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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땐 말야" 386에게 고합니다, "됐거든요"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 17] '386 친권자' 둔 청년이 '부심' 쩌는 기성세대에게

등록|2016.12.22 16:57 수정|2016.12.22 16:57
이 기사들은 <광화문 퇴진 캠핑촌>의 광장신문발행위원회에서 발행한 3호 신문 글입니다. 시민들의 꿈과 열망을 담아 가상으로 구성한 것이며,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11월 26일 제5차 범국민대회청소년들도 이 나라가 어떤 지경인지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이 이 나라를 바로 잡고자 거리로 나섰다. ⓒ 김민수


박근혜 탄핵안이 드디어 가결됐다. 광장으로 모인 시민들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광장으로 나섰던 우리의 모습이 스치고, 외쳤던 목소리가 귀에 울려 퍼진다.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니, 기분 좋은 발걸음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탄핵이 곧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는 없다. 이제 민주주의를 향한 시작일 뿐. 우리는 촛불집회에서도 보았듯이 혐오와 차별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을 향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장이 된 '광장'에서 계속해서 '민주주의'를 외쳐야 한다.

386세대 이후의 운동권인 친권자 곁에서 내가 주체가 되어 운동을 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항상 뒤에는 '누구의 딸'이 끈질기게 쫓아왔고, 나는 운동가가 아닌 그저 대견하고 기특한 아이였다. 아직도 여전히 '성숙한' 어른들은 '미성숙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이런 나라를 물려줘서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보며, 집회 현장에서 마주할 때마다 흐뭇한 미소로 어깨를 다독인다.

우리는 당신들의 보호를 받기 위해, 기특하고 대견한 모습으로 칭찬받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망쳐놓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당신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님을 외치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다.

민주주의를 해석하는 관점이 여러 가지일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이 함께 나라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 그리고 이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평등을 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상을 함께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이 촛불집회에 나가 보면, 과연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평등을 외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거리의 피켓과 발언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을 무시하는 혐오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대상은 분명 존재하나, 중요한 것은 그 분노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행동하는가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XXX, 여자가 망친 나라, 명품으로 도배한 최순실, 성형도 실패한 정유라' 등 여성을 향한 혐오가 가득한 분노가 과연 민주주의로 가는 길인가. 단지 현 정권을 비판한다는 대의로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언어를 뱉어내는 것이 나라를 바꾸기 위한 운동인가. 이러한 혐오 발언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우리를 아니꼬운 여성단체, 메갈X, 꼴페미라는 단어로 공격하며 '해일이 밀려올 때 조개 줍기 바쁜 어리석은 자'들로 취급하는 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인가. 

당신들의 민주주의는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가

탄핵 가결 후에도 꺼지지 않은 '촛불의 바다'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지난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박근혜의 탄핵만이 아니다. 거리로 나온 수많은 노동자, 안전하지 못한 일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혐오에 맞서는 여성들과 성소수자, 계속 투쟁하고 있는 장애인,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탈핵을 외치는 이들 등 아직도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고,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쳐야 하는 것이다.

6차에 걸친 촛불집회에 수많은 시민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기존 집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방식의 목소리와 깃발이 등장하기도 했다.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깃발을 만들기도 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다. 물론 평화시위와 착한 시민의 프레임을 격하게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집회 문화가 다양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며, 민주주의에 한 발짝 다가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여 구구절절 과거를 회상하는 그들이 있다. 백골단과 싸웠던 그때를 떠올리며 '이게 운동이냐'며 지금의 집회 참가자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당신들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여성을 비하하고,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 당신들의 민주주의란 말인가. 당신들이 살던 그 시절과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무엇보다 잘 알아야 하지 않는가. 당신들만이 바꿀 수 있는 나라였는가. 그래서 지금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더불어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그래 너네가 희망이다, 너네가 나라를 바꿔야지!'라고 외치는 모습이 부끄럽지 않은가. 그리고 왜 반말이야?

'우리 안의 박근혜'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우리 안에는 각자 다양한 정체성과 입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당신들의 민주주의는 어디를 향해 있는가?

손에 들린 술잔과 대화에 가득한 과거 회상을 내려놓고, 오롯이 권력자들에게만 향한 화살을 본인에게도 겨누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희망은 10, 20대에게 달려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만 책임져야 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세상은 함께 바꿔나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당신들은 바뀌어야 한다.

나는 '누구의 딸'로 함께 이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지 않다. 내가 운동권의 자녀이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나라의 노동자로, 여성으로, 성소수자로 민주주의를 향해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며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한 입장으로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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