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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을 친 그 남자의 사정

사카모토 신이치 신작만화 <이노센트>

등록|2016.12.22 11:50 수정|2016.12.22 12:19

▲ <이노센트> ⓒ 대원씨아이

조선시대 중죄인을 효수했던 망나니는 왕명을 받아 '합법적으로' 다른 인간의 생명을 앗으며 살았던 존재다. 과연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망나니에 관한 기록이나 정보가 풍부하지 않은 걸 보면, 이들이 평탄하고 존중받는 인생을 영위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마침 프랑스판 망나니를 소재로 한 만화가 새로 나왔다.

<이노센트>는 18세기 중후반 프랑스에서 사형집행인으로 살았던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린 일본만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샤를 앙리 상송. 프랑스 혁명기를 오롯이 살아내며 절대 군주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권력자 로베스피에르, 혁명가 당통 등 한 시대를 호령했던 거물들의 처형을 도맡았던 인물로 역사가 기록한 인물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상송은 대대로 왕명을 받들어 사형집행을 담당하고 있는 가문 이름이다. 그 대가로 상송 일족은 남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리고 있지만, 주변인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보면 재수가 없고 접촉하면 악마에 홀린다는 인식 덕분에, 열네 살 먹은 앙리는 친구가 없고 학교에 다니는 일조차 녹록하지 않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송 일가의 당주이자 프랑스 사형집행인들의 우두머리인 '무슈 드 파리'가 될 운명을 거부하는 앙리. 그러나 결국 그는 아버지가 행한 '브로드퀸'이라는 악명 높은 고문 앞에서 굴복하고 만다.

최근 출간된 단행본 1권에는 주인공 앙리가 첫 번째 처형을 집행하기까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근본적인 고뇌를 드러내는데, 이는 결국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가 과연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다. 앙리의 할머니는 그 행위를 정의라고 단언하지만, 앙리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사실 이런 질문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지금 현대사회에서도 사형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그 끝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이야기에 나타나는 사형집행인들의 삶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죄인의 목을 칠 때 단칼에 끝내야 했는데, 그러려면 1번 경추 아래 평평하고 접속이 느슨한 부분을 정확히 수직으로 노려야 했다. 그런가 하면 죄인은 뒷머리를 짧게 쳐야 했는데, 이는 머리카락이 칼날에 휘감기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그것이 불상사인 이유는 간단하다. 사형집행인이나 죄인이나 단칼에 일이 끝나지 않으면 피차 좋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은밀한 이야기는 작가인 사카모토 신이치의 세밀한 그림과 잘 어울린다. 전작 <고고한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이노센트>의 그림 역시 극히 차갑고 날카롭다. 그래서일까? 에로틱한 장면마저도 뜨거움이나 생동감이 아닌 잔혹함과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의 그림을 보는 내내 '수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피에타'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들을 연상했다면 부적절한 말이 되려나?

어쨌든 이 작품은 작가가 <왕의 목을 친 남자>(아다치 마사카쓰 지음)라는 논픽션을 재해석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크레디트를 보면 시대 고증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이노센트>는 한마디로 소화하기 만만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릴 만한 매력은 충분하다. 단, 보는 이에 따라 정서적인 파장이 강할 수도 있는 만큼 호오가 분명히 갈릴 작품이란 점을 분명히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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