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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뗄 수 없는 알람브라 궁전의 장식들

[다섯 부부의 인상파식 여행] 아! 이베리아 반도 ⑬

등록|2016.12.28 11:29 수정|2016.12.28 11:29

▲ 알람브라 궁전 코마레스 궁에서 바라본 알바이신 지구의 풍경 ⓒ 길동무


듣고 또 듣는다. 프란치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의 기타 연주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듣는다. '기타의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기타의 현대적인 주법을 완성한 인물'로 평가받는 타레가의 '트레몰로' 연주법이 듣는 이를 심연으로 이끈다. 들을수록 애잔한 분위기에 촉촉이 젖게 한다.  

이 연주를 들으면 알람브라 궁전을 모르는 사람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으리라. 알람브라 궁전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두 눈이 저절로 감기리라. 지그시 눈을 감고 듣다가 어느 순간 무릎을 치겠지. 그리고 외치겠지.

"아! 알람브라 궁전..."

타레가가 여행 중에 만난 알람브라 궁전, 그는 이 궁전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던 것일까?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와 알람브라 궁전을 드날리게한 명곡을 작곡했을까? 왜 사실이 아니라는데도 실연 후 아픔이 담긴 곡이라는 설이 그치지 않을까? 그라나다의 그 엄청난 유물의 존재가 딱 한 곡 음악으로 이리 어울리게 압축될 수 있다니.

길동무에게 알람브라 궁전은 어떤 추억을 남겼을까? 내게 또 그곳은 무엇일까? 알람브라 궁전을 다녀온 지 어언 두 달여,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곧 알람브라 이야기 쓰기를 시도했다. 이 이야기를 빨리 쓰고 싶었다. 그러나 뭔가로부터 가로막혔다. 그 뒤로도 몇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입장시간 5분 전을 맞추기 위해 잰걸음으로 달려간 나스르 궁전 출입구, 그러나 티켓에 기록된 시간까지는 묵묵부답 입장을 불허했던 것처럼 쓸 수 있는 시간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을까?

그리고 어젯밤 삼경, 알람브라가 꿈으로 나를 깨웠다. 퍼뜩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끌리듯 다시 타레가의 선율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속도 빠르게 알람브라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꿈속의 나는 모래사막을 천천히 걸었다. 사막은 곱디고운 모래알, 수많은 모래알이 반짝였다. 망망대해 같은 사막은 파도가 없이도 끊임없이 출렁였다. 구름이 드리울 때와 작열하는 태양에 의해 시시로 모습이 바뀌었다. 하늘빛을 따라 사막의 빛도 변했다. 사막의 셀 수 없는 잔주름은 알 수 없는 문양이고 빈틈없이 들어찬 모래알은 무한히 나열된 뜻 모를 문자였다.

▲ 코마레스 궁(Fachada de Comares) 유수프 1세때 짓기 시작해 무하마드 5세가 완성한 것으로 하얀 대리석 궁전이다. 알람브라의 핵심이다. ⓒ 길동무


모래사막은 이내 석양빛으로 덮였고 신천지가 열렸다. 어두워진 하늘엔 은색 태양이 번쩍 떠올랐고, 별들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나를 끌어올릴 듯 주저앉힐 듯 빛나던 짜릿한 밤빛, 그 빛 사이로 알람브라 궁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 알람브라 궁전은 모래사막의 위대한 현신이다. 은은히 순화한 모래 빛으로 지금 거기 있다. 모래언덕과 모래 주름의 부드러운 곡선들이 다양한 문과 기둥으로 거기 서 있다. 모래사막 표면에 가득했던 문양들이 벽과 천장에 질서 정연하게 들어차 있다. 사막의 모래 알갱이 그 많은 이야기가 언어가 되어 궁전 내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아랍어로 "붉다"라는 의미의 알람브라, 알람브라 궁전에는 석양 드리운 사막의 붉은 빛이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 자리잡고 있다. 외부에는 돌과 벽돌, 내부에는 나무와 타일의 다양한 색조가 포인트로 있다. 그러나 궁전의 내부를 강하게 장악하고 있는 빛은 아무래도 사막의 모래에서 발산되던 그 빛이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은빛, 작열하는 한낮의 태양 빛에 산화한 회색 빛, 석양에 물든 연갈색 빛이다.

▲ 코마레스 궁의 기둥과 벽, 우아한 장식으로 뒤 덮인 문들 ⓒ 길동무


▲ 나스르 궁 기둥들의 섬세하고 단아한 장식 ⓒ 길동무


▲ 코마레스 궁 기둥과 문들의 아름다운 장식 ⓒ 길동무


그 빛들은 무어인(아랍과 북아프리카 베르베르 족의 혼혈인)들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런가. 그 빛들 그들의 뛰어난 예술 감각으로 빚어져 이젠 알람브라 궁전의 빛으로 남았다. 그 빛은 흐름을 기억한 침잠한 시간의 빛이요 품격의 빛이다. 그러므로 나의 알람브라 궁전 이야기는 꿈에서 본 사막의 그윽한 빛을 알람브라 궁전에서 찾는 것으로부터 그 본론을 시작한다. 

