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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여왕 박근혜? 진짜 정치9단은 따로 있었다

[연재] 역사의 프리즘으로 본 오늘⑧ - 양자구도의 변화

등록|2016.12.20 20:31 수정|2016.12.20 20:31
우리는 지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 앞에 고뇌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이럴 때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현재의 문제가 한층 또렷이 드러난다. 이 연재물은 동서고금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의 출구를 찾는 데 도움이 되고자 기획되었다. - 기자 말

동아일보사 옥상에서 바라본 '박근혜즉각퇴진의날'지난 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촛불시민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우리는 그 한복판에 머물러 있다. 그러한 이유로 촛불시민혁명이 어떤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단정 짓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촛불시민혁명을 일으킨 중요한 정치 지형의 변화 한 가지를 읽어낼 수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종종 정치 거목들을 가리켜 정치 9단이라고 표현한다. 과거 김대중 김영삼 등이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를 정치 9단으로 보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 정치 9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양자 구도 설정 능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시기로 돌아가 보자.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김영삼 양김씨는 일관되게 민주 대 독재 구도를 유지했다. 민주 진영 안에서 반미 등 이념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미국과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온갖 입력과 회유가 있었지만 민주 대 독재 구도를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수 국민은 민주의 편에 섰고 독재 세력은 고립되었다. 마침내 1987년 6월에 이르러 민주 진영은 승리를 거두었다.

▲ 1987년 10월 25일 고려대 운동장에서 열린 한 집회에 참석한 김대중·김영삼 ⓒ 김대중도서관


개혁 대 수구에서 좌파 대 우파 대결구도로

1990년 3당 합당은 민주 대 독재 구도를 뒤흔들어 놓았다. 민주 세력은 분열되었고 반공을 앞세운 보수 절대 우위가 유지되었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양자 구도를 유리하게 전변시키기 위한 회심을 카드를 모색했다. 그 일환으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었다.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다수의 국민들은 남북 당국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 정착이 최고의 안보 전략임을 깨달았다. 정치 지형은 다수의 평화 세력 대 소수 냉전 세력 구도로 재편되었다.

정치 지형 변화의 여파로 개혁 대 수구의 대결이라는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 구도는 노무현 정부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과의 후보 단일화를 파기했다. 보수 진영은 단일화 파기로 정몽준 지지자들의 표가 쏠리면서 이회창 후보가 낙승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나타났다. 스스로를 개혁 진영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정몽준 지지자들은 단일화 합의 파기에 관계없이 같은 진영의 후보로 여긴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던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의 패배는 보수 진영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그 와중에서 문제의 핵심은 양자 구도에 있음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정치 그룹이 있었고 그 한복판에 박근혜가 있었다. 박근혜는 새로이 좌우 양자구도를 형성하였다.

2004년 4.15총선이 끝나고 몇 달이 안 되어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첨예한 대치 국면이 형성되었다. 바로 그때 새로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박근혜는 당을 장외투쟁으로 몰고 가면서 특유의 간결한 메시지를 던졌다. "좌파 정부, 투자 부진, 민생 파탄" 사학법 개정을 추진하는 노무현 정부는 좌파 정부이고 그래서 투자 부진을 초래하는 바람에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수층은 박근혜의 메시지에 쉽게 공감을 느꼈다. 여기에 발맞추어 보수 언론 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기사를 좌우 구도에 비추어 써 내려 갔다. 좌파와 우파는 언제 어디서나 사용되는 기본 용어가 되었다. 좌우 구도 자체를 뛰어넘는 상상력은 철저하게 봉쇄했다.

▲ 2005년 12월 16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 대규모 장외집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의원들이 사학법 반대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좌우 구도로의 재편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두 개의 이슈가 제기되었다. 두 개의 이슈 중 하나는 삼성이 던진 것으로 알려진 한미FTA 추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군부가 요구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었다. 한미FTA 추진과 제주해군 기지 건설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평화 개혁세력이 완전 두 조각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적극 추진하는 입장이었는데 반해 평화 개혁 세력 상당수가 반대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무렵 한국 사회는 좌우 대결 구도로 완전 재편되었다. 그렇다면 좌우 대결 구도와 앞선 구도들 사이에는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좌우 대결 이전, 한국의 양자 구도는 독재, 냉전, 수구는 기득권 세력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으로 청산 극복의 대상이었다. 반면 민주, 평화, 개혁은 지향해야할 보편적 가치였다. 그렇기에 다수 국민은 민주, 평화, 개혁 편에 서서 독재와 냉전, 수구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했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좌우 구도에서는 청산 극복의 대상과 지지 대상이 불분명하다. 기득권 세력의 본질도 은폐된다. 좌우 구도 아래서는 기득권 세력을 극복하면서 역사의 전진을 일구어내기 힘든 것이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우파가 다수를 차지하기는 쉽다. 좌우 구도 아래서 선거를 치른다면 우파를 기반으로 한 정치 세력이 승리하기 쉬운 것이다. 실제 그런 방식으로 박근혜는 매번의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박근혜가 선거 여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새누리당의 참패, 박근혜 탄핵... 시민들이 깬 좌우구도

좌우 구도로의 전환 과정에서 진보개혁 세력은 시종 무능한 태도를 보였다. 좌우 구도로의 전환 자체도 제때에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한 전환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지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하더라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해법을 찾지 못했다. 해결사로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촛불시민혁명의 주역인 시민들이었다. 이 지점에서 4.13총선은 일종의 예고편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진영은 역사전쟁의 불을 지피는 등 좌우 구도를 재현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좌우 구도는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총선은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촛불시민혁명은 보수의 붕괴와 함께 일어났다.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는 지역주의와 반공에 의존하던 낡은 보수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보수 진영은 멘붕 상태에 빠졌다. 분노한 보수층 상당수가 촛불시민혁명에 합류했다. 촛불시민혁명에 참가한 시민들은 보수 진보를 떠나 교감을 나누며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를 갈라놓았던 좌우 구도는 먼지처럼 지워져 버렸다.

과연 좌우 구도를 대체할 새로운 구도는 무엇일까. 아직 단정하기 이르지만 상생 대 공멸, 통합 대 분열의 구도가 아닐까?

요즘 여기저기서 정치 9단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올망졸망한 정치인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하지만 촛불시민혁명은 우리 사회에 정치 9단이 엄연히 존재함을 입증했다. 박근혜가 국회로 공을 떠넘기는 꼼수를 부리자 일부 정치인들이 판단 착오를 일으키며 동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더욱 커진 촛불로 박근혜의 꼼수를 가볍게 무력화시켰다. 아울러 박근혜가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했던 좌우 구도마저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이 시대 진정한 정치 9단은 바로 '시민'이었다.

'박근혜 탄핵' 환호하는 시민들지난 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가결되자, 국회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 권우성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박세길 새사연 이사가 쓴 글입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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