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비박신당과 국민의당의 '동거'는 가능할까?

[해설] '탈당파 34명'의 미래 뒤흔들 세 가지 키워드

등록|2016.12.21 21:03 수정|2016.12.22 08:39

어깨동무한 김무성-유승민새누리당 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박계 긴급회동에서 탈당을 선언한 뒤 어깨동무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태 유승민 김무성 황영철 권성동 의원. ⓒ 남소연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거치며 위태위태해보였던 새누리당이 끝내 쪼개졌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에 뿌리를 둔 새누리당 계열의 보수정당에서 '분당'은 초유의 일이다. 과거에도 여당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패한 의원들의 집단 탈당은 있었지만, 이를 '분당'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1995년 김영삼의 상도동계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김종필이 집권당(민주자유당)을 탈당할 때 그를 따른 의원은 구자춘, 이긍규, 이종근, 정석모, 조부영 5명에 불과했다. 1997년 제3후보 돌풍을 일으킨 이인제를 돕기 위해 신한국당을 떠난 의원도 7명이 전부였다(김운환 김학원 박범진 서석재 원유철 이용삼 한이헌). 2000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공천학살'에 맞서는 중진들이 민주국민당을 만들 때도 현역의원은 김윤환 신상우 조순 한승수 4명뿐이었다(16대 총선에서 한승수만 당선).

한국 정치사는 보수정당을 나와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지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여당 의원 34명이 탈당 결의를 한 것은 놀랄만한 사건이다. 34명의 이탈로 국회 의석 분포에서도 1,2당이 뒤바뀌게 됐다(민주당 121석, 새누리당 93석, 국민의당 38석, 비박신당 34석, 정의당 6석).

새누리당 내부에는 향후 정국 추이에 따라 추가 탈당을 택할 수 있는 의원이 최대 40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우나 고우나 박근혜 대통령과 영욕을 함께 하려는 '골수 친박' 50여 명을 빼고 말을 갈아탈 수 있는 의원들의 폭이 이만큼 넓다. 탈당계를 내면 의원직을 잃게 되는 비례대표 7,8명도 새누리당이 출당 조치를 내려주면 비박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비박신당은 일단 기세 좋게 출발했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을까? 여기, 비박신당의 미래를 가늠할 '3가지 변수'가 있다.

▲ '반기문 모셔오기'에 성공할까?

비박신당의 최대 경쟁력은 풍부한 대선주자군이다. 탈당 의원 34명 중 수도권 지역구 의원이 17명에 이르는 것은 "당장의 대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2020년 총선도 기약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

박근혜라는 짐을 지고 승산 없는 캠페인을 치를 수 없다고 판단한 여당의 대선주자들은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모두 합쳐 10%'라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남경필 경기지사와 유승민 의원 등 지명도 있는 선출직 공직자들이 비박신당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다.

새누리당과 비박신당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최대변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 총장은 20일 미국 뉴욕특파원들과의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 정치라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귀국 뒤 현실정치 참여를 선언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을 인용 결정하면 내년 상반기에 대선 보궐선거가 치러질 수 있다는 점이 반 총장의 행보를 촉진한 측면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반 총장이 귀국하면 새누리당에 터를 잡을 것이라는 게 유력한 전망이었다.

뉴욕 교민들과의 다과회 참석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총영사관이 주최한 이임 기념 다과회에 참석해 인사말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누리당이 '보수의 본산'이라는 입지를 잃어버리면서 반 총장은 대선주자가 즐비한 더불어민주당이나 진보 성향의 정의당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당을 택해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안철수를 빼고는 지명도 있는 대선주자가 없는 국민의당에서 "반기문 측근이 '국민의당에 굉장한 매력과 흥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박지원 원내대표)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반기문 마케팅'에 기댄 측면이 있다.

새누리당 대선주자 중 당 잔류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사람은 대구 지역구의 김문수 전 지사 뿐이다. 20% 안팎의 여론 지지를 받는 반 총장이 비박신당에 합류할 경우 '불임정당 = 새누리당' 이미지가 굳어지며 비박신당이 보수정당의 적통으로 부상할 공산이 높아진다.