사막의 빛들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알람브라 여러 궁전의 벽과 방에서 정취 깊고 그윽한 향기로 숨쉰다. 한편 추상적이고 한편 상징적이다. 하얀 대리석에 수없이 반복 조각된 문자들이 사막의 빛으로 물결친다. 정제된 빛, 순도가 높은 빛이다. 거기엔 간절한 기도가 아름다운 형상으로 맺혀있고 행위로 풀어낸 기도가 실천으로 새겨져 있다.

우주 자연의 순환은 맺음과 풀이의 연속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알람브라 궁전이 보여주는 사막의 빛은 들여다볼수록 맺음과 풀이의 정수가 무엇인지 깊고 편안한 색조로 은밀하게 속삭인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천재 기타 연주가 타레가를 부추겨 트레몰로 연주법을 꽃피우게 했으리라.

사자의 중정(Patio de los Leones)중앙 분수대를 12마리의 돌사자가 떠받치고 있어 사자의 정원이라 불린다. 아리야네스 중정과 함께 이슬람 정원의 백미로 평가되는 곳이다. 이슬람 건축에서는 우상 숭배를 금지하기 때문에 동물을 새긴 사자상을 놓을 수 없었지만, 이곳은 술탄과 후궁들만 있는 곳이어서 사자상이 놓이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이슬람식 정원인 사자의 중정을 둘러싼 사면은 124개의 가느다란 대리석 기둥이 떠받친 건물로 에워싸여 있다. 대리석 기둥은 종려나무를 상징 한다. ⓒ 손인식


벽을 통해 길동무 감성에 예열을 가한 사막의 빛은 천장에 이르러 다물지 못할 입을 다물라 한다. 장엄함에 숨죽이라 한다. 그 서막은 나스르 궁전의 왕이 집무를 보던 맥스와르 방 천장이다. 섬세함의 극치로 문을 열더니, 알람브라 궁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코마레스 궁전의 방 천장에 이르러 길동무를 가차 없이 그로기 상태로 몰았다.

단일 톤에 대한 변화 추구였을까? 천연색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천장도 있다. 외부의 빛을 활용한 코마레스궁 왕의 목욕탕 천장과 열 명의 왕이 묘사된 왕의 방 천장의 화려함이 그것이다. 그로 인해 사막의 우윳빛은 잠시 멈췄다. 그러나 이내 부조가 섬세하면서도 웅장한 비극의 방(아벤세라헤스의 방)에 이르러 다시 본래의 빛으로 돌아간다.

"이 천장을 스투코(바르는 형식) 천장이라 합니다. 보시다시피 팔각형의 돔 형상입니다. 벌집 모양의 종유석이 오천여 개라고 하고요, 코란에 나오는 이슬람의 천국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천장이 최고 아름다울 때는 해가 뜰 무렵이라고 합니다. 여덟 개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지는 천장의 변화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다고들 하지요."

길동무 알람브라 궁전 탐방을 위해 해설사로 특별 초대된 홍정아씨 설명이다.

▲ 코마레스 궁 중앙정원 남쪽의 아벤세라헤스의 방 천장의 환상적인 장식 ⓒ 길동무


▲ 왕비가 머물던 두 자매의 방 천장. 무수한 종유석 모양을 조성한 모카라베 기법이 돋보인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식으로 꼽힌다. ⓒ 길동무


"이 아름다운 방이 비극의 방으로 불리게 된 원인이 있어요. 당시 궁전에서 살았던 아벤세라헤스 가문이 있었는데 세도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적 쪽에서 그 가문의 한 젊은이가 왕의 후궁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문을 퍼트렸답니다. 그로 인해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젊은 남자 30여 명이 이 방에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사막의 빛 결정체는 알람브라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 '두 자매의 방'이다. 이 이름은 바닥에 깐 두 개의 대리석 판으로 인해 생겼다 한다. 이 방은 왕비가 거처하던 곳으로 모카라베 장식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모카리베란 종유석 모양이 천장을 뒤덮은 장식을 말하는데, 이 천장은 알람브라 궁전 안에서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장식으로 손꼽힌다. 비췻빛 포인트도 있다. 내 꿈에서 보았던 밤하늘 빛 축제가 또 이렇게 재현되었으리.

