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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과 배상에 대한 초4 아이들의 결론은?

하브루타 교육을 한 최영대 교사의 이야기

등록|2016.12.22 11:47 수정|2016.12.22 13:49

▲ 광양제철남초등학교 최영대 교사가 하브루타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 오문수


20일 오전 11시, 다문화교육을 하기 위해 광양제철남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5학년 1반 아이들. 수업시작 전 내 소개를 한 후 "다문화가 무엇인가?"를 묻자, "외국인이 한국인과 결혼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웃으며 "여러분들이 다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여기 왔어요"라고 말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 생각과 경험담을 얘기해주자 신기해하는 아이들. 피드백이 잘되면 교사는 신나는 법이다. 학생들이 질문에 곧잘 대답하자 여러 가지 사례를 설명하느라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고종환 교사와 식당에 들러 최영대 교무부장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교육은 한 마디로 변화'라고 이야기하자 최영대 부장이 자신이 실시했던 하브루타 수업사례를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시국얘기로 대화가 돌아갔다.

▲ 광양제철남초등학교 최영대 교무부장의 모습 ⓒ 오문수


"4학년 학생들에게 하부루타 수업을 했어요. 5명이 앉아있는 벤치에 여섯 번째 사람이 와서 벤치가 부서졌다, 이런 상항에서 누가 어떻게 벤치를 배상해야 할까요?' 하고 질문을 던졌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책임'이나 '배상'이 아닌 '배려'로 결론짓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배상은커녕 책임지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씁쓸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배려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이들한테 배워야 합니다"

하브루타교육, 파트너와 함께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방법

최영대 교사가 하브루타교육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줬다. 하브루타란 원래 토론을 함께 하는 짝이나 친구, 파트너 자체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랬던 것이 짝을 지어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방법을 일컫는 말로 확대됐다.

미국행동과학연구소는 외부 정보가 두뇌에 기억되는 비율을 학습활동별로 정리해 둔 학습 피라미드를 발표했다. 학습피라미드는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한 다음에 24시간 후에 머릿속에 남아있는 비율을 피라미드로 나타낸 것이다.

피라미드를 보면 강의 전달설명은 5%, 읽기는 10%, 시청각 교육은 20%, 시범이나 현장견학은 30%의 효율성을 갖는다. 그런데 토론은 50%, 직접 해보는 것은 75%,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90%의 효율을 갖는다. 친구와 토론하고 직접 체험하면서 소통하며 공부하는 하브루타는 90%의 효율성을 가진 공부 방법이다.

먼저 최교사가 4학년 1반 학생 23명에게 그림을 보여주면서 질문을 던지고 학생과 대화가 오갔다. 

▲ "5명이 앉아있는 벤치에 1명이 더 앉아 벤치가 부서졌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를 토론과 논쟁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하기 위해 최영대 교사가 학생들에게 제시한 그림 ⓒ 최영대


"왜 벤치가 부서졌나요?"
"여섯번 째 사람이 와서 앉는 바람에 벤치가 부서졌습니다"
"누구의 책임인가요? 이런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벤치를 배상해야 할까요?"

최교사가 학생들이 해야 할 활동상황에 대해 순서대로 정리해줬다.

▲ 각자 판단을 정리하기(기록) ▲ 판단에 대해 토의, 논쟁하기 ▲ 다함께 생각을 정리하기

활동 1단계에서는 학생들이 벤치가 부서진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어떻게 배상하면 좋을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친구의 생각을 기록했다. 활동 2단계에 접어들자 학생들은 책임소재에 대한 다양한 답변을 내놨다.

"여섯 번째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 벤치가 약하다면 모두에게 책임이 없다.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가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벤치를 배상하기 위한 각자의 생각을 밝히고 누가 얼마나 배상해야 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논쟁에서는 어른들 책임까지 묻는 당돌한 생각도 나왔다.

"여섯 번째 사람이 모두 배상한다. 모두가 똑같이 배상한다. 여섯 번째 사람이 더 많이 배상한다. 관리하는 회사가 절반 부담하고 나머지를 배상 한다"

최교사가 "친구들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가장 합리적인가를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던가, 아니면 바꿀 것인가를 결정해 최종 선택하라"고 하자 학생들은 책임소재를 추궁하는 방법을 3가지로 압축했다.

▲여섯 번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 ▲ 모두에게 똑같이 책임을 묻는다 ▲여섯 번째 사람에게 가장 많은 책임을 묻고 다른 사람에게도 적은 양의 책임을 묻는다

각자의 생각을 정리한 학생들의 공개토론 시간이다. 학생들은 반박과 변론, 주장과 재반박을 통해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 가고 있었다. 토론을 통해 나타난 학생들의 책임소재 및 배상에 대한 5가지 의견이  나왔다.

▲ 최영대교사가 학생들이 토론하고 논쟁하는 동안 결론을 도출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 오문수


▲ 여섯 번째 사람에게 책임이 있으며 그 사람이 배상한다. 이유는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 여섯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며 공정하게 나누기 6으로 배상한다. 이유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며 모두에게 같이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 의자에 앉아 있던 5사람에게 책임이 있으며 그 사람들이 배상한다. 이유는 5사람은 충분히 쉬었고 여섯 번째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 의자를 만든 회사에 책임이 있으며 회사에서 배상한다. 이유는 여섯 사람이 앉아도 될 만큼 튼튼하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의자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시청에서 책임을 진다. 이유는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과 배상이라는 논쟁만 할께 아니라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학생들이 토론 도중에 질문한 내용 중에는 "시청에서는 의자에 대한 '부서짐' 경고표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정치인 책임문제까지도 나왔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이나 생각을 발표했다.

▲ 하브루타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이 짝과 함께 토론하고 논쟁하며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 모습 ⓒ 오문수


"주변에서 일어난 일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합시다"

수업을 마친 최영대 교사가 학생들에게 들은 결론은 '책임'도 '배상'도 아닌 '배려'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깜짝 놀랐다. "아니!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그런 결론을 내려요?" 어린이들의 결론을 듣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명언이 생각났다.

"해야 할 것을 하십시오. 모든 것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동시에 특히 나의 행복을 위해서 입니다"

게임만 하고 하루 종일 TV앞에서 만화나 보는 줄 알았던 아이들은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거짓말만 하고 책임질 줄 모르는 정치판에 짜증났던 나는 학생들이 내린 '배려' 결론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흐뭇했다.
덧붙이는 글 전남교육소식지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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