하자 "<조선일보>는 우병우·최순실을 내치면서 보수 재집권을 위한 '새판 짜기'를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보수언론의 변신을 두고 단순한 '정치적 입장 변화'보다 '시장에서의 생존'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었다. JTBC가 박근혜·최순실게이트 보도를 통해 개국 이래 사상 최대치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종편의 다른 채널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JTBC 뉴스룸의 보도를 지면에 실은 것도 타 일간지의 특종 경쟁에 기름을 부었다는 해석도 있다.

MBC와 KBS의 추락이 JTBC와 TV조선의 부각으로 이어진 변화는 씁쓸하면서도 흥미롭다. SNS시대를 맞아 더 이상 1면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은 종이신문의 위상도 엿보인다. 저자인 정철운 <미디어오늘> 기자는 "자사 보도를 부끄러워하며 반성하는 기자들을 향해 냉소보다는 응원을 보내주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언론을 향해서도 "주저하는 간부들과 싸우며 야성을 되찾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미디어 전문 기자의 시선으로 본 언론지형 분석과 비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여전히 숙제가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움의 추구'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시대에서 언론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박근혜 무너지다>가 돌아본 지난 몇 개월로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남긴 의문에 답해본다. 결국에는 현장을 취재해서 흔들리지 않고 보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이는 글 <박근혜 무너지다> (글 정철운/ 메디치미디어/ 201612.1/ 1만5000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