알람브라 궁전 내부의 천장 장식은 대부분 특별한 조각품을 붙인 것이 아니다. 자연광이나 장식끼리 상대적 빛 반사로 화려함과 우아함이 더욱 커진다. 정성과 섬세함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편하게 하는가 하는 표본이다. 이런 표현 능력을 지녔던 당대 무어인들의 건축기술과 정신에 찬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 알히베스 광장에서 바라본 파르탈 궁(Palacio del Partal). 알 람 브 라 에 서 가장 오래된 궁이지만 지금은 정자와 탑 정도만 남아 있다. ⓒ 길동무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마당에선 수도원 탑과 에메랄드빛 하늘, 그리고 사이프러스 나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날렸다. 알람브라 궁전과는 너무 이질적인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카를로스 5세 궁전을 둘러보면서는 기둥 돌에 관한 견해로 왈가왈부하기도 했다. 알히베스 광장 한쪽 나무 그늘을 찾았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 사이에도 길대장과 유니카씨 부부는 다정하고 멋진 포즈로 사진 포인트에 선다. 그리고 길동무 누군가의 카메라 속에 그 순간이 담긴다. 

"마주보지 마세요. 너무 웃지만 마시고 인상 좀 쓰세요."

그렇게 주문해도 소용이 없다. 부부는 늘 다정하고 포즈가 자연스럽다. 길동무 다섯 부부의 여행은 사진 찍기에서도 즐거움과 편리함이 함께 한다. 한 부부를 위해 나머지 여덟 명이 카메라를 들이댈 때도 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언제 누구에게 굴욕적(?)인 순간이 잡힐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여행을 최종 정리하는 일종의 해단식 날 저녁 웃음거리이자 안줏거리가 된다. 길동무 한정보씨가 여행 순간을 모은 CD를 편집하는데 그렇고 그런 사진들만 따로 모은 코너를 만들기 때문이다.

▲ 아르마스 광장의 유적지. 군인들의 거주지, 무기 창고, 대장간, 임시 감옥 등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설계도 같은 흔적만 적적하게 펼쳐져 있다. ⓒ 길동무


알람브라 궁전은 참 사진 찍을 포인트가 많았다. 맑고 깊었던 쪽빛 하늘도 길동무 사진 찍기를 도와주었다. 특히 알카사바(Alcazaba)의 상징탑은 시간이 짧더라도 반드시 올라야 하는 곳이다. 과거 적의 동태를 살피는 삼엄한 경비초소였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사방으로 시야가 탁트인 최적의 전망대다. 그라나다 시 전체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알카사바 탑에서 아르마스 광장을 굽어본다. 군인들의 거주지, 무기 창고, 대장간, 임시 감옥 등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설계도 같은 흔적만 적적하게 펼쳐져 있다. 그곳을 더듬는 여행객들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유적지 발굴단 같다. 그것은 아랍 평민들이 모여 살았다는 메디나 유적도 같은 분위기다. 알람브라 궁전 중심으로부터 메디나 유적을 지나면 일순 분위기가 바뀐다. 가지런히 다듬어 놓은 정원수 길이 또 사진 포즈를 잡게 한다. 끊긴 수로가 있는 곳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자 아! 알람브라의 오아시스다. 

▲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Generalife)로 가는 길 ⓒ 길동무


레알 수로(Acequia Real) 다로 강 댐에서 끌어온 물을 궁전으로 흘려보내는 수로 ⓒ 길동무


세상에 둘도 없는 여름 별궁 '헤네랄리페(Generalife)'다. 알람브라 궁전에는 오아시스가 꿈이 아닌 현실로 거기 있다. 그들은 사막에서 물을 찾아내듯 먼 곳으로부터 물을 끌어와 시인들에게 알람브라 궁전을 '에메랄드 속의 진주'로 찬탄하게 했다. 왕이 바뀔 때마다 궁전 안에 궁전이 추가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물 공급이 원할했기 때문이다.

"궁전으로부터 약 6km 지점에 인공호수를 축조했어요. 그리고 수로를 이용해 물을 끌어온 겁니다. 궁전이 있는 이 사비카(Sabika) 언덕이 해발 740m입니다. 물이 모일 수 있는 지형도 아니고요. 이 궁전의 너비가 205m에 전체 면적은 14만 2천m²나 되거든요. 한때는 왕족을 비롯한 상시 거주 인구가 5천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물 소비량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 헤네랄리페의 아세키아 정원 중 하나. 헤네랄리페는 20세기 초까지 개인의 소유였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손질이 가해져 건설 당시의 시설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물을 많이 이용한 정원의 아름다움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아세키아’는 수로라는 뜻이다. 타레가가 이곳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고 영감을 받아 알람브라의 추억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 길동무


▲ 헤네랄리페 궁 정원의 아름다운 꽃들 ⓒ 길동무


무어인들은 알람브라 궁전 중심에서 작은 계곡 하나 사이를 두고 휴양 궁전으로서 헤네랄리페를 빚었다. 헤네랄리페는 알람브라 궁전 전체에 공급하는 물의 저장 공원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미로처럼 연이은 정원들에는 연못과 갖가지 꽃들이 어울려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져 있다. 정원 구석구석 물이 흐르고 곳곳에 설치된 분수에서는 시원하게 물이 솟구친다.

