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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성당의 낮과 밤 놓쳐선 안 되는 이유

[버락킴의 파리 여행기 ⑥] #낮과 밤 #시테섬 #노트르담 대성당

등록|2016.12.21 16:44 수정|2016.12.21 16:59

▲ 시테섬으로 연결된 다리 ⓒ 김종성


#낮과 밤 #여행지

'장소'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의 '시간'은 '계절'보다는 훨씬 좁은 범위다. 그러니까 '햇볕(해가 내리쬐는 뜨거운 기운)'보다는 '햇빛(해가 비추는 빛)'에 가깝다. 다시 쓰자면, 장소는 햇빛의 '유무(有無)'에 따라 달라진다. 아니, 더욱 엄밀히는 햇빛의 '양(量)'일지 모른다.

여행을 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다보면, 문득 조금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와 마주하게 된다. 만약 그곳을 찾은 시간대가 '낮'이라면, '이곳의 밤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자유 여행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마카오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Ruins of St. Paul's, 大三巴牌坊)을 만났을 때, 어두워지기 전에 홍콩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밤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밤이 오기 전까지 시간이 제법 남았던 탓에 '로버트 호퉁 도서관'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고, MGM을 비롯해 마카오의 최고 산업인 카지노까지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파리에선 '시테섬'이 그랬다. 특히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은 이곳의 밤을 꼭 만나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센 강(Seine River)의 중앙에 있는 시테섬(Île de la Cité)은 파리의 시작이자 중심이고, 더 나아가 프랑스의 중심이라 일컬어진다. 우리로 치면 한강 위의 '여의도'를 떠올리면 된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파리 1구와 4구에 속하고, 바로 옆에는 생루이섬이 위치해 있다. 시테섬에는 법원과 경찰청 등 주요 시설들이 위치해 있는데, 무엇보다 이곳에는 저 유명한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파리를 여행하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빠뜨린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뿐인가. 시테섬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생트샤펠 성당(Église Sainte Chapelle)'과 마리 앙투아네트가 갇혀 있던 파리 최초의 형무소 '콩시에르쥬리(Conciergerie)'도 있다. 생트샤펠 성당은 햇빛이 좋은 낮에 그 아름다움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오후'에 꼭 방문해야만 한다. 퐁네프 다리(Pont Neuf)를 비롯해 샤틀레, 레알 지역과 시테섬을 연결하고 있는 로맨틱한 다리들은 시테섬을 더욱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든다. '낮'에도 좋지만, '밤'이 내린 후 펼쳐지는 야경은 가히 압도적이다.

앞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언급하며 시테섬에서 낮과 밤 두 시간대에 모두 머무르고 싶어졌다고 말했지만, 사실 생트샤펠 성당이나 다리에서 바라본 야경(제법 차가운 날씨였지만,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등 그 이유는 훨씬 많다. 시테섬의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들을 모두 감상하기 위해선 오후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모두 쏟아붓는 게 좋다. 여행을 '패키지'로 뚝딱 해치워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낮의 그곳과 밤의 그곳, 모두 놓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 노트르담 대성당 ⓒ 김종성


▲ 노트르담 대성당 ⓒ 김종성


디즈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1996)>에서 종지기 콰지모도가 살았던 곳. <하늘을 걷는 남자(2005)>의 '필립'이 줄을 연결해 건넜던 곳.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서자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전체 길이 130m, 폭 48m, 천장 높이 35m, 탑 높이 69m. 고딕 양식의 건물은 단단해 보였고, 위엄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불렀던, 그래서 더욱 익숙했던 그 이름 앞에서 그 이름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렇다. 그건 신기함이었다. 유치하지만, 비로소 파리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인데,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노트르담 대성당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인 셈이다. 역사를 간단히 짚어보자면, 1163년 공사가 시작돼 1330년에야 완공이 됐다. 무려 17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엄청난 작업이었다. 1455년에는 잔 다르크(Jeanne d'Arc)의 명예 회복 재판이 거행됐고,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는 포도주 창고로 사용됐다고 한다. 1804년에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1944년에는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 예배가 열리기도 했다.

▲ 노트르담 대성당의 '최후의 심판 문' ⓒ 김종성


노트르담 대성당 정면의 문은 총 세 개다. '성모 마리아의 문', '최후의 심판 문', '성녀 안나의 문'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가운데 있는 최후의 심판 문인데,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최후의 날을 맞아 '심판'을 하는 예수의 모습과 그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표현돼 있다. 또, 악마가 예수의 저울을 지옥 쪽으로 끌고 가는 모습도 담겨 있다. 자, 이제 노트르담 대성당의 안쪽으로 들어가보자.

▲ 노트르담 대성당의 내부 ⓒ 김종성


이상했다. 물론 어색한 이상함은 아니었다. '종교'를 떠나서, 오랜 역사를 지닌 장소, 신성함을 담고 있는 공간에 가면 경험할 수 있는 묘한 편안함이었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고찰(古刹)에 가면 왠지 모를 경건함이 온몸을 감싸는 것처럼,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스러움이 지친 발걸음의 여행자를 위로하는 듯했다. 은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의 저들처럼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엄숙하지만 무겁지 않은, 짓누르지 않는 공기 속에 노곤함을 녹였다. 좀더 오래 이곳에 있고 싶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천주교에 대해, 더구나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서 정확히 무슨 의식이 펼쳐지고 있는지 설명할 순 없지만, 아마도 저녁 시간마다 치러지는 행사가 아니었을까. 주교(主敎)인지 사제인지 역시 알 수 없었지만, 영화에서 익히 봤던 '빨간 옷'을 입은 성직자가 사람들 앞에서 서서 무슨 말을 하더니 파이프 오르간(8000개의 파이프로 제작)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옆에 한 여성이 자리잡았는데, 오르간 반주에 맞춰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 속을 헤집고 건물 내벽에 부딪쳐 돌아오는 오르간 소리 위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얹히자 '천사가 노래를 부른다면 이럴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천상의 목소리는 마치 육신을 뚫고 영혼에 닿아 치유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힐링의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한참동안 그 노랫소리를 듣고 있다가(녹음까지 했다) 완전히 충전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평일은 저녁 6시 45분(토, 일은 저녁 7시 15분)까지 오픈을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둘러봐야 했다.

▲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의 모습 ⓒ 김종성


▲ 노트르담 대성당 내의 성물 박물관(보물실). 5유로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 김종성


▲ '밤'이 내린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 ⓒ 김종성


내부 구경까지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이미 어둠이 가득했다. 드디어 '밤'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볼 시간이 된 것이다. 건물 밖으로 나와 뒤로 돌아서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뒷걸음질을 하며 눈과 카메라에 저 황홀함을 가득 담았다. 어느덧 건물 전체가 한 프레임에 들어올 때까지 물러서자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시테섬 전체를 가득 채우는 장엄한 울림이었다. 한동안 계속되는 고결한 종소리의 향연, 또 한번 생각했다. 파리에 오길 잘했다. 노트르담 성당에 오길 잘했다. '밤'에 이곳에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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