▲ 비박신당과 국민의당의 동거는 가능할까?

새누리당 비박과 국민의당이 손을 잡는 시나리오는 여의도 정가에서 가장 솔깃하면서도 편하게 얘기할 수 없는 소재다.

국민의당은 창당 2개월 만에 '교섭단체 구성'이라는 성과를 올렸지만,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양당구도에서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한 탄핵 정국에서도 국민의당 지지율은 12%(한국갤럽 12월 셋째주 정례조사)에 머물러 반사이익을 거의 챙기지 못했다. 비박신당도 탈당이라는 비상시국이 정리된 후에는 야당, 특히 민주당의 집권을 저지할 정도로 몸집을 키워야하다는 현실적 과제에 봉착하게 된다.

가장 손쉬운 복안은 양측이 대선 국면에서 힘을 합치는 것이다. 합당시 새누리당에 버금가는 3당으로 부상할 수 있고, 대선후보 경선도 훨씬 역동적으로 치를 수 있다. 영호남 정치세력의 결합으로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감정을 완화할 모멘트를 만들 수 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16일 <헤럴드경제> 인터뷰에서 "현재의 국면과 현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국민의당 자체 역량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연대가 필요하다. 과감하게 제3지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박신당과의 연대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일평생 상대방을 지지한 적이 없었던 각자의 지지층을 단기간에 달랠 수 있느냐다. 화약고는 양당의 대북정책이다. 사드 배치나 대북 지원 등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물과 기름의 관계'였기 때문에 단기간에 갈등을 풀 수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국민의당의 한 당직자는 "지금의 3당, 4당 체제로는 한국정치의 패권 청산이 어려우니 아예 판을 바꾸라는 (정계개편) 요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면서도 "김대중이 만든 핵을 이고 살 수 없다고 떠들던 분들과 합친다고 할 때 호남 유권자들 반응은 너무 명확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같은 당 이상돈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그나마 '알짜들'만 골라서 나왔다"고 탈당 사태를 평가하면서도 "지금으로서는 양측의 합당을 이끌 동력이 어디에도 없다. 안철수 전 대표에게도 없다고 본다. 비박들도 내년 대선보다는 차차기 대선을 위해 힘을 키우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정치권에서는 평소 호형호제할 정도로 친분을 드러내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비박 김무성 전 대표가 양측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 개헌으로 '대동단결'은 가능한가?

개헌은 대통령 임기말 국회의 '고정 레퍼터리'였다. 올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제왕적 대통령제의 허점'을 드러낸 사례로 부각시키며 개헌의 동력을 만들려는 흐름들이 있다.

지금의 대선주자 그룹에 마음을 주지 못하는 김종인 등 민주당 비주류나 차기 대선을 기대하기 힘든 새누리당 친박, 비박신당의 김무성 전 대표, 민주당을 나온 손학규 전 대표,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 정도가 손에 꼽힌다.

이들은 "개헌은 의지의 문제"라고 역설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개헌의 딜레마를 가장 깔끔하게 정리한 사람은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다.

개헌을 하려면 국회의원 200명을 모아야 하는데, 개헌론자들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내각책임제와 대통령 4년중임제로 나뉘어져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4년 중임제 하자는 사람들의 절반은 대통령 권한분산에 관심이 없고, 내각제론자들 절반은 선거구제 개편에 관심이  없더라. 개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자기 임기 줄여가며 희생할 각오가 없으면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토론 한번 하게 되면 개헌의 민낯이 드러날 것이다..(중략)... 내각제 개헌론자들 아무리 따져도 70,80명인데 어떻게 한두 달 내에 200명을 만드냐?"(14일 기자간담회)

다만, 개헌 자체의 성패와 상관없이 개헌 논의 자체가 정계개편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공감하는 의원들은 많다.

비박신당의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은 정병국 의원은 tbs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국민의당과 합당 하거나 당을 같이 하거나 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도 "먼저 분권형 개헌에 있어서 연대를 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