솟구치는 분수는 알람브라 궁전 전체의 특색이기도 한데 헤네랄리페 궁전의 분수는 그 느낌이 아주 다르다. 그것은 푸른빛 나무와 화려한 꽃, 그리고 열매들과 어우러졌기 때문이겠는데, 혹자들은 바로 이 분수의 낙수 소리가 타레가로 하여금 <알람브라의 추억>을 작곡하게 했다고 말한다.

"무어인들은 흐르는 물을 매우 중요시했다고 합니다. 물은 고이면 썩잖아요? 그래서 알람브라에는 고여 있는 물이 거의 없습니다. 어디나 다 들어오고 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 깨끗함을 유지하고 퇴적물이 쌓이지 않게 하려고 어떤 곳에서는 유속을 늦추거나 얕은 웅덩이를 만들어 불순물이 가라앉게 했다고도 합니다. 참 놀랍지요?"

물이 귀한 사막지방 출신이었기 때문일까? 무어인들은 물의 소중함, 물의 특성, 물을 결대로 다룰 줄 알았다. 알람브라 궁전이 대단위 궁전 단지가 된 것이나, 정원과 녹지가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도 물을 잘 활용할 줄 안 때문이다. 물의 지혜를 실천하는 이들에게 물이 주는 은총은 정말 끝이 없다.

▲ 헤네랄리페 궁에서 바라본 알람브라 궁전. 중앙에 산타 마리아 성당의 탑이 우뚝하다. 주변에 펼쳐진 논과 밭은 모두 관개 시설이 잘 되어있다고 한다. 알람브라 궁전에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한 옥토들이다. ⓒ 길동무


사막과 물을 다스린 지혜로 오아시스를 일군 무어인, 그라나다 무어인들에게 1492년은 한 맺힌 해다. 국토회복운동을 외치며 남하한 기독교 세력으로 인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려 8세기 동안 이어온 이슬람 역사를 항복으로 마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한은 또 다른 이에게는 기쁨이다. 즉 페르디난도와 여왕 이사벨라에게는 오랜 염원이던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를 지원할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했다.

"무어인들에게 이베리아 반도는 그들이 조상이 선택한 뒤 무려 30여 대를 이어 살아온 조국입니다. 그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사람들이고 다만 종교가 이슬람이었던 거죠. 그러나 힘에 의해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유물은 곧 파괴로 이어졌습니다. 아름다운 왕궁을 유지해줄 것과 수십만 명이 넘는 이슬람교도를 보호해달라는 조건으로 항복했지만 정복자에게 그것은 지켜질 사항이 아니었겠지요."

홍정아씨의 설명에서 무어인들의 한이 진하게 묻어난다. 역사는 말한다. 싸움에 이긴 세력이 더 큰 지혜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진리를 생생하게 증명하는 곳이 바로 알람브라 궁전이다. 그러므로 파괴된 3분의 2에 대한 안타까움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지은 카롤로스 5세 궁전은 부조화의 표상으로 인구에 회자한다.

▲ 정복자의 탄압으로 무어인과 유대인들이 그라나다를 떠나고 산업이 위축되며 버려지다시피 한 알람브라 궁전을 소설로 세상에 다시 알린 ‘워싱턴 리빙(Washington Iving)’의 동상 ⓒ 길동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사람도 때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을 위한 일이 후대에 큰 폐해가 된 경우는 세상에 참 많다. 한은 슬픔과 아름다움의 다른 말이다. 한이 담긴 유물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들여다볼수록 가슴이 저리게 한다. 길동무는 알람브라 궁전 탐방을 마치고 흙길을 걸었다. 그라나다 시가지로 이어진 숲길을 걸으며 먹먹해진 마음을 가라앉혔다. 거기 동상 하나가 길동무를 배웅한다.

정복자의 탄압으로 사람들이 그라나다를 떠나고 산업이 위축되며 버려지다시피 한 알람브라 궁전을 소설로 세상에 다시 알린 '워싱턴 리빙(Washington Iving)'의 동상이다. 동상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든다. 작별의 말을 남기라 한다.

"오늘 길동무는 무어인들의 빛나는 창작을 보았노라. 그들만이 꾸밀 수 있었던 '진주궁전', '낙원의 초상화'를 마음으로 느꼈노라. 사막의 빛, 물의 은총을 가슴 깊이 안고 떠나노라."
덧붙이는 글 여행을 위해 ‘길동무’란 이름으로 뭉친 다섯 부부의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 한인 경제신문 사이트 PAGI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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