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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촛불을 들었다면 아시겠지요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고

등록|2016.12.21 18:22 수정|2016.12.22 10:16
2014년 4월 16일 지구에서 304명 소중한 생명의 촛불이 꺼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얼마든지 생명의 촛불을 꺼트리지 않을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이틀이 지난 2014년 4월 18일부터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대한문 앞에 나와 리본을 만들고 촛불을 들었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거리에서 촛불을 밝힌 것이 바로 '세월호 진상규명과 온전한 인양을 위한 촛불 밝히기'이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들었던 촛불. 어느 새 그 촛불은 그저 가족의 품으로 시신이라도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홉 명은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의 참사는 2017년 1월 9일이면 사고 1000일을 맞는다.

힘 없는 민중은 어둠과 불의와 절망의 벽에 부딪칠 때 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다. 하나의 촛불은 한없이 약해 보이지만 의외로 촛불은 힘이 세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생애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꿔내기도 한다. 촛불의 힘이 센 이유는 촛불이 지닌 여러 가지 상징성과 역할 때문이다.

촛불은 자기 자신을 태워 세상의 어둠을 밝힌다. 촛불을 켜드는 순간 어둠은 설 자리를 잃는다. 어둠 속에 묻혀있던 사물이 제 모습을 찾고 어두움에 가려져 있던 진실이 드러난다. 그러기에 촛불을 켜는 행위는 인간의 삶과 성찰, 의지를 닮았다.

절망과 어둠의 나락에서 의지와 희망을 불태우며 다시 일어서는 행위는 험한 인생 항로에서 꺼지지 않는 생명의 의지를 담아 촛불을 밝히는 행위에 다름이 아니다.

당신이 어둠 속에 있다면
내 촛불을 가져가 당신 초에 불을 밝혀라
그러면 당신도 빛을 얻게 되고
내 촛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 헬렌 켈러

▲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전하는 잠언집 ⓒ 마음의 숲

빛을 볼 수 없던 헬렌 켈러는 왜 자신의 초를 가져다 어둠 속에 있는 상대방에게 촛불을 밝히라고 했을까. 촛불은 자신을 태워 빛을 밝히니 촛불 자체가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초에 불을 밝히는 순간 초는 비로소 초 본연의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이해인, 이문재, 함성호 외/마음의 숲>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전하는 잠언집'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꺼지지 않는 희망을 노래한다.

1장 나의 마음을 밝히다, 2장 당신의 희망을 밝히다, 3장 우리의 용기를 밝히다, 4장 시대의 어둠을 밝히다, 5장 세상의 빛을 밝히다, 총 다섯 개 장으로 엮었다.

이 촛불 찬가는 삶의 굽이굽이에서 부딪치는 절망과 아픔을 치유할 위로와 희망과 빛의 말들을 묶어냈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게는 자기 머리가 심지였다.
사람들은 제 머리에 불을 붙이는 대신
초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촛불을 종이컵에 담았다

(중략)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물 지난 뒤에
타오르는 불로 만나자
똑 똑 똑 똑 물 잠기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이문재의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 중

우리가 밝혀드는 촛불이 차가운 팽목항에 수장되었던 이들의 진실을 명백히 밝혀내는 바로 그날이 온다면, 슬픔과 고통의 눈물이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304개의 별빛으로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눈물을 거두고 꺼지지 않는 별빛 같은 촛불을 마음에 밝혀 둘 것이다. 잊지 않겠노라고 잊지 않았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세월호 촛불을 밝혀 들고 광화문 광장에 서는 행위에는 나의 마음을 밝히고, 당신의 희망을 밝히고, 우리의 용기를, 시대의 어둠을, 세상의 빛을 밝히는 모든 행위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때문에 모든 밝음을 되찾는 길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세월호 진실 규명'이라는 한 길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언제 촛불을 밝혀 드는가. 기쁘고 행복할 때는 여럿이 촛불을 밝힐 것이다. 외롭고 슬프고 절망적일 때는 홀로 고요히 촛불을 밝혀 들 것이다. 그 촛불은 물리적인 것일 수도 양심의 촛불처럼 내면적이며 가치 지향적인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의 촛불이든 촛불은 변화와 생명이며 밝음이고 힘이 세다는 사실이다.

어지럽고 내외적으로 춥고 스산한 연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광장에 나와 함께 촛불을 밝힐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이 한 권의 책을 펼쳐들고 고요히 '촛불의 노래'를 듣는 것은 어떤가. 잠언집의 미덕은 어느 곳을 펼쳐 읽어도 울림이 크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촛불의 노래를 들어라/ 이해인. 이문재. 함성호 외/ 마음의 숲/ 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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