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최순실 청문회'가 '맹탕' 아닌 몇 가지 이유

[게릴라칼럼] 청문회가 낳은 악인과 의인, 그리고 청문회의 존재 이유

등록|2016.12.25 11:35 수정|2016.12.25 11:36

▲ 노승일, 고영태 증인과 나란히 앉은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 손혜원 의원 페이스북


"첫째, 이 분들을 효율적으로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양지에서 당당하게 본인들이 아는 사실을 다 밝히는 거죠. 모든 사실이 까발려지고 이분들이 유명해지면 누구도 함부로 손 대기 힘들 것입니다. 둘째, 이 분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도록 국민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여러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변호사 비용을 후원하시겠다는 많은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김어준씨도 믿을만한 변호사를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적군에서 넘어온 장수에게는 예우를 갖춰 맞아줘야 합니다. 한 사람은 두려워서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잔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두려워서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잔다고 합니다. 어젯밤, 노승일씨는 모처럼 깊이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약속을 지켜야지요.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나서 주시니 얼마나 든든한지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노승일, 고영태씨도 여러분들 덕에 든든할 것입니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고영태씨와 노승일씨를 만났다던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23일 자정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앞서 손 의원은 "'의인들을 보호하라는 메시지'가 1000개도 넘게 도착했다"며 "오늘(23일) 고영태, 노승일 증인을 만났다"고 밝힌 바 있다. 손 의원의 이 페이스북 글과 사진에는 24일 오후 2시까지 2만4000여 개의 '좋아요'가 달리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와 관련해 관심이 쏟아지자 손 의원은 "어제 청문회를 마치고 당당하게 말해준 노승일씨에게 고마워서 따뜻한 점심 한 끼 사드리고 싶어 보좌관에게 연락을 부탁했습니다"라고 재차 만남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손 의원은 "(노승일씨가) 친구 고영태랑 같이 나가도 되느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분들을 만난 이유는 청문회장에서 국민들께 약속한대로 '신변 보호' 방법을 논의하고 싶어서였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손 의원이 제시한 "적군에서 넘어온 장수"에게 맞는 예우는 일단 '유명세를 이용한 신변보호'와 '믿을 만한 변호인의 법률 대리'인 셈이다.

이렇게, 5차까지 이어진 이번 국회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아래 '최순실 청문회')를 지켜 본 국민은 출석한 수많은 증인과 참고인들 중 옥석을 가리고 있었다. 다수의 '청문회 스타'도 출현했다. 주로 참고인들이었다. 반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와 같은 '모르쇠'와 거짓말로 일관하는 다수의 불성실한 증인들을 위한 이른바 '우병우 방지법'과 같은 국회 처벌 규정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최순실 청문회가 낳은 악인과 의인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왼쪽)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5차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의 답변을 듣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깨끗한 나라가 되었으면 했다."
"부정부패를 알리는 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라고 생각한다."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은 처벌 받을 일이 있었다면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지난 22일 열린 제5차 청문회의 주인공은 단연코 노승일 전 부장이었다. 참고인에서 증인으로 신분을 갈아 탄 그의 폭로는 "청와대, 박근혜라는 거대한 사람과 박근혜 옆에 있는 거머리 최순실과 삼성이랑도 싸워야 한다"는 한 마디로 정리된다. 향후 추가 폭로를 예고한 노승일 전 부장을 두고  민주당 표창원 의원 역시 "국회에서 보호하겠다"고 거들고 나섰다.

이 노승일 부장과 더불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의 아들로 알려지면서 증언 의도에 관심을 쏠렸던 고영태씨와,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에게 호통을 친 것도 모자라 "재벌은 몸통, 최순실은 파리"라는 '사이다' 발언을 남긴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 그리고 차은택씨 후임으로 문화창조융합본부장에 발탁됐다 물러난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도 이후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의 해임 관련 녹취 파일이 공개되면서 지속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일부 언론들이 '맹탕 청문회'라고 '청문회 무위론'을 주장하는 데 빌미를 준 증인들은 수두룩했다.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를 만든 주인공 최순실씨를 비롯해 검찰 출신 청와대 짝패 김기춘-우병우 증인과 뻔뻔하고 당당한 거짓말로 일관했다는 평을 받은 장시호씨와 5차 청문회의 주인공이었던 간호장교 조여옥 대위 모두 국민의 분통을 터트리게 만든 장본인들이다.

특히 지난 22일 출석한 일명 '도망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야말로 끝까지 거짓말과 안일한 대응으로 국민적 분노를 키운 장본인이다. 한 마디로, 이번 청문회는 소수의 '의인'을 남기고 수많은 '악인'의 민낯을 확인시킨 청문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5차까지 이어진 청문회가 남긴 교훈과 명암은 뚜렷해 보인다.

맹탕 청문회? 오히려 반대다

▲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제5차 청문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청문회가 그저 '맹탕 청문회'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김기춘이나 우병우, 이재용, 장시호와 같은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들의 맨얼굴과 뻔뻔한 거짓말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은 큰 수확이다.

새누리당의 뻔뻔함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청문회 진행을 공공연히 방해하다 결국 '고령향우회'에서 찍힌 사진까지 공개된 이완영 의원은 이번 청문회가 낳은 '최고의 국회의원(?)'으로 등극했다. 위증 교사 의혹을 받고 있는 이 이완영 의원에 대해 23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내정된 인명진 목사(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는 윤리위에 회부할 방침이라 밝힌 바 있다.

더욱이 이 이완영 의원의 제보 사진을 비롯해 '김기춘 동영상'과 같은 몇몇 결정적 순간은 '명탐정 주갤러(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와 같은 국민의 제보로 이뤄지기도 했다. 이 같이 의견을 개진하고 직접 의원들에게 제보까지 한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는 지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와 같이 의회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계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한 마디로, '촛불민심'이 청문회에까지 영향을 미친 케이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민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 특검의 철저하고 폭넓은 조사가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전말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정치인들과 국민 모두 수사권이 없는 국정조사 청문회의 한계도 절실히 느끼게 됐다.

물론 몇몇 비전문적인 의원들의 부진함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청문회에 참석하는 국회의원들의 전문성 강화와 청문회 관련 법과 제도의 미비점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인 점은,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국정 조사를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는 점이리라. 김성태 국조특위 위원장, 소병훈,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중로 새누리당 의원 등은 잇따라 이른바 '최순실-우병우 방지법'이라 불리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두 국회 직원에게 특별사법경찰관의 권한을 부여하고, 국조특위가 증인 개인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등 청문회와 관련해 국회의 권한과 증인 출석 의무를 강화하는 개정안 들이다. 특히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에 증인이 출석하지 않거나 자료 제출 또는 선서를 거부한 자에 대해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등 처벌 규정을 특히 강화했다.

사실, 국민의 정서는 이보다 뜨겁다. 국회 모독죄나 위증죄, 그리고 국회의 기소권 등 청문회 취지에 반하는 증인과 참고인에 대한 처벌 규정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법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맹탕 청문회', '모르쇠 청문회'는 더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 건 확실해 보인다. 

더욱이, 오는 26일로 예정된 '구치소 청문회'가 남았다. 국조특위는 서울구치소와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 대한 현장조사 청문회를 개최한다. 1997년 '한보 청문회' 이후 19년 만이다.

국민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중화시키 위해서, 향후 이뤄질 각종 청문회의 처벌 규정 강화를 위해서, 용기내서 청문회에 출석한 일부 참고인과 증인들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이번 '구치소 청문회'야말로 일말의 실효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최순실 청문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